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수 길 논설위원·소설가모든 생물은 무엇으로 사는가? 아니 무엇 때문에 사는가? 자아의식(自我意識)이 없는 동물과 식물은 본능으로 산다. 생존본능과 번식본능. 그게 사는 이유다. 그렇다면 자아의식을 지님으로써 만물의 영장이라 자부하는 인간은 무엇으로 살고 무엇 때문에 사는가?

유행가의 한 구절이 그 답을 말 해 준다. ‘/남자와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 (중략)사랑 먹고 살아요.’ 이 노래의 가사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사랑 때문에, 사랑을 위해서 산다’는 것이다. 서정시인 소월은 이 보다 훨씬 앞서서 그와 비슷한 답을 내놨다. ‘/ 왜 사냐거든 / 웃지요’ 이 대목에서 웃음 속에 감춰진 것은 가슴 속에 품고 사는 숨겨진 사랑에 대한 기대와 기다림, 그리고 환희다. 사는 이유가 역시 사랑이란 뜻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랑타령이 답의 일부는 될지 몰라도 정답은 아니다. 인간의 삶이 다양하니 그 답 또한 그렇게 간단할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정답 자체가 없는지도 모른다. 인간의 수명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 세계 각지의 자연환경과 국가별 경제수준이나 의술수준에 따라 평균수명이 다르긴 하지만, 늘어나는 추세임은 분명하다.

이태리에 사는 처남과 통화를 마친 아내가 ‘웃기는 얘기’를 전해 준다며 이런 얘기를 했다.

로마에서 건강하고 유복해 보이는 백 세 노인이 고층 건물에서 투신자살을 시도 했으나 정원수 가지에 걸려 실패했더란다. 의식을 회복한 뒤에 그 까닭을 물으니 ‘사는 게 심심하고 지루해서’였다고 하더란다. 전달을 마친 아내가 사족을 달았다.

‘남들이야 웃기는 얘기라고 하겠지만, 당자는 아무런 목적도 즐거움도 없이 연명하는 게 얼마나 지루했으면 그랬을까? 남의 얘기가 아닌데….’

아내는 칠십 줄에 한 발을 걸쳤다. 나는 그 줄을 훌쩍 넘었고. 그러니 ‘남의 얘기가 아니라’는 아내의 사족은 곧, 미구에 닥칠 우리 내외의 처지를 두고 이르는 것일 것이다.

우리 국민의 현재 평균수명이 남자는 칠십대 후반, 여자는 팔십대 중반이란다. 산술 평균치일 뿐, 개인의 수명을 좌우하는 절대적기준치야 아니라지만, 어떤 한계치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은 그리 즐거운 일은 못 된다. 아내의 사족은 머지않아 우리 내외도 ‘목적도 즐거움도 없는 심심하고 지루한 삶’을 맞게 될 거라는 불안 심리를 표출한 것이리라. 아내도 나도 아직은 심심 할 새 없이 바쁜 척하고 살지만 ‘아니다’라고 부정하기엔 별로 자신이 없다. 사람들은 유소년기를 거쳐 청소년기에 이르기까지는 장래를 준비하기 위해 산다. 장년에 이르면 직장과 가정을 위한 등짐의 무게를 감당하기위해 산다. 그러다 노년에 이르면 직장과 자녀양육의 무거운 등짐을 벗고 살아 온 일들을 정리하며 휴식을 얻는다. 이게 평범한 사람들이 밟는 평범한 과정이다. 이런 과정을 살아가면서 맞닥뜨리는 현실적인 문제 외에 미래를 위한 준비는 필수다. 노후자립을 위한 경제력, 스스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취미와 오락, 흉금을 털어놓을 수 있는 인간관계 형성, 임종까지 몸과 마음을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건강. 이 가운데 어느 것 하나라도 준비 없이 맞는 노년은 휴식이 아니라 지옥이다. 건강하고 유복한 로마의 노인이 자살을 택했던 까닭은 자명하다. 그의 말대로 ‘심심하고 지루한’ 생명연장은 ‘삶’이 아니고 휴식도 아니고 지옥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초고령 사회에 접어들었고 대가족제도도 무너졌다. 자녀들이 독립해 나간 집은 적막하다. 그 적막을 행복한 휴식처로 만드느냐 지옥으로 만드느냐는 노부부 자신들의 몫이지만, 준비 없는 노후엔 어떤 보장도 없다. 또한 경제력이나 취미와 오락, 인간관계와 건강, 그 어느 것도 금세 준비되는 게 아니다. 청년기부터 준비한대도 결코 이르지 않다.

한국 노인들의 자살 이유가 아직까지는 생활고, 의식주 궁핍이 으뜸이다. 삶의 질(質)을 따지기 전에 생존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노후의 삶에도 질을 논할 때가 됐다. 노후의 고민이 단지 의식주뿐이라면 국가복지정책이 이를 해결해 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심심치 않고 지겹지 않은 노후, 외롭지 않고 즐거운 노후보장까지 바라는 건 무리다.

궁핍하지 않고 건강한 이태리 노인의 자살기도가, 현재의 우리로선 ‘웃기는 얘기’일지 몰라도 앞으로도 과연 그럴까? 그의 자살기도가 시사하는 바를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황혼 인생, 무엇으로 사는가?’ 그리고 그 준비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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