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향계/ 아동 유괴범죄, 꾸준한 교육으로 경계심을 갖게 하자
염건웅 유원대 경찰소방행정학부 교수
최근 몇 년간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아동 유괴 사건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4년까지 미성년자 대상 약취·유인 범죄는 208건에서 302건으로 꾸준히 증가하였으며, 2025년 1월부터 8월까지 유괴 및 유괴 미수는 319건으로 집계됐다. 하루 평균 1.3건이 발생하는 수준이다. 최근 서대문구 초등학교 유괴 미수 사건, 경기도 광명, 제주 서귀포시 등에서 연이어 발생한 초등학생 등 미성년자 납치 시도 등 한동안 잠잠했던 미성년자 약취·유인 시도가 갑자기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아동 유괴는 인간의 기본적 생명권과 안전권을 침해하는 중대한 범죄로, 사회적 파급력이 매우 크다. 최근 국내외에서 발생하는 유괴 사건은 과거의 단순 금전 목적을 넘어 성적 착취, 보복, 장기 매매 등 복합적인 동기를 보이고 있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은 범죄의 양상을 변화시켜, SNS와 메신저를 통한 그루밍(grooming)과 딥페이크 기술을 이용한 유인 등 새로운 형태의 위험을 초래하고 있다.
아동은 성인에 비해 범행대상으로 삼기 쉽다. 접근도 쉽고, 완전하게 제압하고 통제하기도 수월하다. 속이기도 쉽고 어른의 말을 믿거나 거짓말로 속이기도 쉽다. 바꿔서 이야기하면 범죄자가 군림하기 쉬운 대상인 것이고, 다시 말해 범죄자가 절대 갑, 아동은 절대 을의 역학관계가 형성되는 범죄이다. 그래서 어른들의 관심과 주의, 대책이 요구되는 범죄이다. 특히 아동 유괴의 상당수는 성적 착취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2009년 과거 통계 자료에서 아동 실종 및 유괴범죄에서 성적 목적이 19.8%로 나타났지만, 최근 5년간 아동 유괴 및 약취·유인에 관한 범행동기는 성범죄 목적의 유괴가 40%로 가장 많은 것으로 보도되었다
미국 어린이유괴예방기구 통계에 따르면 아동 유괴에 걸리는 시간은 ‘단 35초’라고 한다. 호감을 표시한 뒤 동정심이나 호기심을 유발하며 ‘착한 아이 신드롬’까지 자극하면 무방비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즉 성인에 비해 현저히 낮은 방어기제 마저도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애완동물을 잃어버렸어, 같이 찾아 줄래?”라고 하는 호기심 유발형과 “너 참착하구나, 예쁘구나, 이 짐 옮기는 것, 길 찾는 것 도와줄래?” 동기부여식의 접근은 아이들에게 언제 어디서나 통한다. 이런 형태는 부모로부터 “하지마라”란 소리만 듣다가 독립된 인격체로 인정 못받던 아이들을 우쭐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요즘 아이들은 어린이집에서부터 유괴 예방교육을 받는다. “싫어요, 안돼요, 도와주세요!”를 외우고, 위치추적기와 호신용품으로 무장한다. 그러나 실제 유괴 사례에서 강제로 끌고 간 건 25%뿐이며, 아이의 환심을 사서 스스로 따라나서게 한 경우가 75%라고 한다. 물론 어른들은 ‘낳선 사람 따라 가지마라’고 신신당부하지만, 아이들에게는 낯선 사람의 개념이 다르다. 유아와 초등학생들에게 “낯선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다. 아이들은 만화·영화에 나오는 전형적인 악당의 모습을 묘사했다. 얼굴에 칼자국이 있거나 우락부락 생긴 사람, 요란하거나 더러운 차림, 무서운 표정의 남성을 지목했다. 웃고 있거나 착하고 불쌍해 보이는 사람, 밝고 깨끗한 복장을 한 사람, 젊고 예쁜 여성 등은 ‘낯선 사람’이라고 보지 않았다.
결국 우리 기성세대는 아동약취·유인의 대책을 논할 때 어린의 입장으로만 바라보았다는 것이다. 이제는 거꾸로 뒤집어서 피해자의 시각, 즉 아동의 시각으로 범죄를 바라보아야 한다. 강의식 교육을 탈피하고, 역할극, 시뮬레이션, 체험형 프로그램을 통해 아동이 실제 위험 상황에서 대처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르도록 해야 한다.
부모를 대상으로 아동 안전 교육의 중요성, 디지털 환경의 위험성, 가정 내 대화 방법 등을 교육하는 프로그램을 정기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학부모를 1년에 한두번 학교로 초청하여 집중적인 예방교육을 실시하고, 부모가 예방교육을 실시하는 것은 매우 효과적인 예방책이 될 수 있다.‘어른은 아이에게 도와달라고 하지 않는다’,‘이유없는 호의나 선물공세에는 대가가 따른다’,‘세상에 공짜는 없다’,‘어른은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어른을 찾는다’, ‘아파서 못걷겠다거나, 길을 모르니 같이 가달라’고 하는 어른에겐 “도와줄 다른 사람을 찾을게요”, “112나 119에 신고하세요”,“지구대나 파출소에 가세요”라고 대응하도록 교육한다.
특히 해외에서는 AI딥페이크 기술로 부모의 음성과 영상을 흉내내서 아동을 특정 장소로 유인하는 수법도 전해지고 있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는 가족끼리만 아는 비상암호를 정해 놓는 것이 대처방법이 될 수 있다. 특히 온라인 그루밍을 거쳐 만남을 유도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만난적이 없는 온라인 지인은 실제로는 모르는 사람이다’라는 공식을 알려주어야 한다. 그리고 부모의 소셜미디어에 자녀신원과 등하교 패턴을 절대 공개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항상 아이의 온라인 활동을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
아동을 상대로 한 유괴나 납치는 순식간에 일어나기 때문에 누구든지 방심하면 당하기 쉽다. ‘아차’ 하면 이미 늦는 것이다. 만약 범죄 피해자가 되면 아이는 성인이 된 후에도 평생 고통 속에서 상처를 안고 살아야 한다. 때문에 범죄 예방법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다섯 가지만 주의해도 길에서 발생할 수 있는 아동 유괴범죄의 90%는 예방할 수 있다. 첫째, 등하교 때는 혼자 가지 말고 친구들과 함께 움직일 것. 둘째, 길에서 접근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경계심을 갖고 빨리 피할 것. 셋째, 차량에 타고 있거나 세워놓고 말을 걸어오면 대꾸하지 말고 최대한 멀리 떨어질 것. 넷째, 아는 사람이라도 함부로 따라가지 말고 바로 부모에게 전화할 것. 다섯째, 누군가 접근해 음료수나 음식물 또는 선물 등을 주면 절대 받지 말고 피할 것 등이다. 만약 이런 일이 있으면 부모에게 바로 알리도록 하고, 부모는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
어린이를 상대로 한 범죄 예방은 평소 꾸준히 해야 한다. 어쩌다 한 번씩 하거나 사건이 일어날 때만 하면 별로 효과가 없기 때문에, 끊임없이 주지시켜 본능적인 경계심을 갖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실제 상황에서 교육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