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향계/ 시향제가 던지는 질문

나기황 시인

2025-11-25     동양일보
▲ 나기황 시인

요즘 들어 ‘시·향제 時享祭’를 지내느라 바쁜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해마다 반복되는 의례지만 느끼는 감회는 매년 다르다. 세월이 스며든 탓이다. 문중 묘역이 원거리에 산재돼 있는 경우는 시간에 맞춰 참례하는 것 자체가 보통 일이 아니다. 새벽같이 집을 나서야 할 때도 있고, 하루 전에 도착해서 숙박을 하고 묘제에 참석해야 하는 종원들도 있다. 차량을 대절하거나 삼삼오오 짝을 지어 이동하기도 하지만 묘제에 참석하는 연령층이 대부분 60대에서 80대까지 걸쳐있으니 산길을 오르고 제례를 챙기는 일 모두가 간단치 않다. 그도 그럴 것이 2~30년 전부터 종중 출입을 하던 이들이 그대로 나이가 든 셈이다. 종사에 관심을 가지고 시제에 참석하는 젊은이들이 뒤를 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게 현실이다. 어느 문중이나 아마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을 것이다. 예전에는 시제일 전에 누군가 풀을 뽑고 돌을 고르고 해서 묘역을 돌본 흔적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집안 어르신들도 “어허, 아무개가 다녀간 모양이구먼”하고 숨은 공로를 치하하며 흐뭇해 하기도 했다. 낯을 내려고 한 일이 아니고, 그야말로 조상을 기린다는 순수한 마음이 이심전심으로 통했던 것이다. 그때만 해도 조상을 위하는 마음 거지를 행동으로 보여주던 ‘어르신’들이 꽤 있었다.
제향의 날짜를 기억하고, 축문을 쓰고, 진설의 순서를 가르쳐주고, 홀기(笏記)에 맞춰 제례를 봉행 하도록 이끌어주던 분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 제례의 형식이나 방식도 많이 간소화되고 각 문중의 형편에 맞게 치러지는 것이 일반화 됐다고 하지만, 시사를 치르다 보면 그분들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어렵게 묘제에 참석한 집안 원로들께 힘드신데 예까지 먼 걸음을 하셨다고 인사를 드리면, “우리 가고 나면 누가 하겄어. 한번이라도 더 와 봐야지”하고 흐리는 말끝에 씁쓸함이 묻어있다.
제례는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한 집안이 쌓아온 시간의 두께다. 그 전통과 역사를 지키려는 후손들이 해가 다르게 줄고 있는 현상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자연스레 ‘이 세대가 지나가면, 과연 누가 이 산길을 오를까?’ 하는 질문이 남게 된다.
물론, 전통 제례 문화가 쉽게 사라질 것이라고 믿거나 바라는 사람은 없다. 제례는 강요된 예법이 아니라 기억의 행위이며, 삶을 이어 준 뿌리에 대한 감사이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가 어려워하는 것은 조상을 기리는 마음이 없어서 가 아니라, 그 절차가 너무 복잡하고 낯설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하면 안된다.”는 식의 전통의 틀을 지키려는 완고함이 젊은이들에게는 자칫 제례가 ‘고리타분’ 것으로 비쳐 질 수도 있다. 기성세대도 젊은 세대들이 사회생활을 하며 시제에 온전히 참석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공감해야 한다.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제례가 품고 있는 조상을 기리는 참뜻부터 다시 새롭게 새겨야 한다. 우리의 삶 속에서 실천 가능한 형태로 전통적인 예법을 살리고 제례 문화를 재구성할 필요가 있음이다. 후손들이 즐겁게 봉사활동 하듯이 정기적으로 만나 묘역을 돌보는 일, 가족 사가 담긴 기록물을 정리하고, 디지털 추모 공간이나 시간을 마련하는 등 새로운 방식으로 추모 문화를 개선할 여지가 있다는 얘기다. 전통이란 세월과 사람의 손을 거치며 계속 다듬어 온 살아 있는 문화다. 전통을 지키는 것은 ‘기억을 잇는다’는 것이다.
미국의 시인 롱펠로우는 “죽은 이들은 우리가 그들을 잊을 때 비로소 완전히 죽는다”고 말했다. 공자도 “인(仁)이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조상을 기억하는 마음이 결국 사랑의 또 다른 형태라고 한다면,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보다 분명해진다. 복잡한 제례의 규칙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의미와 정서를 공유한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 세대가 제례를 통해 다음 세대에 단 한 가지라도 남겨야 한다면 그것은 ‘형식의 계승’이 아니라 조상이 남겨 준 훌륭한 유산을 보존하고 기억하려는 자세, 그리고 그분들의 삶 의 역사 위에 우리가 서 있다는 자각, 화목하게 잘 살겠다는 후손으로서 다짐 같은 것이다. 산을 내려오며,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말아야 할 시향제의 진정한 가치는 무엇일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