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검하수, 시야장애와 지주막하출혈

김희섭 효성병원 신경외과 전문의

2025-10-23     동양일보

며칠 전, 55세 여성 환자 한 분이 병원을 찾았다. 며칠 전부터 이유 없이 머리가 계속 아프고, 뒷목이 뻣뻣하게 당기며 통증이 심해졌다고 하였고, 처음엔 피로나 근육통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진통제를 복용했지만 별다른 차도가 없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증상이 더 심해졌다고 한다. 특히 왼쪽 눈꺼풀이 자꾸 내려오고,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어 일상생활에 불편함이 커졌다고 했다. 가족들도 단순한 피로가 아닌 것 같다고 느껴 병원에 오시게 되었는데. 진료 후 머리 MRI와 뇌혈관 검사를 진행해보니, 좌측 후교통동맥 부위의 뇌동맥류가 파열되면서 생긴 지주막하출혈로 진단되었다. 즉시 뇌혈관조영술과 혈관내 코일 색전술을 시행했고, 다행히 치료 후 빠르게 회복 중이다. 눈동자를 움직이고, 눈꺼풀을 깜박이는 신경인 동안신경은 후교통동맥을 인접해서 눈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후교통동맥에 동맥류가 발생하여 커지면서 동안신경을 눌러 동안신경마비가 발생하면서 왼쪽 눈이 뜨지지 않는 안검하수가 발생한 것이다.
수술 후 20일 정도가 지난 지금은 양쪽 눈이 똑같이 뜨지고, 시야장애도 호전되고, 두통도 호전되어 퇴원을 앞두고 있다.
이처럼 지주막하출혈은 일상 속에서 갑작스럽게 발생할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응급 질환인데, 말 그대로 뇌를 싸고 있는 세 겹의 뇌막 중 지주막 아래 공간에 출혈이 생기는 것을 말하며, 대부분은 뇌동맥류가 터지면서 발생한다. 뇌동맥류란 뇌혈관 벽이 약해지면서 풍선처럼 부풀어오른 혈관인데, 대부분은 증상이 없지만, 한번 파열되면 심각한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어 ‘조용한 시한폭탄’이라고도 불린다.
지주막하출혈의 가장 흔한 증상은 갑작스럽고 매우 심한 두통이며, 많은 환자들이 “살면서 경험한 가장 극심한 두통”이라고 표현하고, 통증의 정도가 매우 강해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이와 함께 뒷목 통증이나 경직, 구토, 의식 저하, 발작 등이 나타날 수 있고, 특히 눈꺼풀이 처지거나 시야가 겹쳐 보이는 증상도 나타날 수 있다. 이는 파열된 동맥류가 뇌신경을 자극하거나 눌러서 발생하는데, 특히 후교통동맥에 동맥류가 있을 경우 이러한 안과적 증상이 잘 동반된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증상들이 편두통이나 경추 질환과 혼동되기 쉬워, 진단이 지연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그러나 지주막하출혈은 치료 시기를 놓치면 생명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통계에 따르면 지주막하출혈 환자의 약 30~50%가 병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사망하거나, 치료 후에도 심각한 후유증을 겪는다고 알려져 있다.
진단은 주로 뇌 CT나 MRI를 통해 출혈 여부를 확인하고, 뇌혈관조영술을 통해 뇌동맥류의 위치와 크기를 파악한다. 치료는 파열된 동맥류를 더 이상 터지지 않도록 막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를 위해 시행되는 대표적인 치료법은 ‘코일색전술’과 ‘뇌동맥류 경부결찰술’이다. 코일 색전술은 혈관 내로 미세한 도관을 삽입해 동맥류 안에 백금 코일을 채워 넣는 방식으로, 비교적 덜 침습적이며 회복이 빠르다. 반면, 경부결찰술은 개두술을 통해 머리를 열고 들어가 동맥류의 목을 외부에서 클립으로 막는 방법으로, 경우에 따라 선택된다.
하지만 수술적 치료가 끝났다고 해서 안심할 수는 없다. 치료 이후에도 뇌혈관 경련, 수두증, 뇌압 상승 같은 다양한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집중 치료와 경과 관찰이 꼭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방과 조기 발견이며, 고혈압, 흡연, 음주, 가족력은 뇌동맥류와 그 파열 위험을 높이는 주요 요인이다.. 이런 위험 인자가 있다면 정기적인 뇌혈관 검진을 통해 동맥류의 유무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또한, 평소와 다른 양상의 두통이나 안과 증상, 어지럼증, 일시적인 의식 저하 등의 경고 신호가 있을 땐, 단순히 피곤해서 생긴 증상이라 넘기지 말고 꼭 전문의의 진료를 받아봐야야 한다.
지주막하출혈은 예고 없이 찾아오는 질환이지만, 증상을 일찍 알아차리고 조기에 병원을 찾는 것만으로도 생명을 살릴 수 있다. 이번 환자처럼 “조금 이상하다”는 몸의 신호를 무시하지 않고 병원을 찾은 것이 결국 회복으로 이어졌듯이, 누구에게나 경각심이 필요한 질환이다. “두통, 무시하지 마세요. 그 안에 뇌의 신호가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