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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윤 수필가

2025-11-19     동양일보
▲이호윤 수필가

경서가 온다. 경서는 2, 3년에 한 번 귀국하곤 한다. 대학 때 잠깐 친하게 지냈다가 멀어졌는데 그녀가 호주로 이민 간 후 우리는 다시, 아니 해를 거듭할수록 더욱 돈독해졌다. 지난번 방문 때는 서로 바빠 겨우 딱 한 번 만날 수 있었다. 이번엔 적어도 두 번은 만나자고 우리는 벼르고 있다.

우정을 나누는 데 거리는 상관없다. 더구나 요즘같이 인터넷 기술이 발달한 때에는. 나의 소울메이트 설화도 차로 한 시간이면 만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일 년에 한두 번 만나는 게 고작이다. 사귄 지는 몇 년 안 되지만 속마음까지 통하는 친구 알렉스도 불과 30분 거리에 사는데 역시 거의 만나지 못한다.

이쯤 되니 남편이 가끔 놀릴 수밖에. 그렇게 안 만나는데 친구 맞냐고. 나는 피식 웃는다. 꼭 만나야 친구야? 못 만나기도 안 만나기도 한다. 불현듯 친구가 보고파 바람처럼 휙 달려갈까 할 때도 있었지만 대개는 참았다. 그렇다. 나는 친구 만나는 일을 아껴둔 곶감 하나 꺼내 먹듯 한다.

거의 일 년 만에 만나 서로 얼싸안고 반가워 발을 동동 굴렀던 알렉스는 내게 이런 말을 했더랬다. 우리가 자주 만나지 못하는데도, 이렇듯 서로 그리워하며 우정을 이어갈 수 있는 데에는 서로의 일상을 나누지 않는 까닭도 있다고. 정말 그럴까?

나는 SNS로도 일상을 공유하는 일이 드물다.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공유했던가. 우리 삶의 방향과 가치, 종교, 우리가 속한 세상과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 또 꽂혀 있는 음악이나 영화, 책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한다. 인생의 반환점을 돌아선 나이이니만큼 서로의 주름진 세월 속에 깊이 팬 흉터 하나쯤은 못 본 척해 주기도, 토닥토닥 어루만져 주기도 한다.

가만 생각해 보니 나는 친구가 아까운가 보다. 너무 소중해서 물리적인 거리나 밀착된 일상으로 반들반들해지고 닳아빠진 모습인 게 싫은 거다. 날마다 들고 나가는 데일리 백이라기보다는 더스트 백에 넣어 옷장 안에 고이 모셔둔 명품 백이라고나 할까. 심지어 어쩌다 중요한 날 들고 나갔을 때 비라도 만나면 젖을까 봐 품에 안아드는 소중한 백. 물론 내게 명품 백 같은 게 있을 리 없지만.

그녀를 생각하며 달력을 들여다보다 문득 올해의 막이 내릴 때가 된 것을 깨달았다. 어느새 12월도 코앞이니 휴대전화의 연락처 정리를 할 때다. 3년 이상 안 만난 사람, 적어도 3년 안에는 안 만날 것 같은 사람의 연락처는 지운다. 언제고 만나고 싶은 사람,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의 번호는 그대로 둔다. 만나고 싶은 사람은 만나야 하고,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은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 나는 생각한다. 내 연락처도 누군가의 목록에서 지워지고 있을까? 당연히 그럴 수 있겠지. 남아 있다면 나는 만나고 싶은 사람일까, 피하고 싶은 사람일까.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이는지에 몹시 신경 쓰던 때도 있었다. 만나서 괴로운 사람도, 못 만나서 괴로운 사람도 있었다. 혼자여서 외로웠고 함께여도 외로웠던 시절도 지나왔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고통이었다. 나 자신을 깊이 사랑하고 보듬어 안아주면서부터였을 것이다. 혼자일 때도 함께일 때도 평안하다. 누군가에게 지워진들 대수랴. 이제 내 눈은 내 안으로 쏠려 있다. 다른 모든 사람도 각자의 평안을 누리기를 소망한다. 나의 평안이 그의 평안이 되기를, 그의 평안이 나의 평안이 되기를 욕심내지 않는다.

경서를 만나는 날, 그녀의 평안과 나의 평안이 마주 보고 웃는 그날. 함께 건너는 그 시간이 얼마나 가만히 반짝일지 자못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