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칼럼/ AI 시대, 대학 평가의 위기와 교육혁신의 과제
손애경 글로벌사이버대 교수
최근 대학가를 흔든 AI 활용 시험 부정 사건은 단순히 학생 개인의 윤리적 문제로 치부될 수 없다. 국내외 대학에서 발생한 유사 사례들은 대학 평가 시스템과 교수 중심 교육의 근본적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AI를 이용한 부정행위는 단순히 시험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는 상징적 의미를 넘어, 대학이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평가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 물음을 던지고 있다. 대학 시험의 대부분은 여전히 배운 내용을 재생산하는 능력을 평가한다. 그러나 학생들이 이미, 대규모 언어모델(LLM) 기반 AI가 인간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논리적 답안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이러한 AI를 활용해 시험에 응시한 사건은, 기존 평가가 측정하려던 능력 자체가 시대에 뒤떨어졌음을 폭로하고 있다.
모든 학문적 지식 습득이 절대적으로 그렇게 폄하되어서는 안 되지만, 적어도 AI 활용이 일상화된 학생들에게 지식을 단순 반복 암기 재생하는 능력만을 학습 성취도로 평가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대부분의 과목 평가가 AI 활용 여부를 단순히 부정행위 여부에 초점을 맞추는 대응은 이제는 시대착오적이며, 문제의 핵심을 회피하는 셈이다. 대학 교육의 목표와 평가 방식 사이에 존재하는 심각한 괴리를 이번 일련의 사건을 계기로 좀더 근본적으로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한편, AI 활용 논란은 교수진들에게도 근본적인 역할 재정립을 요구한다. 교수는 더 이상 지식 전달자가 아니라, 학생이 자신의 사고와 판단을 확장하고, 지혜를 창출하도록 돕는 촉진자(Facilitator)의 역할이 필수가 되었다. 교수진도 더 이상 강의실에서 단순 정보 전달을 멈추고, AI를 금지하거나 통제하는 소극적 자세에서 벗어나, AI를 능숙하게 활용하고 교육 과정에 통합하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어떤 면에서는 학생이 교수보다 더 뛰어나게 AI를 활용하고 더 앞서나가기도 할 것이다. 이런 때일수록 교수들은 고인 물처럼 정체되어 있으면 안 된다. 좀더 더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학생들에게 AI 활용법, 데이터 해석, 생성된 답안의 비판적 평가와 수정 방법 등을 가르치는 것을 필수적으로 해야 할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AI의 물결은 갑작스럽게 밀려온 쓰나미처럼 모든 분야에 전방위로 휩쓸고 있다. AI는 대학을 위협하는 적이 아니라, 지혜 창출을 위한 도구이자 학습 파트너로 받아들여야 한다. 교육 목표와 평가 방식을 근본적으로 혁신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기존 시험 중심 평가를 대체할 창의적 문제 해결과 심층적 통찰력 측정 평가로 전환할 필요성이 있다. 개략적이나마 다음에 제시하는 방향을 중심으로 교육의 목적과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본다. 첫째, 교육 목표를 지식 습득에서 지혜 창출로 전환해야 한다. AI 시대의 핵심 역량은 정답을 아는 능력이 아니라, 적절한 질문을 설정하고 AI 결과를 비판적으로 평가하며, 이를 창의적으로 발전시키는 능력이다. 이를 위해 강의는 토론, 프로젝트, 문제 정의 워크숍 중심으로 재편되어야 하며, AI 활용 윤리와 프롬프트 설계 역량도 정규 교과에 포함시켜야 한다. 둘째, 평가 방식은 결과 중심에서 과정·현실 적용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 단순 암기형 시험을 폐지하고, 현실 문제 해결형 프로젝트, 비판적 사고 과제, 구술·토론 평가 등을 통해 인간만이 수행할 수 있는 영역을 측정해야 한다. 셋째, 교수는 이러한 변화 속에서 AI를 활용한 학습 설계자이자 학생 주도적 학습의 안내자로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AI가 제공할 수 없는 인간적 통찰과 윤리적 판단을 교육 현장에 녹여내는 것이 필수적이다.
AI 시대의 교육 위기는 단순한 기술적 문제를 넘어, 대학 존재의 근본 이유를 재정립할 기회다. 기존 패러다임에 안주하면, 학생들은 AI의 손쉬운 도움에 의존한 가짜 학습에 만족하게 되고, 대학은 시대의 변화에 뒤처진 박물관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대학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AI를 적이 아닌 학습 혁신의 도구로 받아들이고, 지식을 넘어 지혜를, 단순한 답습을 넘어 창의적 통찰을 가르치는 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제 AI가 열어준 격변의 시대는, 대학이 스스로 교육 철학을 재정립하고, 미래형 학습과 평가 혁신을 실현할 용기를 시험하는 무대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무엇보다도 교수는 윤리적 리더십을 발휘하는 학문의 수호자가 되어야 한다. AI 사용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시대일수록, 교수들은 학문적 정직성과 윤리적 책임감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 단순히 처벌 규정을 강화하는 것을 넘어, 왜 스스로 생각하고 노력하는 과정이 중요한지를 설득력 있게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교수진은 AI 사용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투명하게 설정하고, 연구 및 학습 과정에서 지켜야 할 윤리적 원칙을 강조함으로써 학생들에게 지식 탐구의 올바른 길을 안내하는 도덕적 나침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대학 교육의 가치가 궁극적으로 인간으로서의 성숙에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교수진의 인식 전환과 능동적인 혁신이 뒷받침될 때에만, 대학은 AI가 가져온 격변의 시대를 극복하고 미래 사회에 필요한 진정한 인재 양성 기관으로 그 존재 가치를 공고히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