[추석콩트] 추석콩트/ 추석

박희팔 소설가

2025-10-01     동양일보
▲ 박희팔 소설가

명석이가 대학교 4학년이 되니 졸업논문을 준비해야 한다는 건 먼저 번 설을 이야기 할 때 할아버지께 ‘설’에 대해 들어 보았다. 이번엔 ‘추석’에 대해 알아보려고 한다.
“할아버지, 추석에 대해서도 말슴해 주세요!”
“이번엔 ‘추석’에 대해서?”
“녜,”
할아버지는 한참을 명석이 얼굴을 쳐다 보고는,
“그래, 논문을 쓴다고 했지, 내가 아는 한도에서 이야기 하지.”
“할아버지 고맙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한참 뜸을 들이고 나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추석’하면 우선 ‘설’과 달리 음력으로 8월 15일을 추석이라 하는데 먼저 ‘송편’이 떠오를 게다.
“예, 뭐니 뭐니 해도 ‘송편’ 이지요. 그 송편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추석은 추석차례부터 이야기하면, 송편을 비롯한 햇곡식으로 만든 떡과 술을 차려 놓고 그리고 밤, 대추, 사과, 배 등을 차리어 놓는 걸 추석차례라 하지.
“그리고요?”
“그리고, 올해도 조상님들 덕으로 집이 평안하고 풍년이 들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온 집안 식구들이 조상님께 감사를 드리지. 그리고 차례를 마치면 그다음은 ‘성묘’를 가지.”
“‘성묘’요?”
“‘성묘’란 조상님들의 산소를 찾아가서 그 산소를 돌보고 살피는 것을 말한다.
“그래요?”
“그리곤 가지고 온 음식으로 차례를 지내고 그 음식을 가족이 나누어 먹고 돌아온단다.”
“그렇군요.”
“추석을 ‘한가위’라고도 하는데, 한가위가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는지 말해 주지.”
“말씀해 주세요.”
“팔월 추석 즉 ‘한가위’란 풍속은 신라 때 생겨났단다. 신라 때 궁중의 시녀들은 두 편으로 나누어 칠월 중순부터 베 짜는 것을 시합했단다. 궁궐에선 아침부터 밤까지 종일 베 짜는 소리가 들렸고 임금님도 지휘하는 공주님도 열심히 구경을 하셨지.
“그래서요?”
“그렇게 해서 한 달이 지나서 팔월 보름이 된단다. 팔월 보름이 되면 임금님은 여럿의 귀족하고 신하들을 거느리고 어느 편이 아름답게 많이 잤는가를 판가름 한단다.”
“그렇군요.”
“그리하여 이긴 편에서는 기쁨의 소리가 쏟아진단다. 그리고 진편에서는 떡과 음식을 이긴 편에게 주지.
“이긴 편에게 준다고요? 아주 잘하는데요.”
“보기 좋지?”
“녜.”
할아버지는 ,
“우리나라는 대부분이 남자와 여자가 따로따로 놀았지. 그런데 저 멀리 제주도에서는 한가위 즉 추석 때 즐기는 ‘조리회’란 놀이는 남자, 여자, 아이, 어른 이 함께 어울려 즐겼지. 온 동리사람이 함께 노래와 춤으로 즐긴 후에 두 편으로 갈라져서는 ‘줄다리기’를 한단다.”
“그래요?”
“결국에는 줄이 끊어지고 양편을 서로 엉덩방아를 찧고, 자리에서 넘어지고 해서 구경하던 사람들은 모두 박수를 치고 웃고 즐겼지.”
“또한 ‘강강수월래’란 것이 있는데, 이 강강수월래는 그 이 순신 장군이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즉 일본이 우리나라를 쳐들어 왔던 임진왜란때다. 이순신 장군은 일본을 무찌르기 위해, 여자들을 동산에 올라가게 해서 춤추고 불을 피고 놀게 했지. 여자들에게 춤을 추는 척 하며 일본놈들이 오는 걸 감시하게 했는데, 우리나라 군인들은 그 동안 쉴 수 있었단다.”
“그리고요?
“그리고 일본 놈들은 ‘강강수월래’를 둥그렇게 돌며 한가하게 여자들이 노는 것을 보고는, ‘저렇게 평화로우니 우리가 쳐들어가야 소용없다.’했다는 거 아니냐.”
“참 그렇군요.”
“그때부터 이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이 ‘강강수월’란 놀이를 지금까지 하게 됐다는 게다.”
명석은 특히 이것을 가지고 있던 공책에 기록했다.
또한 할아버지는 ‘소먹이놀이’도 해 주셨다.
“추석에는 ‘소먹이놀이’도 있었지. 즉 소는 농촌에서 귀중한 동물이라 생겨난 것 같은데. 두 사람이 서로 돌아서서 엎드리면 새끼로 엮은 큰 자리(멍석)를 덮는다. 그리고 한 사람은 두 개의 막대기로 소의 뿔같이 쳐들고, 또 한사람은 한 개의 좀 길다란 막대기를 아래로 내려서는 소의 꼬리같이 하고 소걸음같이 걷지, 그리고 한 사람이 소를 데리고 다니면서. 조금 잘 사는 집을 찾아가서는, 소 울음을 내면서, 이웃집소가 배가 고파서 왔습니다. 짚여물과 쌀뜨물을 좀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하고 소 울음소리를 내면, 그 잡주인은 그 사람 소와 일행을 맞아 들인다.”
“그리고요?”
“그리고는, 술과 여러 가지 음식을 차려 내오면서 대접을 한단다. 이렇게 사람 소 일행은 동네의 여러 집을 돌아다니면서 노는 놀이지. 그리고 일 년 내내 농사를 짓느라고 가장 애를 쓴 서에 대해서 감사의 표라고도 생각되는구나.”
할아버지의 말씀은, 이 놀이는 항해도, 경기도 등의 중부지방에서 많이 즐겼다고 한다.
“재밌겠네요. 또요?”
“또 이와 비슷한 놀이지만 ‘거북놀이’ 가 있지.”
“얘기해 주세요!”
“추석의 밤이 되면 수수 껍질을 벗기고 그것을 가지고 거북이 모양을 만드는 것인데, 앞에 한 사람 뒤쪽에 한 사람이 그 속에 들어가 마치 거북이가 돌아다니듯이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한바탕 재미있게 놀지.”
“그래서요?”
“그러다가 힘이 빠지면 모두 쓰러져 꼼짝하지 않고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엎드려 있어.”
“그러다가요?”
“그러면 거북이를 몰고 다니는 사람이. ‘이 거북은 동해바다를 건너오느라 지쳐 누워 있으니 먹을 것을 주셔요.’하고 말한단다. 그러면 집 주인이 송편, 과일, 과자를 내 오지.”
“그렇군요.”
“거북이가 튼튼하고 오래 산다고 믿었지만, 오래 살고 병이 없으라고 비는 놀이였어. 뿐만 아니라 동 미리의 나쁜 귀신을 쫓는 놀이였단다.”
“참 재미있네요.”
“뭐니 뭐니 해도 추석에는 ‘송편’ 이 빠질 수 없지.
“뭐 특별한 게 있어요?”
“추석에는 송편이 대표적인 음식이지. 너희도 송편을 빚어 보아서 알 거다.”
“예, 많이 만들어 보았어요.”
“너희도 알겠지만 송편을 만드는 방법은 독특하지. 쌀로 송편을 빚은 다음에, 그 해에 새로 돋아난 싱싱하고 향기로운 솔잎을 깔고 떡을 찌지. 그렇게 하면 송편에서는 향기 좋은 솔 냄새가 나고, 기름이 반지르르하게 흘러서 먹음직스럽지.”
“추석이 빨리 되었으면 좋겠어요.”
나는 할아버지의 말씀을 듣자 송편이 먹고 싶어졌습니다. 그러면 송편도 빚고 향기도 맡을 수 있을 텐데.
“할아버지! 오늘 추석에 대한 것, 추석 차례에 대한 것, 추석성묘에 대한 것, 한가위의 뜻, 강강수월래, 소먹이놀이와 거북이놀이, 그라고 송편에 대해 좋은 점 등에 대한 할아버지의 말씀 잘 들었습니다. 이번 졸업 논문에 설날과 추석에 대한 쓸거리가 충분합니다. 할아버지 고맙습니다.
급기야 추석이 돌아왔습니다. 올 추석 명절에도 설명절과같이 시집간 고모가 왔습니다.
“어쩐 일이냐, 추석에도 다 오고?”
“명절에는 시집에서 친정에 가라고 했잖아요?”
“설에나 오는 줄 알았지.”
“명절에는 올 해부터 니 친정에 갔다오너라 하구 시아버지 시어머니가 말씀하셨다구 했는데요. 그래서 이 집도 설날엔 우리도 그렇게 해야겠다구 하면서 명석이 엄마와 아버지하구 명석이까지 다 보냈으면서… ”
“난 설에나 그렇게 하는 줄 알았지.”
“추석이나 설이나 다 명절 아녜요 명절.”
“그렇게 되나? 우리도 올 추석부터 올 추석부터 그렇게 합시다.”
할머니의 말씀이시다.
“그렇게 합시다. 딸집에선 딸과 사위까지 다 보냈는데, 우리만 그대로 있을 수 있나. 구닥다리라고 할 텐데. 그렇지 않소.”
명석인 이래서 할아버지의 말씀대로 이번 추석엔 외할아버지의 집에 갈 수 이었다. 그래서 아버지와 엄마 이렇게 셋이 동구 밖까지 나갔다.
“아이구, 또 명절날 외갓집에 갈려구요?”
작년 설에 외갓집에 간다는 동리 사람을 만났다.
“예, 추석은 명절이 아닌가요?”
명석이 아버지는 고모가 한 말을 고대로 하고 있었다.
“우린 작년 설만 그러는 줄 알고요?”
“우리도 시아버님이….”
명석이 엄마가 할아버지가 한 말 즉 ‘작년 설만 외갓집에 갔다 와라 고 한 말을 하려는 것을 아버지가 얼른 막고,
“명절이라고 했을 텐데요. 설에만 갔다 오라는 말이 아니고요.”
명석이 고모가 한 말을 고대로 하고 있었다.
“여하튼 잘 되었어요. 이제부터는 설이나 추석이나 외가에 갈 수 있으니 말예요.”
동네 사람은 잘 됐다구 했다.
“올해부터는 추석에도 외갓집엘 가니 우리는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우리도 그래요. 할아버지 할머니가 허락을 하셨으니 고모하구 잘 하실 거야요. 고모도 얼마나 좋아 하실까.”
“우리는 어머니가 외갓집엘 가라고 하셨으니 시아버지 시어머니가 둘이서 오늘 끓여 잡수실 거예요. 그 생각하믄 친정에 가기가 싫어요. 시어머니가 우리 땜에 고생하시는 것 같애서요.”
“그런 거 생각하믄 우리는 고모님이 오셨으니 잘 됐네요. 그런 거정 없으니.”
엄마의 말이었다.
여하튼 외갓집엘 가니 명석인 좋았다. 이번 논문에 외갓집의 일도 쓸 것 같아서였다. 명석인 메모할 공책을 따로 준비했다.
“명석인 좋겠다. 이번 추석에도 외갓집엘 가니.”
아버지의 말씀에 명석이는 피식 웃고 말았다.
동네의 외갓집엘 가는 사람 내외도 무척 좋은 모양이다. 둘이서 마음이 들떠있는 걸 보니. 명석인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는 좋겠다. 친정엘 가서 엄마 아빠를 설에 보고 이번 추석에도 또 보니. 그렇지?
“이번 뿐이냐. 이제 해마다 볼 걸.”
아버지의 말이다.
“왜 안 좋아요. 그나저나 고모가 안쓰러워요. 오래간 만에 진정 부모를 모시려니 말예요?”
“왜 당신은 친정 부모 안 모셔서 편하구?”
“아닌 말루 날마다 모셨으면 좋겠어요.”
“그런 말이 어디 있어. 시집 왔으믄 시아버지 시어머님 모셔야지?”
“‘아닌 말루’라고 했잖어요.”
“참, 그랬나?”
셋이 한바탕 웃었다.
외갓집은 한 10여리 떨어져 있었다. 명석인,
“이렇게 지척에 두고 이제 엄만 시집와서 두 번째 오니 참 안 뙜어 엄마.”
“왜 인제 알었냐?”
“그래두 난 꽤 먼 지 알었지”
“왜, 이웃동네라구 내가 얘기 했는데?”
아버지가 말했다.
“시집오믄 다 그런 거야.”
엄마의 말이었다.
“엄마는 그렇게 옛날 사람두 아닌데….”
“네 나이가 몇 살이냐?”
“아버지두, 내 나이를 몰라서요?”
“그래, 몰라서 묻는다. 스물 두 살 아니냐. 그때만 해도 옛날이다.”
“그러면 나 낳을 때만 해두 옛날이구요?”
“그래, 그때만 해두 옛날이다. 20년 아니냐. 20년?”
“그때만 해도 한 번 시집오면 시집귀신 되는 거야.”
엄마의 말이다.
“시집귀신 이라니요. 한 번 시집오면 그 시집사람 된다고요 그래 친정엔 한 번도 못 가는 거예요?”
“친정 부모가 돌아가시기 전엔 그랬단다.”
아버지의 말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