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에세이/ 우리 세계는 시뮬레이션일까요
박용진 시인
휴일이면 한 주간 쌓인 피로로 인하여 낮잠을 자기도 한다. 자고 일어나니 어둑한 바깥을 보며 지금이 새벽인지 저녁인지 잠시 헷갈리곤 한다. 때로는 지금의 현실이 꿈이기를 바라거나, 꿈이 아니기를 바랄 때가 있다.
너무 힘든 일을 겪으면서 그냥 악몽을 꾼 것이라고, 너무 기쁜 일이 생겨 설마 꿈이 아닐 거라고 생각할 때가 있는데, 장자의 호접몽이 떠오른다.
미국의 기업가인 일론 머스크는 "우리 세계가 시뮬레이션(simulation) 세계가 아닐 확률이 수십억분의 일"이라고 했다.
그는 왜 이런 말을 했을까. 철학자인 닉 보스트룸이 2003년 논문 ‘당신은 컴퓨터 시뮬레이션 속에 살고 있는가? Are you living in a computer simulation?’에서 제안한 논증에 근거해서 한 말이었다.
이런 가설을 지지하는 근거는 물질이 관측되기 전에는 확률로서 존재한다는 양자역학의 법칙이, 컴퓨터 프로그램이 연산량을 최소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최적화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정말로 우리는 절대자 혹은 높은 차원의 존재들이 만든 프로그램 속을 살아가는 캐릭터인 것일까.
우리의 삶은 미리 정해진 길을 따라간다는, 숙명론이 맞다 아니다의 논쟁을 자주 접하게 된다. 앞날은 이미 정해진 상태로, 사람들은 이 과정을 밟아갈 뿐이라는 의미의 결정론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부정한다. 이게 맞는다면 마치 큰 컴퓨터 속에서 활동 반경에 제한을 받는 프로그램의 일부로 살아가는 가상세계와 비슷하다.
필자의 친구가 겪은 신비한 일화를 소개한다. 대구에서 생활하다가 징집영장을 받고 논산 훈련소에 입소하여 2주 차 사격 훈련을 받던 중, 당시의 M16 소총에 문제가 있어서인지 영점 조준을 하여도 총알은 과녁을 빗나가는 것이었다. 조교들에게 이야기를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50m, 100m, 200m 표적지에 총 10발의 총을 쏴서 6발을 맞히지 못하면 유급 시킨다고 하여 아무리 용을 써도 3ㅡ4발 밖에 맞히지 못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날 밤부터 내무반 이불을 뒤집어쓴 채 평소 믿지 않던 신을 향해 간절하게 빌기 시작했다. 밤을 새우다시피 한 그의 간절함이 닿았던 탓일까. 사격 검증의 날이 되었다. 수백 명의 훈련 중대원이 모여있는 장소에 새까만 옷을 입은 R.O.T.C. 장교가 나타나서 훈련병들을 쓱 훑어본 후 긴장한 친구를 향해 "너 일어나 봐", "고향이 어디냐, 어느 학교 다녀"라며 질문을 했다고 한다. 놀랍게도 교관은 같은 고향, 같은 대학교 선배였다.
사격 10발을 모두 쏘고 친구는 자포자기한 상태로 대기하는데 교관이 일일이 사격점수를 불러주고 성적 미달자는 땡양지에서 얼차려를 받고 재사격 준비를 했다. 친구의 이름을 호명한 교관은 일순간 멈췄다. 엄청 긴 시간이 지난 후 "6발!"이라고 했다.
친구는 "분명 평소보다 더 못 쐈는데, 한여름 뙤약볕에 시커멓게 그을린 훈련병은 모두 같아 보여서 일일이 구분하기 힘이 드는데", "나는 전문대 다녔고 교관님은 4년제 대학교여서 마주칠 일도 없었는데"라며 그날을 회상했다.
인간의 의지는 만물을 구성하는 미립자에까지 영향을 준다는 사실은 이미 과학적으로 입증이 되었다. 강한 염원은 분명 주변의 상황을 변화시킨다. 우리가 속한 세계가 가상으로 이뤄진 프로그램이었거나 미래가 정해져 있는 결정론의 세계였다면, 친구의 의식이 앞날의 일부를 변화시키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 세계가 가상 혹은 결정되어 있다는 이론에 동의하긴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