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에세이/ 철없음과 젊음은 늘 한통속이다
김혜경 시인
철모르는 것들은 어디에나 있고 어느 시절에나 있다. 식물이 꽃을 지우고 열매를 떨구는 시기에 내 창 밑의 덩굴장미가 서너 송이 꽃을 피웠다. 바라보는 나야 좋지만, 가을볕에 꽃으로 견뎌야 하는 저 철부지는 얼마나 힘들까.
대학입학을 하고 한겨울에 초미니스커트를 입고 시내 중심가를 누비던 시절에 어머니는 ‘멋 부리다 철딱서니 없는 것들 다 얼어 죽는다’라고 야단을 치기도 하셨다.
꼭 그 짝이다. 한여름에 그렇게 간절하던 비가 이제야 몇 날 며칠을 두고 내린다. 가을비에 어느새 등이 시리다. 곱게 꽃은 피웠는데 벌, 나비도 찾아오지 않고 바라봐 주는 사람도 없으니 저 서글픔을 어찌할거나. 한 송이 꺾어 화병에 꽂아볼까 하는 유혹에 다가가 코를 박고 향기를 맡는데 숨겨진 가시가 손끝을 찌른다. 건들지 말라고 밀어낸다. 나도 종아리에 허벅지까지 빨갛게 얼어서 들어 오면 어머니가 종아리 얼어 터지겠다고 만지곤 하셨다. 그때마다 건들지 말라고 톡 쏘고는 서둘러 이불을 뒤집어쓰곤 했었다.
장미를 사랑한 시인 릴케가 장미 가시에 찔려 사망했다는 것은 다 아는 아이러니다.
릴케처럼 향기를 맡고 꽃잎을 쓰다듬어 보고 날카로운 가시가 있는 줄기를 만져본다. 애처롭기만 하다. 철을 모르고 날뛰는 젊음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고 또한 더 아름답게 보이기도 한다. 철없음과 젊음은 늘 한통속이다. 집게로 집어 놓은 한 쌍처럼 느껴진다. 저 무모한 철없음이 그립기도 하고 가상하기도 하다.
바닥에 떨어진 붉은 꽃잎을 주워 릴케처럼 눈꺼풀을 덮고 잠시 침묵해 본다. 짙은 향기와 보드라운 감촉이 전해진다. 유곽의 기생 품이 이러했을까. 눈 오기 전까지 향기 속에 빠져볼 것도 같다.
가시에 찔린 손가락을 빨며 돌아와 예쁜 것들이 숨기고 있는 날카로움에 대해 생각했다. 아름다운 장미의 가시는 누군가를 죽음에 이르게 해도 용서가 되겠지만 예쁘지도 않은 내가 쏘아대는 날 선 말들은 아무래도 이해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가족이 모이는 명절엔 특히나 가시를 숨기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차라리 가시를 드러내놓고 있다면 사전에 알아서 준비하고 피해 갈 텐데 숨겨진 가시엔 속절없이 당하고 만다. 생각해 주는 척, 염려해 주는 척, 한 바퀴 뒤집어 꼰 말들이 주는 날카로운 가시들.
계단을 오르며 나도 누구의 가슴을 할퀴고 지나지는 않았을까, 오늘은 또 누구의 손가락을 찌르는 매운 가시가 되지는 않을까, 내게 찔리고 말 못 하는 사람은 없었는지 하는 생각에 미치자 시월의 오싹함이 갑자기 밀려오는 것 같다.
손을 꼭 오므리지 못하고 소중히 주워 온 꽃잎을 책상 위에 펼쳐 놓는다. 땅에 떨어진 꽃잎은 어느새 생기를 잃고 가장자리부터 말라가기 시작한다. 조금만 힘을 주면 으스러질 것 같은 연한 속살을 가만히 쓰다듬는다. 아기 볼에 입을 맞추듯 입술에 얹어 보기도 하고 릴케처럼 눈두덩에 올려보기도 한다. 향기도 빛깔도 곱다. 살결도 여러 누군가는 지켜야 할 것 같다. 이 곱고 어여쁜 것을 지키려고 장미는 그 많은 가시를 만들었던 모양이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시달려 온 진이가 장장 네 시간을 울며불며 전화로 반협박 같은 부탁을 한다. 속에 가시만 가득 채우고 사는 여인으로 변한 것도 그 착함을 지키려 그러했으리라. 모든 것은 다 때가 있는 것이라고 하지만 이렇게 철모르는 것들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철 지난 덩굴장미를 보며 아름다운 것들이 감추고 있는, 보여주지 않으려 했던 내면의 나를 들여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