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익 청주 경산초 교장, 아동문학가

요즘 시(詩)는 표현기법과 스타일까지 거의 천편일률적이다. 마음의 눈으로 생각한 작품은 가뭄에 콩나듯 하다. 감성이 메마르니 누굴 탓할 수 없잖은가.

그러나 올림픽 일기장 여기저기서 시적인 대어가 포착된다. 4년 전, 베이징 올림픽에서 ‘여자 헤라클라스 장미란’은 한국 여자역도 사상 첫 금메달을 조국에 바쳤다. 역도는 재미있고 스릴로 빠질 수 있는 종목임을 국민 모두에게 알려준 가르침의 전사였다. 326Kg(인상140Kg 용상186Kg)무게를 기합 한번에 치켜 올린 인간 승리여서 4년 전 감동이 런던올림픽 내내 함께 했다.

‘어렸을 땐 역도를 한다는 것을 숨기고 싶었으나 조금 더 빨리 시작하지 못한 게 아쉽다’고 한 말이 생각난다. 검색창엔 ‘언제나 밝고 맑고 명랑하다. 덩치만큼 과묵해 보이지만, 한 번 말문이 트이면 그 만큼 재미있는 사람도 없음’이라고 동시(童詩)처럼 적혀있다. 스물 아홉 나이로 다시 런던올림픽에 선 장선수는 비록 마지막 시기를 실패했으나 바벨을 애인처럼 토닥이고 어루만지며 내려섬의 의례에 겸손했다. 금메달을 땄을 때나 4위를 했을 때나 그에겐 핑계와 탓할 줄 모르는 최고스타 장미란은 버림을 통해 진정한 챔피언으로 가장 정직한 자서 시를 썼다.

2012런던 올림픽 첫 금메달리스트로 이름 값을 한 총잡이 진종오. 졸밋졸밋했던 오심판정을 풀어낸 수영 박태환. 여자 에페 개인 준결승 1초 시비에 펜싱 기대주 신아람의 어이없는 아픔을 딛고 단체전 동메달로 일군 집념은 ‘쉽게 절망할 수 없는 이유’를 주제로한 초미니 시였다.

도마(跳馬)운동이란 도움닫기를 이용하여 가로 95㎝, 세로 120㎝, 높이 135㎝ 규격의 도마를 양손으로 동시에 짚고 뛰어넘는 순간 경기다. 도마 위 신(神)으로 훨훨 난 효자 양학선의 인간 승리를 지키며 고집스런 교육은 사람 운명조차 바꾸게 된다는 답을 또 한 번 확인했다. 바로 자신이 창조한 최고 난이도인 양학선 기술로 애국가를 울린 양학선은 비상하는 아름다운 한 마리 새였다. ‘공중에서 빙글빙글 돌아 내려오는 아들의 발이 꽃처럼 예쁘다’고 했으니 그 어머니 표현을 뜯어보면 벌쭉 웃음터질 한 소절 시다. 양학선 예술과 아들 먹일 붕어를 잘 낚던 달동네 엄마가 빚은 시원한 물뿌림이 없었다면 우리의 8월은 열대야에 얼마나 시달렸을까 오히려 멘탈붕괴다.

부모와 자식간 곰삭은 붕어국처럼 순수 스토리로 세상을 살갑게 만들었다. 체조 감독 앞에서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하시라’며 강한 아들을 향한 지난 날 절규도 영화 속에서나 나올법할 얘기다. 아버지가 농부임을 자랑스러워한 인터뷰가 세계를 펄펄 달궜다. 2016년 브라질의 ‘리우 데 자네이루’ 하계 올림픽에서 선보일 양학선2의 수준높은 묘기를 당겨보고 싶단다. ‘살아 숨쉬는 예술품, 찬사로는 모자란 완벽 천재’란 세계인이 쓴 시에 어깨가 으쓱해진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광복절을 앞두고 우리 대통령은 사상 처음 독도를 방문한 몇 시간 뒤, 남자 축구는 박주영과 구자철의 연속 골로 영원한 숙적 일본을 2대0으로 눕히고 동메달을 목에 걸지 않았던가. 대통령의 독도방문을 두고 넋나간 일본의 시비에 분노가 치민다. 코미디를 하자는 건가, 누구 맘대로 ‘국제사법재판소 제소 운운’이니 불법무도의 극치다. 하는 짓거리 마다 쓰나미 이상의 엄청난 꿍심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올림픽 축구역사 64년 기다림을 그것도 끔찍한 이웃 웬수에게 풀던 날은 대한민국 국민임이 자랑스럽고 뭉클하여 고향의 일흔 후반 맏형께 전화를 올렸다.

안부 얘기도 하기 전, 형님은 ‘대한민국 만세’를 먼저 날리셨다. ‘다른 나라한테 지는 건 용서할 수 있어도 일본 앞엔 오직 승리’라며 흥분을 이어갔다. 올림픽을 통해 얻은 건 메달 보다 값진 걸작 시 여러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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