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에세이/ 메멘토모리와 카르페디엠

김옥전 시인

2025-10-21     동양일보
▲김옥전 시인

인간은 과거를 통해 현실을 자각하고 미래를 꿈꾼다. 완벽한 인간은 없거니와 인간의 본성이 미래지향적이라 누구에게나 과거는 아쉽고 미래는 불안하다. 성공이라는 목표를 설정하고 그곳을 향해 끊임없이 분투하는 인간의 모습은 아름답고 눈물겹다.

그러나 현실에서 얼마간의 성취를 맛본 사람들은 거기서 만족할 수 없다. 살얼음판 같은 세상 위에 지어 놓은 성공이라는 집이 경쟁자라는 방해꾼을 만나면 쉽게 무너질 것이라는 불안감이 생기기 때문이다. 누가 언제 부숴버릴지 몰라 매 순간이 두려운 그들은 오늘의 행복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부와 권력, 명예를 누리면 누릴수록 불안감과 스트레스는 심하다.

채만식의 소설 <태평천하>에 '망진자(亡秦者)는 호야(胡也)’니라 라는 말이 나온다. 진(秦)나라를 망하게 할 자 호(胡,오랑캐)’라는 예언을 듣고서 변방을 막으려 만리장성을 쌓았지만 진나라를 망하게 한 것은 오랑캐가 아니라 그의 아들 호해(胡亥)였다는 뜻이다. 부와 명예와 권력을 다 쥔 진시황은 영원히 살고 싶었다. 그가 쟁취하여 누리던 세상을 누군가에게 빼앗긴다거나 이 세상에 두고 죽어야 한다니 얼마나 아까웠을까. 서불 등을 시켜 불로초를 구해오게 하거나, 오랑캐의 침략을 막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도록 명한 그의 마음은 충분히 공감 가는 부분이다.

도대체 무엇이 우리의 과거를 후회하게 하는가, 또 진시황처럼 우리의 미래를 불안하게 하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유한한 시간을 영원하게 부여해 준다면 우리는 행복할까. 아마도 욕망을 본능으로 소유한 인간으로 존재하는 이상 우리는 끊임없이, 만족에 도달할 때까지 행복을 누리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만족에 도달할 수 없는 우리는 행복할 수도 없는 것이다. 욕망은 자아와 사회를 발전시키며 인간을 생존하게 하는 동력으로 기능해 왔다. 그러나 인류가 영혼과 불멸에 대한 희망을 갖고 완전하기를 꿈꾸는 이상 희망은 희망이 아니라 고통일 수밖에 없다.

송복남은 장편 소설 <그랑호텔의 투숙객들>에서 자본과 권력, 경제적, 사회적 토대에서 비롯된 대결, 역사와 원한, 물질적인 것과 비물질적인 것들의 갈등, 유한한 인간과 영원한 존재의 욕망을 다룸으로써 변주된 욕망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보여준다. 인류의 발달은 인간 존재의 공간을 지구에서 우주적 차원으로 확장시켰다. 또한 인지적 능력이 향상되면서 소유욕과 권력 욕구도 함께 상승했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소설 속 인물들은 과거를 완전히 청산하지 못한 채 탐욕과 분노로 이어온 선대의 갈등을 그대로 답습한다. 그들은 재산을 유산으로 받을 때 분노도 함께 이어받은 것이다. 작가는 작품 속 인물들을 통해 인간 존재가 물질화되면서 벌어지는 욕망과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사랑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영원한 존재를 향한 욕망에서 유한한 인간을 사랑하기 위한 욕망으로 그 방향과 시선을 바꿔야 할 때이다. 오지 않은 미래 나아가 죽음이라는 미래를 거부하기 위해 오늘을 망칠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는 지금 바로 이 순간, 여기에 살고 있다. 어제의 내가 봤던 달맞이꽃은 이미 과거의 아름다움이고, 과거에 실패한 사업은 과거의 사건이다. 그러므로 반성은 할지언정 절망할 필요가 없다. 또한 미래를 위해 오늘 노력하되 오늘 분의 행복마저 희생해서는 안 된다. 오늘 후회 없이 행복하면 미래는 당연히 후회 없이 행복할 것이다. 미래는 죽음을 포함한다. 죽음은 이길 수도 피할 수도 없는 흐름이다. 그러므로 메멘토모리! 죽음을 기억하자, 그런 후 카르페디엠! 현실을 충분히 사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