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형 일 극동대 교수 

일요일 저녁
KBS2-TV에서 방송되는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은 지난 8월부터 시작된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패밀리 합창단원을 발표하였다.

이 프로그램은 2010남자가 죽기 전에 해야 할 101가지가운데 하나인 합창대회 출전을 위해 일반 시청자들을 모집, 처음으로 하모니 합창단을 결성하였다.

이 때 박칼린이라는 카리스마와 열정이 넘치는 스타 지휘자가 탄생하며 전국민적인 합창 열풍이 일었다. 출연진 가운데 한 명인 부활의 리더 김태원이 생전 처음으로 지휘봉을 들었던 작년에는 노래를 통해 세월을 잊고 사는 50세 이상의 시청자들로 구성된 청춘 합창단으로 시청자들에게 또 다른 감동을 주었다. 그리고 올해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세 번째 합창 여정을 시작한 것이다.

사실 약간은 마초 냄새가 나는 프로그램인 남자의 자격이라는 예능과 합창은 썩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창단 편이 꾸준히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은 결과보다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 덕분이다. 살아온 환경과 성격이 다른 여러 사람들이 모여 서로 마음을 열고 어우러지면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재미와 감동이 시청자의 눈길을 끌었던 것이다.

이렇게 조금씩 음정과 박자를 맞추며 마침내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어내는 것이야말로 합창활동의 백미가 아니겠는가. 또 그 주인공들이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일반인들이었다는 점에서 더 큰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또 다시 시작되는 패밀리 합창단에 대한 시청자들의 기대도 그만큼 크다고 하겠다.

하지만 제작진의 입장에서는 이미 두 차례나 써먹었던 소재를 또 다시 활용하는 것이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자칫 내용이 식상해질 수도 있고, 또 방송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이 많이 참여하다보니 의도대로 촬영하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인가, 이번에 발표된 패밀리 합창단원 명단에는 유독 낯익은 연예인 가족들이 많다.

가수 김정민과 일본인 아내 루미코, 배우 임성민과 미국인 남편 마이클 엉거, 또 가수 아이비와 방송인 안선영, 엠블랙의 이준은 어머니들을 모시고 나왔다. 방송인 왕종근 씨는 부인과 아들이 함께 하고, 배우 이광기 부녀, 개그맨 김재욱 남매도 명단에 포함되었다. 여기에 배우 차태현의 부모님과 고 최진실의 자녀인 준희, 환희 남매도 합격하였다. 오디션에 최종 합격한 27가족 56명의 단원 가운데 16가족 33명이 연예인 가족인 것이다. 남자의 자격 출연진 7명까지 합하면 합창단원의 3분의 2가 연예인과 그 가족으로 이루어진 셈이다.

그러니 이 프로그램의 의도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이전에도 연예인들은 있었다. 2010년 하모니 합창단에는 개그맨 정경미와 신보라, 가수 배다해와 서인국, 방송인 박슬기, 선우 등이 출연했다. 작년 청춘 합창단에도 탤런트 이주실 씨와 트로트 가수 최영철 씨가 포함되었다. 이들은 일반인들로서는 어색할 수밖에 없는 카메라 앞에서도 깨알 같은 재미를 선사하며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하지만 당시에 프로그램의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일반인 합창단원들이었다. 연예인 합창단원들은 물론 남자의 자격 출연진들도 이들을 뒷받침하는 조연에 머물러 있었다. 일반인들의 실제 삶과 음악에 대한 열정이 시청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면서 그만큼 다양한 감동을 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연예인과 가족들이 너무 많다보니 일반인 단원들이 들러리가 될 공산이 커졌다. 2주 동안 방송된 오디션에서는 흡수장애증후군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는 송예린, 민성 남매가 나와 맑고 청아한 노래를 들려주었다. 갑작스럽게 눈이 먼 남자친구와 손을 꼭 붙잡고 노래한 윤종배, 권희정 커플은 또 얼마나 멋진 감동을 주었는가. 하지만 이들도 합창단원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는 벌써부터 뒷전으로 밀려난 느낌이다. 이제 시작이니 아직 섣불리 판단할 일은 아니지만 제작진이 너무 안일한 길을 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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