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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 하구변. 바람이 스치는 숲길 끝에 자리한 건물(충남 서천군 마서면 금강로 1210)은 겉보기엔 평범한 연구동처럼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이곳은 국립생태원 CITES동물 보호시설 전시관. 인간의 탐욕에 의해 밀수되거나 버려진 국제적 멸종위기종이 마지막으로 머무는 피난처다. 세계 각국에서 밀수되거나 불법 사육, 혹은 버려진 국제적 멸종위기 동물들이 이곳에서 새로운 삶을 얻고 있다. 시설 내부에 들어서자 첫 안내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국제적 멸종위기종, 당신의 선택이 이들을 지킬 수 있습니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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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복희 기자
2025.09.26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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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군 장암면 본채와 외양간, 별채가 남아 있던 집은 지금 ‘생산소’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이곳에서 작업을 이어가는 사람은 설치미술가 이화영(여·44) 작가다.그가 서울을 떠나 부여로 이주한 것은 2020년 여름이다.이 작가는 “작업 특성상 음악과 설치미술을 위한 공간이 필요했다”며 “재료 보관과 작업실, 거주 공간까지 갖춘 집을 찾다가 이곳에 오게 됐다”고 말했다. 외양간을 작업실로, 광을 재료실로 개조했고 지금도 천천히 고쳐가며 생활하고 있다.‘생산소’는 단순한 작업실이 아니라 마을 공동체와 예술을 연결하는 장소가 됐다.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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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복희 기자
2025.09.04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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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암리 돌담집의 아침은 꽃잎 위에 맺힌 이슬처럼 조용하고 단정하다. 514평의 대지에 자리한 ㄱ자 한옥은 황토빛 담장과 정갈한 돌담에 둘러싸여 있다. 정원의 초입부터 수국과 백합, 쉬폰무궁화가 길을 안내하고, 고개를 돌릴 때마다 배롱나무와 플록스가 차례로 인사를 건넨다. 여름이면 다알리아와 바늘꽃, 마편초가 정원을 수놓고, 봄에는 인동초와 샤스타데이지, 패랭이꽃과 작약이 화려한 존재감을 뽐낸다. 100년 된 목단과 감나무 8그루가 집의 시간을 말없이 전해하고, 겨울이면 눈꽃 사이로 붉게 익은 감이 환상처럼 매달려 있다.이 모든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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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복희 기자
2025.08.07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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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군 비인면 남당리, 조용하고 깊숙한 골짜기를 따라 들어선 ‘임벽당 정원’은 여름 햇살 아래 적막하다.드문드문 이어지는 돌담과 마당, 마을 어귀의 고목들. 이곳은 조선 중기의 여성시인 임벽당(1492~1549), 의성 김씨의 삶과 정신이 고스란히 깃든 공간이다.임벽당 정원 입구에 들어서자 먼저 눈에 띄는 건 500년 된 두 그루의 거대한 은행나무다. 높이 25m, 밑동 둘레 8.4m에 이르는 고목은 세월을 껴안은 채 당당히 서 있다.둥치에는 수 많은 가지들이 다시 움을 틔우며 ‘세월 속에서도 삶은 계속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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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복희 기자
2025.07.24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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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천군 한산면 모시길. 고즈넉한 골목 안쪽으로 들어서자 정갈하게 정돈된 전통 한복 공방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고려한복연구실(서천군 한산면 충절로 1102-30 공예공방 5호)’이라는 작은 현판 아래, 바느질 소리가 바람처럼 잔잔히 울린다. 이곳은 35년 한복 인생을 꿋꿋이 이어온 김기자(62·사진) 대표의 작업 공간이다.2024년 2월, 서천특화시장 화재로 터전을 잃은 김 대표는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이곳 ‘한산모시공예마을’로 자리를 옮겼다. “처음엔 낯설었지만, 지금은 섬유공예인으로서 존중받는 느낌이 들어요. 문화적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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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복희 기자
2025.07.10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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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역사 전문 박물관이 부여에 있다. 100만평에 조성된 백제문화단지 내 위치한 ‘백제역사문화관(부여군 규암면 백제문로 455)’은 백제문화를 속속들이 볼 수 있는 전시실과 아이들의 체험 공간이 겸비돼 있다. 내년 개관 20주년을 맞이해 2층은 특별전 준비가 한창이었다. 공주, 부여, 익산에 퍼져 있는 백제 역사 유적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전시할 예정이라는데 기대가 됐다.입구로 들어서자 “궁궐을 새로 지었는데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롭지 않게 했다”는 ‘검이불루 화이불치’의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이는 김부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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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복희 기자
2025.06.26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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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교정미소는 1955년 구교리 220-1, 156-1에 거주하던 고 김주관 님이 ‘광신 정미소’라는 상호로 창업했다. 당시 손님들은 ‘장승백이 방앗간’이라고 불렀다. 초창기 우마차로 미곡을 우송했고 규암과, 청양, 청남 손님들은 수로를 이용했다. 1970년대부터 경운기를 주로 이용했고 1980년대부터는 소형트럭을 사용했다. 이곳은 한때 지역 대표 정미소로 손님들의 은행 창구 역할도 대행했다.” 시대를 품고 있는 정미소가 카페로 탈바꿈했다.한적한 마을 입구 저게 뭐지 호기심을 들게 하는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지붕이 높고 일반 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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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복희 기자
2025.04.24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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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도무형유산 28호로 지정된 세도두레풍장 가락을 전승해 어어가는 이들이 있다. 세도두레풍장전수관(부여군 세도면 세도로 257)에서 그 주인공들을 만났다. 폐교된 백암초를 2000년부터 사용하고 있는 전수관은 시설이 노후화됐지만 그곳에서 우리 가락을 지켜나가는 이들의 에너지는 뜨거웠다. 부여군 내 60여 명으로 구성된 세도두레풍장보존회 회원들은 매월 10일과 20일 2회 전수관에 모여 총연습을 통해 기량을 닦아나가고 있다. 꽹과리, 장구, 태평소 등 악기별 연습은 1~12월 면민, 군민, 도민 대상 일주일에 1회 강습한다.보존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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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복희 기자
2025.04.10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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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 박현진 기자] 입춘에 우수, 경칩, 춘분도 지나며 개구리가 깨어나고 낮밤의 길이도 같아진 봄날에 때아닌 눈보라가 휘날리던 주말 오후, 옷깃을 잔뜩 여미고 들어선 동굴에서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가 엮어내는 ‘문 리버’ 선율이 잔뜩 움츠러진 가슴에 온기를 불어넣는다.순식간에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여배우 오드리 헵번이 살아 돌아온 듯 치렁치렁한 소매자락을 휘날리며 얼굴을 반이나 가린 검은 선글라스를 콧등에 얹고 보석상을 스캔하는 모습이 선율 따라 넘실댄다. 연주가 끝나자 울려 퍼지는 박수소리는 공명이 있어선지 더 우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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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진 기자
2025.04.03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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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소산 자락이 보이는 둔덕에 여러 채의 한옥이 들어서 있는 마을로 들어섰다. 부여읍 월함로 99-9에 위치한 혜인당(대표 김인성)은 보이차 다도 체험장이다. 이곳에서는 △행다(行茶)체험 △다도예절체험 △차 명상 체험이 이뤄진다. 행다는 차를 마시는 예를 중심으로 움직임과 자세를 강조하는 독특한 전통체험이다. 다도예절체험은 찻잔 잡는 법, 차 우림, 손님 대접 매너 등을 실습하고 차 문화 소개와 다구 사용법을 배우게 된다. 차 명상 체험을 통해서는 차를 우려내고 마시는 행위를 통해 마음을 집중하고 내면의 평화와 고요함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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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복희 기자
2025.03.27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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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 박현진 기자] “RUOK? 괜찮아? 괜찮니? 괜찮은가요?”먼저 건네는 안부 인사 한마디가 누군가의 인생을 바꿔놓을 수도 있다.우리 사회 구석구석, 잠깐 고개를 돌려 관심을 기울이면 멀리도 아닌 가까운 곳에 아프고, 어렵고, 고립된 많은 사람을 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우리의 미래를 짊어질 청소년들은 영글지 않은 정서로 학교생활, 친구 문제, 가족관계, 진로 문제 등 복잡하게 얽혀있는 사방의 벽을 헤치고 버텨내기가 버거울 수밖에 없다.그래서 누군가는 스스로 은둔하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학교를 벗어나기도 한다. 이렇게 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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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진 기자
2025.03.2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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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지나 봄빛 반가운 날 찾아가기 좋은 곳이 있다. 프린세스 피크닉 카페(공주시 치미마을길 74)가 바로 그곳. 해 질 녘 서쪽 격자창으로 들어오는 빛이 풍성하다. 바닥은 물론이고 나무 의자와 책상에 떨어진 빛 무늬가 넘실댄다. 바깥 논밭으로 봄이 얼굴을 내밀고 멀리 해를 끌어안는 산마루가 아득하게 보인다. 레트로 감성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양철 지붕에 나무 각관으로 내단 공간은 안과 밖의 경계가 모호하다. 실내이긴 하지만 3면 전체가 격자무늬 창으로 되어 있어 안에 있어도 바깥 풍경이 전부 들어와 있다.벽난로가 놓여있고 곳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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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복희 기자
2025.03.13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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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 박현진 기자] 정혁진(32) 금속공예작가는 “청주대 공예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딱히 개인공간을 차리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창작에 제한이 많았다. 하지만 이곳에 입주하고 난 후 작업장비와 공간 제공으로 자유로운 창작은 물론 원데이클라스 강좌와 기관 연계 교육을 통한 수입도 생겨 많은 도움이 된다. 이곳은 내게 ‘인큐베이터’”라고 했다. 이혜미(31) 섬유작가는 “패션디자인을 전공하고 자체 창업으로 8년 정도 공방을 운영하며 이곳 레지던시를 병행했다. 그것이 ‘기회의 장’이 돼 폭넓은 경험과 다른 작가와의 소통·전시를 통해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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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진 기자
2025.03.06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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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작가가 23명이 있는 마을이 있다. 주민들의 이야기가 23권의 그림책으로 출간된 송정1리 특별한 마을에 다녀왔다. 부여에서 양화면으로 들어오다 보면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한 ‘부여 서동요 역사관광지’로 들어가는 길목에 그림동화 속 같은 마을이 나온다. 마을 입구 여러 그루의 커다란 느티나무가 마을의 역사를 끌어안고 있는 느낌이다.‘송정그림책마을’ 이정표가 눈에 띈다. 나무 아래 책을 읽고 있는 노인상은 정겨우면서 마을의 특성을 한눈에 보여준다. 주민이 작가가 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끌어내고 그 이야기를 방문한 관광객들에게 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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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복희 기자
2025.02.27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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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림사지박물관(부여군 부여읍 정림로 83)에 가면 백제 사비 시기 화려했던 불교 유물을 만날 수 있다. 소조불(작은 불상)과 와당, 기와편, 토기편들이 1400 여전 시간을 거슬러 눈 앞에 펼쳐져 있다. 긴 시간의 무게가 느껴지는 184점의 유물을 하나하나 마주하는 일은 또 다른 시간여행이다. 박물관 입구에서 1전시실에 들어서면 정림사지 사찰터에서 발굴된 25점의 유물이 사각의 유리진열장 안에 전시돼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버튼을 누르면 유물에 관련된 소개와 함께 다양한 조명이 전체 전시 공간을 비춘다. 3분 정도의 설명이 이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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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복희 기자
2025.02.20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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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 도복희 기자]가창오리 군무는 환상적이다. 1월과 2월 금강하구와 금강호에서 만날 수 있는 새들의 비행은 절정을 이룬다. 자유로움을 만끽하고자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가슴을 시원하게 채워준다. 오리류, 기러기류, 가창오리 등 철새들이 서천을 찾아오는 데는 살아가기 좋은 생태 조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서천의 산과 숲, 들과 농경지, 습지와 강, 바다와 갯벌 등 모든 공간이 새들이 살아가는 천혜의 조건을 제공한다. 특히 산, 들, 강, 갯벌로 이어지는 생태 축은 철새의 보고라 해도 무방하다. 금강 주변에 광활하게 펼쳐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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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복희
2024.12.16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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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 유환권 기자]지역거점공공병원 운영평가 A등급, 지역응급의료기관평가 A등급, 공공보건의료계획시행 우수기관, 지역거점공공병원 운영진단 PPT부문 대상…. 그리고 병원에서 음악회와 미술작품 전시를 통해 환자들을 ‘힐링 치료’하는 감성의 병원, ‘공감의료 전도사’ 임수흠 원장이 환자들을 보듬는 충남도공주의료원 얘기다.오늘도 직원들에게 환자를 치료하는 건 의술에 앞서 ‘마음’이라고 강조하는 임수흠 원장. 서울의대를 졸업(1979년)한 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로 시작해 서울시의사회장 등을 두루 역임한 ‘서울사람’인 그가 작은 지방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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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환권
2024.11.26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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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거점공공병원 운영평가 A등급, 지역응급의료기관평가 A등급, 공공보건의료계획시행 우수기관, 지역거점공공병원 운영진단 PPT부문 대상…. 그리고 병원에서 음악회와 미술작품 전시를 통해 환자들을 ‘힐링 치료’하는 감성의 병원, ‘공감의료 전도사’ 임수흠 원장이 환자들을 보듬는 충남도공주의료원 얘기다.오늘도 직원들에게 환자를 치료하는 건 의술에 앞서 ‘마음’이라고 강조하는 임수흠 원장. 서울의대를 졸업(1979년)한 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로 시작해 서울시의사회장 등을 두루 역임한 ‘서울사람’인 그가 작은 지방과 인연을 맺게 된 건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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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환권
2024.11.21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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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 도복희 기자]서천 바다를 품은 마을 월하성에서 도자기를 만드는 가족이 있다. 그 가족이 만들어가는 공간 월하성도예체험관과 월하성도예카페에 들어서자 웃는 얼굴이 가득하다. 물론 흙으로 빚은 토우들이다. 각각 다른 얼굴 다른 표정이다. 둥근 얼굴에 웃음기 가득한 모습이 정겹고 따듯하다. 햇살 드는 창가에 앉으니 창밖 풍경이 시원스럽다. 익어가는 가을은 노랗다. 시리게 푸른 하늘빛도 장관이다. 월하성도예카페 안팎으로 김상덕 도예가가 만든 토우, 백자, 달항아리, 생활자기 등이 보인다. 작품 하나하나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큰 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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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복희
2024.11.11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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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 도복희 기자]장의갑(69)·문경숙(65) 부부의 잘 놀기 위한 인생 2막 작업실이다. 부여군 남면 마정로 188-4에 위치한 우평도예공방은 우평마을 이름에서 가져왔다. 부부는 노후의 삶이 여유롭고 풍요롭기 위해서는 원하는 것을 충분히 누리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으로 선택한 것이 도예 작업이다. 부부는 요식업에 종사하며 밤낮 없이 살아왔다. 순전히 경제적 안정을 위한 생활이었다. 음악이란 공통 취미 생활로 부부의 연을 맺었지만, 생활을 위한 경제 활동은 피해 갈 수 없었다. 열심히 살아왔으니 이제 원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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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복희
2024.10.24 1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