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산 연풍 곶감 덕장에 가을이 익는다
‘가을의 정수(精髓)’ 연출
햇살 좋은 가을날, 괴산군 연풍면 한 곶감 덕장에는 주홍빛 감이 주렁주렁 매달렸다.
농민들은 정성껏 깎은 감을 실오라기처럼 한 줄 한 줄 엮는다. 살갗을 벗은 감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풍경은 그 자체로 ‘가을의 정수(精髓)’를 연출한다.
이미 잘 익은 감들은 나무 아래 풀밭에 떨어져 있고, 그 속에선 달콤한 술 향이 퍼진다. 감이 한 가득인 덕장 곳곳의 은은한 단내가 코와 침샘을 자극한다.
때아닌 폭우와 폭염, 가뭄으로 한 해 농사가 쉽지 않았지만, 감나무의 탐스럽게 영근 주홍빛 감들이 농민의 수고를 알아주는 듯했다.
감이 떨어져 썩기 전에 곶감으로 태어나려면 가지가 달린 채 잘라야 덕장에 걸 수 있다. 생각처럼 작업이 녹록지 않은 이유다.
“감 한 알이 입에 들어오기까지 허리, 어깨, 팔이 성한 데가 없어요.” 농민 오성태씨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고지 가위 끝으로 감을 따내는 일은 하루종일 팔을 들어 올려야 하는 인내의 시간이다. 이윽고 덕장에는 한 줄기 햇살이 스며들고, 매달린 감들 위로 바람이 지난다.
햇볕과 바람, 그리고 사람의 손길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괴산의 가을은 그 어느 풍경보다 따뜻하고 고요하다. 감 껍질이 마르고, 속살을 드러낸 감이 투명해지는 동안 농민의 얼굴에도 흐뭇한 안도감이 번진다.
“감이 제대로 말라야 곶감이죠. 햇볕이 잘 들어야 하고, 바람이 고르게 불어야 해요.” 오씨 웃으며 손에 쥔 감을 들어 보였다.
곶감 덕장마다 늘어진 감들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한 해의 결실이고, 다음 해를 기약하는 약속이다. 이렇게 괴산의 가을이 농부의 손끝에서 익어간다.
괴산 심영선 기자 sun5335@dy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