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에세이/ 꽃

하재영 시인

2025-10-15     동양일보
▲하재영 시인

어, 벌써?
그럼!

꽃은 폈고 또 졌다. 그리고 다시 꽃이 피고 진다. 집안 곳곳에 피고 진 꽃을 떠올리지만 이미 계절 너머 저쪽으로 간 꽃들에 대한 기억은 희미하다. 더운 여름이 가기까지, 가을이 오기까지 화단과 화분의 꽃들은 릴레이 선수들이 배턴을 주고받듯 피고 졌다.

산수유, 개나리, 수선화로 시작된 꽃들은 장미를 피우며 장마를 몰고 왔고, 여름 가뭄에도 달맞이꽃을 비롯하여 백합, 부겐빌레아 등 여러 종의 꽃들이 자기들의 독특한 색깔을 맘껏 드러냈다.

가을, 시월의 화단 역시 백일홍, 천일홍이 이름값을 하고 있고, 이파리 무성한 상층으로 보랏빛 박하꽃이 하늘거리고 있다. 어디 그것뿐이랴. 봉선화, 꿩의비름, 여우꼬리, 코스모스, 능소화, 란타나 등 철과 관계없이 꽃들은 불쑥 모습을 보였다가 슬며시 꼬리를 감추고 그 옆 가지에서 새로운 꽃잎을 올린다.

지지난해 분양받은 란타나는 원산지가 남아메리카다. 참 먼 나라에서 온 수종이다. 조용히 꽃을 들여다보면 분꽃과 같은 꽃잎이 나팔을 불며 강강술래 하듯 서로 이웃하면서 한 송이 꽃을 이룬다. 정말 재미있게 꽃을 피운다. 중심 꽃도 그렇고 그 주변에 에워싸고 있는 꽃도 그렇다. 더욱이 그 꽃 색깔은 일방적으로 한 가지 색을 우기며 유지하지 않는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고 변한다. 노란색과 분홍색, 빨강이 뒤섞여있으면서 나흘 전 본 꽃과 오늘 본 꽃의 색깔이 다르다. 그래서 그런지 한자식 우리나라 이름을 살펴보면 칠변화다. 꼬리 달린 여우가 재주를 부린다는 옛날이야기처럼 꽃이 재주를 부리며 변한다.

어린 시절 집안에도 꽃은 피고 졌다. 시골 살림에 어머니는 샘가, 장독대 주변, 그리고 대문 밖 텃밭 한쪽에 꽃을 심었다. 어쩌면 지난해 있었던 것들이 씨앗을 떨어뜨려 자연스럽게 자란 꽃모종에 어머니는 물을 주며 가꾸었던 것일 수도 있다. 흔한 꽃들이었다. 채송화, 봉선화, 분꽃, 맨드라미 둥 토속적인 것에다가 이름이 서양식인 샐비어도 있었다.

그런 꽃들과 함께 어머니가 좋아하고 열심히 가꾸던 식물은 도라지였다. 텃밭 한 이랑에 심은 도라지는 여름 내내 흰 꽃과 보라색 꽃을 피우고 가을이면 씨앗을 맺었다. 어머니는 도라지꽃을 보면서 “도라지 도라지 백도라지 심심산천에 백도라지-”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했다. 반찬으로 도라지나물이 올라오는 경우도 빈번했다. 쌉스레한 맛이 그리 입맛 당기지는 않았지만 이미 그 반찬은 그리운 음식이 되었다.

나도 주택으로 이사하면서 화단 한쪽에 도라지를 심었다. 꽃을 보기 위함이었다. 그것들이 해마다 풍선을 불듯 꽃잎을 부풀리다 꽃을 피웠다. 올해도 손바닥만한 화단에 자란 도라지는 열심히 꽃을 피웠다. 종종 이른 아침 도라지꽃 앞에 서성인다. 그러면서 어머니를 생각하기도 한다. 도라지꽃을 본 지 삼 년이 지나자 이웃 어른들이 도라지를 캐서 다른 곳으로 옮겨 심으란다. 그냥 두면 뿌리가 썩는단다. 지난해, 지지난해 꽃을 피웠던 도라지는 이미 씨앗을 떨어뜨려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가을꽃이 사라지면 겨울이 올 것이다. 밖에 내놓은 화분을 실내에 들여놓았을 때 봄, 여름, 가을동안 지상을 수놓던 꽃들은 또 다른 배턴을 겨울에게 건네며 새로운 꽃을 피울 것이다.

그 이름 눈꽃.
거기에도 어머니란 꽃은 머물 것이다.
수많은 꽃 중의 꽃은 어머니란 꽃이 아닌가.

그리운 어머니!
어머니란 꽃을 지금은 볼 수 없다. 보이지 않지만 이 지상 어디든 나를 따라오며 잔잔한 미소로 꽃을 피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