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향계/ 보자기 × 젓가락
변광섭 청주문화산업진흥재단 대표
어머니는 밤이면 밤마다 대청마루에 앉아 호롱불을 켜놓고 바느질을 했다. 찢어진 옷과 양말을 깁고 누비면 멀쩡한 옷이 되고 새 옷처럼 말끔해졌다. 어머니의 손길은 마법이었고, 어머니의 긴긴밤은 사랑이었으며, 어머니의 한 땀 한 땀 정성은 우주였다. 나는 그 품에서 한없이 유영하며 자랐다.
한 폭의 보자기는 우리의 삶과 문화를 오롯이 감싸고 있다. 수를 놓고 조각을 이어 꽃으로 피어났다. 사랑이 물들었다. 맑은 마음과 정성을 담았기에 자연 그대로의 빛으로 영롱했다. 자연을 담아, 자연을 닮은, 그래서 더욱 빛나는 삶. 우리는 기회라는 시간 속에서 따뜻이 안아주고 지혜로이 성장하지 않았던가.
시골뜨기 소년은 김치 냄새 나는 책보로부터 도망쳐 하루빨리 새로운 란도셀 무리에 들어가기 위해 발버둥 치고 초조해했다. 생일날 선물로 사주겠다는 어머니의 약속에 소년은 밤잠을 설쳤지만,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 당신의 슬픈 모습에 마음이 시렸다. 나는 알았다. 견딤이 쓰임을 만든다는 것을. 가난의 상징이었던 책보와 조각보가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원형이자 세상을 감싸고 펼치는 예술이 되었다.
시대의 지성 이어령 선생은 “보자기는 융통성 없는 가방과 달리, 쌀 수도 있고 입을 수도 있으며 묶을 수도 있다. 사용한 후에는 다시 아무것도 없는 평면으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보자기는 하나지만 그 용도는 신축적이고 전방위적이다. 둥근 것도, 모난 것도, 긴 것과 짧은 것 가리지 않고 싼다는 것이다.
보자기 작가 이효재는 평생을 보자기 품에서 살고 있다. 바느질하고 깁고 누비며 보자기의 쓰임을 문화로, 예술로 발전시키고 있다. 그녀의 보자기는 유럽에서도 인기다. 색감에 신기해하고, 쓰임에 놀라워하며, 마술에 박수를 보낸다. 화가 김시현은 보자기를 회화의 세계로 끌어들였다. 보자기를 시원하게 펼친 듯 압도적인 크기와 오방색의 화려한 색상이 매혹적이다. 여러 권의 책을 쌓은 책보 시리즈는 회화작품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오묘하다.
‘옹알이를 하며 말을 배우듯 아가야, 이제는 젓가락을 쥐어라. 어머니의 어머니, 아버지의 아버지, 천 년 전 똑같이 생긴 이 젓가락으로 음식을 잡으셨지. 그리고 늘 짝을 이루며 사셨다. 함께 일하고 함께 사랑하며 함께 생명을 나누었지. 아느냐, 아가야. 젓가락이 짝을 잃으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것을. 아가야 들리느냐. 부엌에서 도마질하는 어머니 먹기 좋게 음식을 썰고 다지는 그 마음의 소리 있어 오늘도 우리는 먹는다. 젓가락 숟가락만으로. 아! 생명공감, 마주 보고 나부끼는 깃발 오늘 아침 처음 젓가락을 잡은 내 아가야.’
시대의 지성 이어령 선생의 시 ‘생명공감(生命共感)’이다. 젓가락은 가락을 맞추는 생명의 리듬이다. 젓가락은 짝을 이루는 조화의 문화이다. 젓가락은 천원지방(天員地方)의 디자인 원형이다. 젓가락은 음식과 인간의 상호주의다. 젓가락은 하드웨어, 젓가락질은 소프트웨어다. 한·중·일 3국이 1500년 넘게 변함없이 사용해 온 것은 오직 하나 젓가락이다.
아침에 한 번, 점심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우리는 하루 세 번 황홀한 여행을 한다. 내가 먹는 것이 나를 만든다. 젓가락을 사용하면 손가락에 있는 30여 개의 관절과 60여 개의 근육이 움직인다. 우리 몸에 있는 206개의 뼈 가운데 4분의 1이 두 손을 구성하는데 쓰이는 것이다. 뇌의 작용을 높이고, 두뇌활동을 활발하게 하며, 두뇌발달을 촉진하는데 도움을 준다.
특히 쇠젓가락과 쇠숟가락을 사용하는 한국인은 나무젓가락을 사용하는 사람들보다 손기술이 뛰어나다. 무겁기 때문에 근육을 더 많이 사용해야 하고 집중력을 더 키워야 한다. 사격, 양궁, 골프, 성형수술 등이 세계 으뜸인 이유다. 자동차, 조선업, 반도체 등 정교한 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인 것도 젓가락 유전자 덕분이다. 앞으로는 젓가락 공방, 젓가락 장단, 젓가락 밥상머리 교육, 젓가락과 음식문화가 K-컬처를 선도할 것이다.
지금 청주공예비엔날레 행사장에서 ‘보자기+젓가락’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젓가락으로 문화를 집고, 보자기로 예술을 감싸기 위해서다. 더 나아가 생명문화도시 청주, 공예도시 청주가 지구촌을 하나되게 하는 빛나는 역사를 만들기 위해서다. 우리 함께하자. 가장 아름다운 날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