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의심 사이, 카이로스의 시간을 건너는 시편

한혜영 시집 『하루는 믿고 하루는 의심하는』 출간

2025-11-04     도복희 기자
한혜영 시인

 

한혜영 시인의 신작 시집 하루는 믿고 하루는 의심하는(도서출판 상상인)은 제목처럼 흔들림을 숨기지 않는 정직한 신앙고백집이다.

시인은 삶의 파편을 교리로 봉합하지 않는다. 오히려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는 순간/세상 시계는 리셋되었다”(삶의 리셋)는 고백을 통해, 인간이 견디는 크로노스의 시간을 은총의 시간인 카이로스로 전환하려는 결단의 순간을 기록한다.

시집은 네 개의 부로 구성되며, 양철지붕 위의 욕망」 「두 가지 시간」 「복을 구하는 자들」 「거룩한 소수50여 편의 시가 실렸다.

양철지붕 위의 욕망에서는 높이와 열기의 이미지로 신앙과 욕망의 모순을 드러내며, 시적 자아는 승리의 감정이 아니라 체온의 윤리로 내려앉는다.

복을 구하는 자들은 기복신앙을 단호히 거부하고, ‘하나님 말씀 안에 둥지를 짓는 하루로 재정의한다.

시집 전반에는 믿음과 의심, 열정과 회의의 진자운동이 흐른다.

입장 바꿔 보기연작은 베드로의 배반과 통곡을 타자의 서사가 아닌 나의 자리로 재배치하며, 신앙의 길이 죄책감이 아닌 회복의 연습임을 일깨운다.

거룩한 소수바알에게 꿇지 않은 무릎의 상징으로, 다수의 열광보다 소수의 인내에 가치를 둔다.

한혜영 시인은 해설에서 양철지붕 위를 기어오르던 욕망의 발목을 스스로 낚아채며, 크로노스의 시간을 카이로스로 바꾸고자 한다고 밝힌다. 시인은 삶의 소모를 구원의 시간으로 환승시키는 내면의 변환을 기도의 언어로 길어 올린다.

하루는 믿고 하루는 의심하는은 신앙을 윤리적 명제로만 강요하지 않는다. 양철지붕의 열기, 가시덤불의 통증, 민들레씨의 가벼움 같은 일상의 감각 속에서 신앙을 기복의 욕망에서 건져 올려 삶의 지혜와 실천으로 다듬은 작은 기도서에 가깝다.

의심을 징계하지 않고 길들이며, 복의 허상을 걷어내고 복된 하루를 찾아가는 언어들이 바로 이 시집의 본질이다.

한혜영 시인은 충남 서산 출생으로 1989아동문학연구로 등단했다. 1994현대시학추천, 1996중앙일보신춘문예에 당선했다. 시집 태평양을 다리는 세탁소』 『올랜도 간다』 『맨드라미 붉은 마당을 맨발로, 동시집 닭장 옆 탱자나무』 『치과로 간 빨래집게, 장편소설 된장 끓이는 여자등 다수의 작품집이 있다.. 미주문학상, 한국아동문학창작상, 해외풀꽃시인상 등을 수상했다.

도복희 기자 phusys2008@dy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