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칼럼/ 선량(善良)한 선량(選良)을 기다린다
박노호 한국외대 명예교수
2025년도 국정감사가 시작됐다. 국회는 이번 달 13일부터 30일까지 17개 상임위원회에서 800여 기관을 대상으로 국정감사를 실시한다. 국회의 고유 임무 영역이 법률 제정과 예산 확정인 만큼 국정감사에서는 국회가 확정한 법률과 예산이 국정 전반에 걸쳐 제대로 집행되고 있는지를 살펴보게 된다. 또한, 국민은 국민이 낸 세금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그리고 국정 운영이 과연 국민을 중심에 두고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짧은 기간에 국정 전반을 살펴보아야 하니 감사 주체인 국회의원은 물론 피감기관 및 관련 종사자에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된다. 그런 압박감을 이겨내고 국회의원은 많은 양의 국정 자료를 검토하고 문제점을 찾아냄은 물론 가능한 한 해결책까지도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이고, 각 피감기관은 왜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국정 자료를 제공하는 데 한 치의 어긋남이 없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2025년도 국정감사 역시 제대로 치러지긴 그른 것 같다. 국정감사 첫날 법사위원회에서 벌어진 난장판은 흐트러진 이 나라 정치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고 이어지는 대부분의 국감에서도 국민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이번 국감에 앞서 민생 국감을 부르짖으면서도 ‘내란 종식’을 최대 이슈로 내건 여당과 ‘무능정부 심판’을 기치로 내건 제1 야당 간의 치열한 정쟁으로 국민을 위한 국감, ‘민생 국감’은 이미 물 건너가고 말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거의 매년 이런 눈꼴 사나운 국정감사를 지켜봐야만 할까?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치와 정치인 때문이며, 동시에 국민 역시 유권자로서 깊이 반성해야 한다. 국가와 사회는 각 분야에 뛰어난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이끌고 발전시켜 나간다. 한 나라의 정치 역시 정치가 무엇인지를 엄중히 인식하고 또 정치 분야에 빼어난 능력과 열정을 가진 전문인들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그런 수준에 한참 못 미치고 있다. 운전미숙에 음주운전 전력과 각종 사고 이력을 가진 자들이 언감생심 랠리 선수인 양 아찔하게 속도를 내고 있는 것과 전혀 다를 게 없는 것이 우리 정치권의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우리 정치는 지금 ‘내란’의 덫에 걸려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거대 여당은 내란세력 척결이 마치 정치의 전부인 양 거친 단어들을 쏟아내며 지난 정권 초토화에 매몰되어 있다. 물론 불행했던 과거와의 단절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 과정은 신속해야 하며 만에 하나 정권 유지나 정권 연장의 수단이 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제1 야당은 이미 비상계엄, 탄핵, 파면을 거친 전직 대통령과 과거 정권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의 머릿속에도 비상계엄 선포는 ‘옳지 않은 일’이다. 그런 비상계엄이 대통령에 대한 탄핵과 파면으로 이어지고 직전 대통령 부부가 모두 영어의 몸이 되어있는 상황인데도 ‘윤 어게인’을 외치고만 있다면 그게 어디 정상적인 정당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겠는가? 정권 탈환은 고사하고 정당의 명맥을 유지하는 것조차 어려워진 마당에 하루라도 빨리 정신을 차리고 야당 본연의 역할에 매진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아 어디 하나 불안하지 않은 곳이 없다. 미·중 간의 끊임없는 갈등은 우리에게 고도의 외교력과 협상력을 요구하고 있다. 제대로 매듭지어지지 않은 미국과의 관세 협상 역시 여야가 힘을 합쳐 풀어나가야 할 힘든 과제다. 입속의 뜨거운 감자 같은 북한의 핵무기에 대해서는 확고한 반대 입장에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선후진국을 막론하고 적어도 외교와 안보 분야에서는 여야가 한목소리를 내는 것이 관행이다. 그것이 국익이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오기와 자존심은 국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 경제 역시 녹록지 않은 상황에 허덕이고 있어 거시적, 거국적, 장기적 해법을 찾아야만 한다.
이 총체적 난국을 헤쳐나갈 길은 오직 하나뿐이다. 여야 모두 소모적이고 치졸하기 그지없는 정쟁에서 벗어나 대화하고 타협하며 절묘한 해법을 찾아내야 한다. 그러려면 정치가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국민은 제발 선량(選良)이 선량(善良)해지기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