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동 환 세명대 교수북한의 세습체제는 공산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사회이기 때문에 더 이해하기 어렵다. 공산주의 정권이 많은 경우에 세습왕조를 혁명으로 무너뜨리고 세워졌기 때문이다. 해방 후 북한은 항일독립운동의 지도자였던 김일성이 정치권력을 장악하게 되었다. 주지하다시피 김일성의 아들 김정일이 이제는 김정일의 아들 김정은이 정치권력을 세습했다. 북한 정치의 특수성도 있을 수 있겠지만, 다양한 이데올로기적 장치(교육, 종교 등)와 폭력적 장치(군대, 경찰)를 통해 묶어두지 않고는 가능하기나 했겠는가?

얼마전 통일교 교주인 문선명 씨가 별세하였다. 문선명 씨의 사후 누가 통일교의 새로운 후계자가 될 것인지는 통일교 교도가 아니더라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었다. 그 후계자는 실질적으로 통일교 관련 사업의 전분야를 자녀가 관장하고 있었기에 자명해 보였다. 결국 종교 분야의 통일교 세계회장인 7남 문형진 씨가 후계자로 결정되었다는 보도를 볼 수 있었다. 자녀세습이 행해진 것이다. 통일교만이 아니다. 대형교회의 자녀 세습도 우리에게 익숙한 소식이다. 충현교회, 금란교회 등 대형교회는 부자간에 세습이 이루어졌다, 오죽하면 감리교에서 교회세습방지법을 추진하고 있겠는가?

여러 가지 요인이 같이 작용했겠지만, 이러한 경우를 통해서 보면, 북한의 세습제도 이데올로기적 장치와 폭력적 국가기구 이외에도 우리에게 가족 간의 세습을 쉽게 하게 하는 문화적 회로나 DNA가 있지 않은지 의심하게 하는 것이다. 즉 모든 이데올로기적 장치 중에서도 가족주의는 가장 강력한 세습제의 후원자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조선조 유교적 문화의 토대는 가족이다. 가족은 국가로 확산하여 심지어 국가에도 투영되었다. 왕은 일국의 어버이인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가족은 그 영역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 회사에서도 경영합리화의 바람이 거세지만, 가족은 아직 살아 있다. 재벌 문제의 하나가 내부자거래다. 현대, 삼성, SK 등 거대 재벌이 먼저 해오던 관행이 이제 확산하여 합법적으로 회사보다 가족 이익을 극대화하는 통로로 활용되고 있다.

요즘 방영되고 있는 연속극을 보다가 보니, 회사에 심각한 피해를 주는 외삼촌의 부정을 어머니가 가슴 아파할까 다른 일인양 묻어두는 것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었다. 가족이라는 이름은 부정도 감싸는 아름다운 이야기인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자신의 회사 이름으로 자녀에게 불법적으로 월급을 준 것도 사회적으로 반향이 적었다. 박근혜 씨가 5.16이나 유신에 대한 부적절한 언급을 해도 아직까지는 그의 지지율에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불법사찰 논란이 있지만, 안철수 씨의 사당동 아파트 딱지 건에 대한 네티즌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가족 간에 있을 수 있는 일인 것이다. 회사, 교회 그리고 국가에서 가족이라는 혼돈 요소는 끊임없이 작동하고 있다.

교육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20조가 넘는다고 추정되는 사교육비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OECD 평균의 3배에 이르는 민간의 공교육비 부담에다가 사교육비로 부모의 등골이 빠지고 있다. 빚에 쪼들리면서도 자녀교육비를 과다하게 지출하는 교육빈곤층(에듀 푸어)’이란 말도 회자되고 있다. 복지도 제대로 안되는 사회에서 노후 준비도 제대로 하지 않은 상황에서 가족의 가용자원을 자녀양육에 모두 쏟아붓고 있는 것이다. 학력주의 사회에서 어쩌면 합리적이고, 아름다운 이야기이지만 그 결말은 비극을 배태하고 있다.

가족이라는 단위는 세상에서 가장 원초적인 단위이고 사랑이 기본적인 원리인 사회이지만, 무엇인지 다른 통로를 찾지 않고는 우리 사회의 미래는 암울하기만 하다. 좀더 새로운 건강한 가족모델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체제를 구축하는 길이야말로 한국사회가 준비해야 할 과제가 아닌가싶다. 그랬을 때, 가족은 물론 회사, 교회, 교육 나아가 국가도 제대로 설 수 있다. 그 길은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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