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문화예술 속 성평등, 함께 만드는 공감의 무대

이상엽 충북도 문화예술산업과 주무관

2025-11-13     동양일보
▲ 이상엽 충북도 문화예술산업과 주무관

올해 청주에서 열린 한 연극공연을 관람한 한 관객은 이렇게 말했다. “오랜만에 무대 위 여성 인물이 누군가의 아내나 엄마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 온전히 그려진 작품을 봤습니다.” 이 짧은 한마디는 우리 문화예술 현장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한다. 예술은 자유와 창작의 영역이지만, 그 무대 뒤편에는 여전히 성별에 따른 인식의 벽이 존재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25년 3월 발표한 2024년 ‘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3년 예술인의 평균 예술활동 소득은 약 1055만원으로, 근로소득자 평균의 약 41% 수준에 그쳤다.
또한 “여성이 남성보다 불평등한 처우를 받는다”고 응답한 비율이 19.2%로, “남성이 불평등하다”는 응답 8.3%의 두 배 이상이었다. 창작의 기회와 환경이 성별에 따라 다르게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이다.
예술은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다. 우리가 만들어내는 문화가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면, 그 사회의 시선 역시 균형을 잃게 된다. 최근 다양한 콘텐츠에서 ‘젠더 감수성’이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떠오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성평등을 제도로만 접근하기보다, 문화예술을 통해 자연스럽게 체화된 ‘공감의 언어’로 확산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충북도는 지역 문화예술 현장에서 성평등 가치가 스며들도록 노력하고 있다. 충북문화재단의 ‘문화다양성 확산사업’은 청소년, 장애인, 여성 등 다양한 주체가 참여해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예술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예술인 창작지원 사업을 통해 더 많은 예술가들이 성별과 무관하게 공정한 기회를 얻고, 지역 사회 속에서 창의적인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해외에서도 이러한 변화는 확실히 나타난다. 스웨덴은 세계 최고 수준의 성평등 국가로, 2014년부터 세계 최초로 ‘페미니스트 정부’를 표방하며 모든 정책 영역에서 성평등을 우선 가치로 추진했다.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성별 균형을 위한 적극적 정책을 펼친 결과, 여성 창작자와 의사결정자 비율이 크게 늘고, 예술 콘텐츠의 폭과 다양성도 한층 확장됐다. 성평등은 여성만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사회의 창의성과 문화 경쟁력을 높이는 길임을 보여준다.
문화예술은 이념이 아니라 ‘공감’을 다루는 영역이다. 숫자로 설득하기보다 감성으로 마음을 움직인다는 점에서, 예술은 성평등 실현의 가장 강력한 동반자이다.
지역 축제의 한 장면, 공연의 한 대사, 전시의 한 작품 속에 평등의 메시지가 스며들 때 시민들은 일상속에서 자연스럽게 그 가치를 체험하게 된다.
우리 사회는 이제 법과 제도를 넘어 ‘생활 속 성평등’으로 나아가야 한다. 정책으로 강요된 평등보다 문화로 스며든 평등이 더 오래 남는다.
충북도 문화예술산업과는 앞으로도 지역의 예술가, 시민, 기관이 함께 참여하는 ‘성평등 문화 생태계’ 조성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다.
문화예술로 피어나는 평등, 그 무대의 첫걸음은 바로 우리 곁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