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향계/ 김장문화

맹주완 순천향대 아산학연구소장

2025-11-24     동양일보
▲ 맹주완 순천향대 아산학연구소장

“요즘은 핵가족 시대라서 간장, 된장, 고추장, 김치까지 사서 먹는다는 걸 어머니도 아시잖아요. 김치를 주문해서 먹으면 간편하고 맛있는데 왜 고생을 사서 하는지 모르겠어요. 시대가 변했으니 어머니도 변하셔야 합니다. 앞으로는 김치를 사서 드시는 게 좋겠어요.” “옛날엔 연탄 들이고, 쌀 사고, 김장하면 겨울준비 끝냈다고 할 정도로 김장이 중요했어. 요즘엔 식구도 적고, 김치도 그전처럼 많이 먹지 않으니까 김장의 중요성이 점점 떨어지고 있지. 매년 김장 때 가족들을 불러 모으는 건 내가 구닥다리라서가 아니다. 김장 김치는 겨울 내내 먹잖니. 긴 시간 서로 느끼면서 겨울을 나는 거지.” 며느리와 시어머니 둘의 주장은 김장에 대한 세대별 시각차를 보이고 있다.

살얼음이 생기고 첫눈이 내리는 소설(小雪)엔 전통적으로 무와 배추를 거둬들여 김장을 하면서 겨울을 준비했다. 김장의 가장 큰 어려움은 배추를 절이고 양념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특히 아파트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김장은 배추를 절이는 일부터 손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 물의 사용과 빠짐이 좋은 욕실의 욕조가 선택될 것이고 절이고 씻는 기간 동안 비눗물이나 세제가 튀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된다. 그래서인지 절임배추 시장도 성장하고 있다. 김장에 들어가는 재료는 지역이나 집안마다 다양하지만 기본적으로 무, 고춧가루, 파, 마늘, 소금, 젓갈류 등은 필수 요소들이다. 준비된 재료들을 잘 배합하여 김칫소를 만들면 넓은 거실에 둘러 앉아 절인 배추 사이사이에 속을 넣는 단순하지만 신경써야할 과정으로 이어진다. 아직은 낯익은 풍경이다.

“끓는 물에 된장을 약간 풀고 파, 마늘, 양파를 넣은 주머니를 넣는다. 청주를 부어준다. 돼지 목살을 넣어 삶는다. 생강은 누린내를 없애주는데 고기가 거의 익었을 때 넣는다. 단백질이 응고된 뒤에 넣어야 효과가 좋기 때문이다. 고기가 익었다 싶으면 찬물을 붓고 한 번 더 끓여준다. 찬물은 고기의 근육을 수축시켜 쫄깃한 맛을 나게 한다. 2시간정도 삶고 식혀서 칼로 썰 때는 근 섬유질이 많은 부위이므로 섬유의 방향과 수직 방향으로 썰어준다.” 김장하는 과정은 고되지만 김장김치가 김치 통에 담겨지면 다함께 모여앉아 겉절이와 수육을 먹는 과정을 거쳐야 김장하는 잔칫집 상황은 종료된다.

나눔과 공동체정신을 엿볼 수 있는 우리의 김장문화는 유네스코에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국제적 위상을 갖추게 되었다. 우리가 매일 즐기는 김치는 무려 100가지가 넘으며 지역마다 가정마다 고유의 맛과 멋이 담겨있지만 온 가족과 이웃이 모여 김장하는 전통문화는 단순한 노동의 현장이 아닌 혹독한 긴 겨울을 견뎌내기 위한 생존의 방식이자 결속의 상징이었다. 다만 도시화로 아파트 인구가 증가하고 냉장고와 김치냉장고의 보편화는 계절적 제약에서 우리를 해방시켰고 김장문화와 식생활에도 양향을 미치고 있지만 아직은 곳곳에서 김치 축제가 열리고 대기업들도 김치시장에 뛰어들고 있으며 김치타운과 박물관을 운영하는 지자체가 늘고 있다.

한 통계에 의하면 우리 식탁에 오르는 김치 중 가족이나 지인으로부터 얻는 경우 약42%, 상품김치 구입이 약35%, 직접 담구는 경우가 약20%로 나타났으며 김치를 아예 먹지 않는 가정도 늘고 있다. K-푸드 최대 수출 대상국으로 미국, 일본, 중국이 순위를 다투고 있으며 우리의 수출을 주도한 품목은 라면과 김치였다. 이제 글로벌 시장에서도 각광받는 김치의 또 다른 매력은 다른 식재료와의 조화와 궁합에 있다. 특히 찬바람이 부는 겨울철이면 직장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점심식사 메뉴가 얼큰하고 뜨끈한 국물이 제격인 김치찌개라는 조사결과가 말해주며, 돌판 위에 올려 진 삼겹살에 김치의 흥분되는 조합이 어우러진 식탁을 그 누가 마다할 수 있겠는가.


소설인 11월 22일은 우리 김치의 우수성과 김장문화를 알리는 김치의 날로 몇 해 전부터 기리고 있다. “올 김장은 유난히 잘 익었어! 다른 반찬 필요 없이 김치만으로 밥그릇을 비운다니까. 겨울은 매년 오는데 김치 없이 어떻게 겨울을 나라고.” (직접인용 부분은 허영만 <식객 6>의 도움을 받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