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칼럼/ 술 취한 공화국의 비상계엄

김종대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2025-11-12     동양일보
▲ 김종대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필자는 곧 다가올 12·3 비상계엄 1년에 맞춰 당시 상황을 정리하는 책을 준비하고 있다. 벌써 반년 가까이 수사기관의 진술조서와 재판기록을 읽고 정리하면서 당혹스러운 현상을 발견했다. 계엄이 선포되던 날, 대한민국은 온통 술판이었다.
국회에 난입한 특전사의 경우, 가장 많은 부대원인 120여 명이 국회 본청에 투입된 1공수여단 2대대는 원래 국회 본청에 투입하려던 부대가 아니었다. 밤 10시 27분에 계엄이 선포되고 1공수 전 부대에 비상소집령이 하달되었는데, 국회에 투입되어야 할 5대대 지휘관이 음주 상태에서 전화를 받지 않은 것이다. 이 때문에 본청 진입 부대가 5대대에서 2대대로 바뀐 것이다. 방첩사의 정치인 체포조는 방첩수사단이 맡았다. 계엄 직후 방첩사령부 인근 수사단 건물 로비는 비상 소집된 수사관들로 북새통이었다. 수사단장이 “1조 이재명, 2조 한동훈”을 지정해 주며 국회로 출동을 지시하는 동안, 지시를 받는 대원 중 일부는 만취 상태에서 로비 복도 벽에 기대어 퀭한 눈으로 지시를 기다리기도 했다. 수방사 벙커에 정치인 구금 시설을 알아보러 출동해야 할 수사과장은 만취되어 다른 사람이 대신 출동했다. 국회에 처음 투입된 수도방위사령부 대테러부대인 제1경비단과 군사경찰단은 아예 비상소집을 하면서 “음주운전 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지시를 하였는데, 이는 부대원 상당수가 음주 상태라는 점을 감안한 조치다. 서강대교 북단에서 대기했던 제1경비단 2특수임무대대가 탄 버스 안에는 술 냄새가 진동했다. 이들 부대는 계엄이 선포되기 몇 시간 전부터 “북한 오물풍선이 심각하니 음주를 자제하고 통신 축선상에 대기하라”는 지시가 내려진 상황이었다. 일부 간부들은 부대에 비상 소집될 때 음주 운전하지 않으려고 부인이 대신 운전을 했다. 더 결정적인 장면이 있다. 수방사 방공여단 지휘관이 고등학교 동창들하고 술에 취해 전화를 받지 못한 것이다. 이 때문에 특전사 707특임부대원들이 탑승한 헬기 12대의 국회 진입에 차질이 생겼다. 늦어진 헬기 도착은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구했다.
최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윤석열 피고인에 대한 내란 혐의 재판에서도 온통 술 이야기다. 윤 피고인은 계엄을 모의한 것으로 알려진 작년 사령관들과의 만찬에서 “만나자마자 폭탄주를 돌리지 않았느냐”며, 술에 만취한 당시 만남이 “내란 모의라고 볼 수 없다”는 주장을 한다. 윤석열은 그 해 폭탄주 20~30잔은 기본이었던 사령관들과의 만찬에서 총 9차례 비상조치권을 언급했다. 한 만찬 자리가 끝나고 여인형 방첩사령관은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내가 대통령을 들이받았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고, 술을 못하는 곽종근 특전사령관은 차에서 내려 구토를 했다. 마셔도 어지간히 마셔야지 죽기 살기로 마신 거다. 지금 윤석열 측은 만취할 수 밖에 없었던 정황을 더 노골적으로 생생하게 묘사하며 “그게 술자리지 무슨 내란 모의냐”고 반문한다. 윤석열 피고인은 사령관들에게 손수 계란말이를 해 주었고, 김치가 맛있었다는 등의 술자리 정황을 장황하게 나열하면서, 술과 안주가 넘치는 그런 자리는 내란을 모의하기에 부적절하다고 주장하는 듯 하다. 이에 대해 곽종근 특전사령관은 ‘국군통수권자와의 술자리’라는 점을 강조하며, 당시 윤석열의 정치인 ‘체포’와 ‘사살’에 관한 끔찍한 이야기를 또렷한 기억으로 증언한다.
정변은 술자리에서 결정되었고, 술 먹은 계엄군에 의해 실행되었다. 애초부터 맑은 정신으로 숙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무작정 돌진한 것이다. 이 과정을 찬찬히 복기하다 보면 어느새 필자 자신도 술에 취한 듯한 느낌이 들 정도다. 이런 일련의 현상에 대해 필자는 대한민국 정치와 군사의 ‘자폭’ 현상이라고 본다. 도대체 이 나라는 술 못 먹어 죽은 원귀들이 한꺼번에 살아난 것인지, 제정신의 나라로 보여 지지 않는다. 그리고 국가의 정치는 자살을 선택했다. 단지 필자는 대한민국 간의 해독 능력이 이들의 독한 술을 견딜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러다가 나라마저 간경화에 시달리면 안 되는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