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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마른 꼭두서니가수두룩한 기억 속에 엉켜 있네포복하지 않고 기어올랐던뺨이 붉어지고 불길처럼 일어섰던 숲을바람이 훑고 가네 푸른 이파리로 만나 꼭두서니 빛으로 물들 때내 천연의 빛깔이 뿌리 깊어졌네사랑 후에는 오는 부재의 것으로 비어부서질 듯한 그때를 붙잡고까맣게 맺힌 채마른 줄기는 속절없이 꺽이고 말았네 기억하는 동안은 사랑이라 하네내 몸 오래살이 덩굴 풀스스로를 거둬들이는 고통은 뿌리에 남고아름다움의 허무또 한 해는 버려져메마른 몸은 희뜩희뜩 얼룩을 밀어 올리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4.10.29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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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은 쌀끼리 몸 비비며 몸을 씻는다쌀은 쌀끼리 몸 비비며 눈을 뜬다쌀은 쌀끼리 몸 비비며 어깨를 걸고쌀은 쌀끼리 몸 비비며 부둥켜안는다쌀은 쌀끼리 몸 비비며 함성을 지르고쌀은 쌀끼리 몸 비비며 한숨을 토한다 아, 뉘우칠 것 없는 저 순백의 영혼 맵찬 바람 잦아들고드문드문 듣는 빗방울고요하고 고요하여 아무 할 말이 없는 나는 밥이다날마다 먹어야 할 밥이다 쌀은 쌀끼리 몸 비비며 몸을 씻고쌀은 쌀끼리 몸 비비며 눈을 뜬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4.10.28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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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가 내린다황혼비라서인지 힘이 없이 내린다건들바람이 분다생(生)을 마친 잎이 단풍잎이 되어힘없이 흔들거리며 나무 멀리 날으며 떨어진다그 옆에 환혼인생이 단장을 짚고단장에 의지하여 느릿느릿 걷는다천하에 생물은 한번은 황혼기를 맞는데사람들은 저 세상을 바라보면서꿈을 꾸며 황혼기를 거치고 있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4.10.27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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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촉히 비 내리던 봄날부드러운 그대 입술에처음 내 입술이 떨며 닿던 그날 그 꽃자리글썽이듯 글썽이듯꽃잎은 지고 그 상처 위에 다시 돋는 봄그날 그 꽃자리그날 그 아픈 꽃자리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4.10.26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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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씨 흔들리는 소리한참 만에에취!바싹 마른 고추가바싹 마른 할머니를 움켜쥐는 소리더는 못 참겠다는 듯마당가 개도취이!마주 보는 주름살다듬는세월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4.10.23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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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자 홍대용 세상 떠남(조선정조 7년·1783)△소설가 심훈 태어남△한국방송문화협회 발족(1961)△한국과학기술연구소 준공(1969)△남북통일축구대회△4회 남북총리회담 평양에서 열림(1991)△스페인 화가 파블로 피카소 태어남(1881)△1회 유엔총회 뉴욕서 개막(1946)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파리 협정 조인, 서독의 주권회복 및 NATO의 가입을 승인(1954)△헝가리 부다페스트서 학생들 반정부시위(1956) △일본, 중국과 평화우호조약비준서 교환(1978)△22회 세계양궁대회 여자단체 개인종합 우승(1983)△레바논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4.10.22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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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고두고가슴에서 커가는아버지 말씀을듣고 싶다. “너도 어른되어아빠하면 알지...” 말이 그렇지팔남매 손벌려다가설 때마다차츰 휘어지신 등허리 어미소 큰 눈망울새끼 날 달아버지 말씀도덩달아 부자.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4.10.22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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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오늘도 그대를 위해창밖에 등불 하나 내어 걸었습니다.내 오늘도 그대를 기다리다 못해마음 하나 창밖에 걸어 두었습니다.밤이 오고 바람이 불고드디어 눈이 내릴 때까지내 그대를 기다리다 못해가난한 마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눈내린 들길을 홀로 걷다가 문득 별을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4.10.21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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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 구계동 해변에서 알았다세상에, 자갈자갈제 이름 부르며 구르는 놈들이과연 얼마나 있을까하루 종일, 아니제 목숨 다하는 날까지서로 밀고 당기며 어깨 토닥여가며제 이름 이웃 이름 부르다 금이 간 목청소금물로 가글가글 헤우며온몸으로 부르는 이름부르다 바닷물에 절인 가없는 시간들로곰삭으며 뭉개어지는 이름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4.10.20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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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일일까이틀이 멀다하고국수로 저녁을 대신하던우리 집 작은 부엌장작불이 지펴지던 것은그 날어머니는 밤새아궁이를 지키시며잦아드는 불꽃에 숨을 몰아 넣으시곤 하셨다별빛 한 줄기 감나무 빈 가지에 걸렸던 그 해 겨울형님의 사랑방은 끝내 일어설 줄 모르는데그 다음 날도 불은 지펴지고어머니는 밤을 뽀얗게 지키고 계셨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4.10.19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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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을 닫는다. 바람은 더 이상 필요가 없다. 바람에 있어서, 우리는 이미 부자다. 오래전부터. 이봐 빛은 어디로 갔지. 그는 손가락을 들어 간신히 구석을 짚는다. 그곳은 뜨거웠다. 가라앉을 줄 모르는 우리들의 이마처럼. 높은 곳에서, 의지 할 곳 없이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듯 그는 작고 날카로운 칼을 꺼낸다. 그 칼로부터 오후가 시작되고 끝난다. 나는 이상한 적요에 시달린다. 각도는 빛에서 색으로 변한다. 그는 그 칼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스스로 칼이 되어버린 사내처럼.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바람으로만 부유하다. 이것만이 우리의 재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4.10.16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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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태어나면서부터 나와 함께 했다 처음에 그는 아버지의 밀지를 나에게 전하는 밀사였는데 어느 작명가를 만난 후 그의 수하가 된 자이다 아버지와 그는 그렇게 결별했다 그의 대부분이 나였으므로 나는 그로 살았다 그러나 그는 다른 사람들의 몸에 들어 살다가 문득 연두빛 여자의 달콤한 입김으로 어느 때는 둘도 없는 친구의 익숙한 목소리로 또 어느 때는 텔레마케터의 낭랑한 음성으로 나를 데리러 온다 나를 불러 세운다 문득 돌아본다 그는 전직 밀사답게 사라지고 없다 그는 언제나 낯설다 어느 날은 내 시를 데리고 나간 그가 문예지 어둑한 페이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4.10.15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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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의 아버지께서 부채 한 자루 사 오셨다속살이 오십 개나 되는 백접선이었다흰 부골에는 까만 수침목을 받쳤고백동으로 사북을 한 제법 기품이 있는 부채였다에어콘도 있고 선풍기도 있는데 웬 부채냐 하니까호박 선추 가볍게 흔들며 하시는 말씀이어느 노을 녘, 당신이 걸어온 길 되짚어봤더니그 길이 부챗살만큼이나 여러 갈랜 줄 알았는데그 길이 넓고 먼 바다로만 뻗어간 줄 알았는데그게 아니더란다 부채를 보니 아시겠더란다사람마다 파란만장이라 장광설을 늘어놓지만결국은 되돌아와 사북자리에서 하나로 만나는 것을거기서 백동 한 닢으로 묶이고 마는 것을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4.10.14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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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인 줄 알았는데꽃 아닌 꽃잎이란다꽃의 꼬리*란다 하냥 조화造花 같아서금속金屬의 소리 들리는 듯해서기이하게 쳐다보곤 했는데혼자 미안하게 바라보곤 했는데 세상엔사랑인 줄 알았지만사랑 아닌 게 많아눈물조차도 진실 아닐 때 안스리움꽃 대신 꽃잎을 피운다무엇이 진실이냐고 묻듯꽃잎을 피운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4.10.13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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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만나는 바람은 수풀냄새가 난다바닷가에서 만나는 바람에게서는 바다냄새가 난다너에게서는 너의 냄새가 나고나에게서는 나의 냄새가 난다너는 나에게나는 너에게과연 무슨 냄새로 남아야할까그것은 바람이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바로 너와 내가 결정할 문제다우리 수풀의 냄새가 되자우리 바다의 냄새가 되자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4.10.09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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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 걷힌 하늘 한층 멀어졌네 여름 이랑을 건너온 입추의 햇살지상에 편히 눕고채밀이 남은 벌들집요하게 꽃속을 파고드네 비장한 결별 이후처럼오래 앓던 신열을 벗고저녁 식탁에는붉은 저녁 노을 한 잔 올려야겠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4.10.07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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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얼얼한 우수를 씻어 한 달 장마오늘은 말끔히 거두어 인 청명이다만산이여 내친걸음이여 그냥 소소히 듣는가.물빛은 물빛대로 물살은 물살대로철 지난 외로움은 넉넉하기 바다 같고크렁한 회심의 땅을 입추처럼 내가 섰다.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4.10.06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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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시 남면 발산중학교 1학년 1반 류창수고슴도치같이 머리카락 하늘로 치솟은 아이뻐드렁 이빨, 그래서 더욱 천진하게만 보이는 아이.점심시간이면 아이는 늘 혼자가 된다.혼자 먹는 도시락, 혼자 먹는 밥,내가 살짝 도둑질하듯 그의 도시락 속을 들여다볼 때면그는 씩- 웃는다웃음 속에서 묻어나는 그 쓸쓸함.어머니 없는 그 아이는 자기가 만든 반찬과 밥이 부끄러워도시락 속으로 숨고 싶은 것이다.도시락 속에 숨어서 울고 싶은 것이다.“어른들은 왜 싸우고 헤어지고 만나는 것인지?”깍두기 조각 같은 슬픔이 그의 도시락 속에서빼곰히 세상을 내다보고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4.10.05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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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만큼 꽃이 붉다지는 꽃잎이더 아픈 계절누가 너의 눈물을기억하랴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4.10.01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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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여.가장 소중한 것에는왜 무게가 없는가.시계소리마저 없는가.나의 폐에서 나와그대 심장 속으로 들어가는저 황홀한 대기의 혼에는왜 발걸음조차 없는가. 사랑이여.가장 아름다운 것에는왜 꾸밈이 없는가.기침소리마저 없는가.썩은 수렁 가운데묵묵히 등을 밝혀든저 연꽃 한 송이의 얼굴에는왜 욕심의 티끌조차 없는가.
아침을여는시
동양일보
2014.09.30 20: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