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향계/ 인생의 시기마다 새롭게 피어나는 '갈매기'

한정수 중원대 연극영화학과 교수

2025-10-30     동양일보

나에게 있어 안톤 체호프의 '갈매기'는 단순한 고전 희곡이 아니다. 이 작품은 인생의 여러 시기를 통과하며 나와 함께 성장하고 변해온 하나의 ‘거울’ 같은 작품이다.
처음 이 작품을 만난 건 고등학교 2학년 무렵이다. 연극영화학과로 진학을 결심하고 처음으로 간 연기학원에서 가장 먼저 만난 작품이었기에 그 기억이 유난히 선명하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그저 대사 암기에 급급했고 등장인물들이 왜 그렇게 괴로워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대화는 우울했고 사랑 이야기는 난해했으며, 십대의 나에겐 이 작품이 멀고 어렵게 느껴졌다.
그 후 대학에 진학해 공연제작 수업에서 다시 이 작품을 마주했다. 전공자의 입장에서 읽은 <갈매기>는 완전히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무대와 예술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고, 사랑이라는 감정의 복잡함을 조금은 알게 되었기에 작품을 대하는 태도 또한 달라졌다. 인물들의 대사가 내 안으로 스며들었고, 꼬스쟈의 “난 오늘 이 갈매기를 쏘아 죽였어. 이것을 당신의 발밑에 바치겠습니다”라는 말은 단순한 사랑에 빠진 한 남자의 허세가 아니라 예술가로서의 절망과 존재의 외로움으로 다가왔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갈매기'는 읽는 순간마다 다르다”라는 선배의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는 것을.
서른 즈음, 나는 다시 '갈매기'와 마주했다. 이번에는 학생들과 함께 무대에 올리기 위함이었다. 오랜만에 펼친 대본 속에는 청춘의 질투, 예술가의 고독, 그리고 삶의 아이러니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리고 마치 내가 거울을 보는 듯한 장면이 대본 속에 고스란이 나타났다. 그러기에 어떤 부분을 더 강조할까 밤새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체호프의 '갈매기' 이야기는 인물들의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인생의 불완전함 자체를 연극적으로 드러낸 작품이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깊게 다가왔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이 작품을 꾸준히 읽는다. 읽을 때마다 해석은 달라지고, 감정의 결은 깊어지며 체호프의 문장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내 마음을 흔든다.
이런 이유로 나는 이번 충북도를 대표하는 도립극단의 하반기 정기공연 '갈매기'에 유난히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아니 조금 더 솔직히 말하자면 충북도립극단이 창단할 때부터 도립극단에서 '갈매기'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깊숙이 있었다. 김낙형 예술감독은 이번 무대를 “시대를 넘어선 인간의 사랑과 욕망, 그리고 예술의 본질을 관객이 직접 체험하도록 만드는 무대”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단순한 재현이 아닌 관객이 체호프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감각적으로 호흡하는 무대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청주예술의전당은 러시아의 시골 호숫가로 변하고 그 위로 사계절의 빛과 그림자가 드리워질 것이다. 그 속에서 인물들은 인간의 욕망, 질투, 엇갈린 사랑, 그리고 외롭고 고독한 예술가의 운명을 살아낼 것이다.
체호프의 인물들은 완벽하지 않다. 그들은 실수하고, 흔들리고, 후회한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미완의 상태가 인간의 아름다움이다. 또한 '갈매기'의 이야기는 특별하거나 극적이지 않다. 우리의 삶처럼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하고 실패하고 다시 일어선다. 어떤 이는 자신이 만든 세계 속에서 무너지고, 또 어떤 이는 꿈을 좇아 떠나지만 결국 현실이라는 장벽을 이기지 못하고 돌아온다. 그리고 우리의 삶처럼 평범함 속에 인간의 진실이 스며 있다.
이번 공연은 단지 체호프의 고전을 재현하는 자리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고 예술의 의미를 다시 묻는 시간이다. 연극이란 결국 인간을 비추는 예술이다. 무대 위 인물들의 고백이 곧 우리의 이야기가 되고 그들의 눈빛과 침묵 속에서 우리는 자신을 본다. 사랑과 예술, 그리고 인간의 불완전함. 완벽하지 않기에 더 아름답고 극적이지 않기에 오히려 우리의 삶을 닮은 공연인 이번 충북도립극단의 '갈매기'를 통해 깊어가는 가을밤, 조용하지만 진솔한 위로가 관객 모두에게 닿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