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유 경 세명대 교수

며칠 전 태풍 덴빈이 우리나라를 가로질러 갈 때의 일이다.

비바람이 어찌나 세차게 휘몰아치는지 우산이 뒤집히고 사람들이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있는데, 웬 어린 초등학생이 우산도 없이 맨머리에 비바람을 그대로 맞으며 걸어오고 있었다.

세상에! 어떤 교사가 어린 아이를 우산도 없이 저렇게 귀가 시킬 수가 있나! 어떤 부모가 아이를 저렇게 방치할 수가 있나! 나는 차를 급히 멈추고 아이에게 빨리 차에 타라고 소리쳤다. 그런데 아이가 집이 반대방향이라며 멀뚱멀뚱 빗속에 그냥 서있었다. 차를 돌려서 집에 바래다 줄 테니 빨리 타라고 말하며 손을 뻗어 조수석 문을 열어주었다. 그런데도 아이가 차에 타질 않기에 어떻게 된 건가 싶어 돌아보니 아이가 벌써 저만치서 달려가고 있었다. 조그만 아이가 마치 유령이라도 본 것처럼 있는 힘을 다해 도망쳐버린 것이다. 아이가 나를 납치범으로 여겼나 보다는 생각에 당황스러웠지만,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풍 볼라벤과 덴빈이 휩쓸고 간 자리에 우수수 떨어진 낙과처럼, 또 쓰러지고 파헤쳐진 농작물처럼, 집단으로 폐사하여 떠밀려온 어패류처럼 우리 인간들도 나락으로 떨어져버린 기분이다.

요즘 뉴스 보기가 두렵다. 어린 소녀를 성폭행하고 쓰레기 버리듯 내버리는 성도착자들이 속출하고, 공공장소에서 자신의 억압된 불만을 불특정 다수에게 분출하는 정신이상자들이 창궐하고 있다.

과거 인간 세상이 어수선하면 자연의 탓으로 돌리던 시절이 있었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리어왕’을 보면 늙은 그로스터가 “일식과 월식은 불상사의 징조야…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니 일식과 월식의 영향으로 생기는 여러 재앙을 피할 수가 없어. 애정은 식고, 형제는 불화하고, 도시에는 폭동이 일고, 시골에는 반란이 일고, 궁중에는 역모가 일어나고…”라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아들 에드먼드의 말처럼 사회의 재앙은 인간에게서 초래한 것이 많다. “세상은 정말 어리석어. 우리에게 불행이 닥치는 건 우리 자신의 행동 때문인데… 마치 해, 달, 또는 별 때문에 재앙을 만난 것처럼 자연을 원망한단 말이야. 마치 우리가 악당이 되는 것이… 천체의 세력 때문인 것처럼 말이야.”

아침에 눈을 뜨면 들리는 어지러운 소식에 도대체 우리 사회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걱정이 될 때가 많다. 자본주의의 승리를 외치며 앞만 보고 돌진하던 21세기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는 결국 세계를 끝간데 없는 경쟁 속으로 몰아넣고 소외 계층을 양산하게 되었다.

그 결과 일자리도 없이 주변으로 밀려나 홀로 단칸방에 생활하며 오로지 인터넷과 소통하고 게임에만 매달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점차 가정과 공동체의 의미를 잊어버리고 현실과 가상현실을 혼동하며 정상적인 사고에서 점차 멀어진다. 이들의 문제는 안에서 곪은 염증처럼 언젠가부터 걷잡을 수 없이 터지기 시작하여 사회의 위협으로 떠오를 것이다.

과연 이를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과거 백 년 전 영국에서 유행했던 캠프 스쿨이 떠오른다. 프뢰벨의 교육이론에 영향을 받은 마가렛 맥밀란이라는 여성이 산업 발전의 이면에서 버려지고 있던 도시 빈곤층의 아이들을 위한 정원을 만들었다.

그녀는 더럽고 황량한 인공의 환경 속에 내던져진 아이들의 심신을 치유하기 위해 아이들이 야외의 텐트 속에서 잠을 자고 규칙적으로 정원을 가꾸고 운동을 하며 건강한 웰빙 음식을 섭취하게 하여 자칫 사회의 문제가 될 수도 있었을 아이들을 건강한 사회의 일꾼으로 키워냈다.

우리도 더 늦기 전에 주변으로 밀려나 보이지 않게 된 사람들을 좀 더 적극적으로 돌아봐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에서 소외되어 몸과 마음이 병들어 어두운 구석에서 헤매는 이들을 밝은 사회로 나오게 하여 치료를 해주는 게 범죄로부터 사회를 지키는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길일 것이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