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식도암으로 별세한 최헌은 1970년대 그룹사운드 붐을 이끈 가수 중 한 명이다.

1948년 함경북도 성진 출신인 고인은 명지대학교 경영학과에 재학 중 미8군 무대를 시작으로 1960년대 말 챠밍가이스 등의 밴드를 만들어 활동했다.

이후 1970년대 초 밴드 히식스(He6)의 보컬 겸 기타리스트로 합류해 초원의 빛을 히트시키며 얼굴을 알렸다. 당시 김홍탁이 이끌던 히파이브는 미8군 무대에서 활동하던 최헌을 영입해 히식스로 팀 명을 바꿨다.

김홍탁씨는 10일 "아침 일찍 전화를 받고 안타까웠다. 최헌 씨는 국내에서는 극히 드문 허스키한 탁성을 지닌 보컬이어서 그룹사운드들이 모두 탐냈다"며 "현재 히식스 멤버 중 셋은 한국, 둘은 미국에 있는데 연락을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인은 김홍탁이 미국으로 건너가며 팀이 해체되자 1974년 새로운 멤버 7명으로 구성된 검은나비를 결성했다. 히식스 시절 김홍탁이 작곡한 당신은 몰라를 다시 불러 크게 히트시켰고 1976년 새로운 그룹 호랑나비를 결성해 오동잎 등의 노래로 사랑받았다.

또 1977년에는 솔로로 전향해 1978년 앵두, 1979년 가을비 우산 속 등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절정의 인기를 누렸다. 인기를 등에 업고 서울 종로 단성사 극장에서 리사이틀을 펼치기도 했다.

1979년에는 고인의 히트곡을 영화로 만든 석래명 감독의 가을비 우산 속에가 개봉해 크게 히트하기도 했다.

고인은 1970년대 최고의 로맨스 가이로 통하며 1978년 MBC 10대 가수 가요제에서 가수왕을 거머쥐었고, 같은 해 TBC 방송가요대상에서 최고가수상을 타는 등 1970년대 중후반 절정의 인기를 누렸다.

이후 활동을 잠시 접었다가 1983년 그룹 불나비를 결성해 미국 팝가수인 버티 하긴스의 곡을 번안한 카사블랑카로 활동했다.

2000년대 접어들어서는 2003년 돈아 돈아, 2006년 이별 뒤에 남겨진 나, 2009년 울다 웃는 인생 등을 발표했다.

대중음악평론가 박성서씨는 "최헌씨의 목소리는 한국 사람이 내기 힘든 탁성으로 1970년대 당시 인기팝 아이브 빈 러빙 유 투 롱(Ive Been Loving You Too Long)을 부르면 관중이 열광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고 설명했다.

박씨는 이어 "1975년 대마초 파동으로 트로트와 함께 가요계를 양분했던 포크그룹과 그룹사운드가 급격히 위축될 즈음 그룹사운드 출신들이 대거 트로트로 유입됐다"며 "최헌 씨는 대마초 파동으로 젊은 가수들이 대거 활동 금지됐을 때 조용필, 윤수일과 함께 록과 트로트를 결합한 음악으로 공백을 메우며 두각을 나타냈다"고 덧붙였다.

고인의 빈소는 광진구 화양동 건국대학교 병원 장례식장 202호에 마련됐다. 장지는 분당 메모리얼 파크이며 발인은 오는 12일 오전 5시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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