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수 길 논설위원·소설가

 

때 아닌 땅 따먹기얘기로 여`야 정단 간 책임공방이 한창이다. 발단은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이, 국회 외통위의 통일부 국정감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포기발언 녹취록 존재와 그 내용을 발설한데서 비롯됐다.

‘NLL때문에 골치 아프다. 미국이 땅따먹기하려고 제멋대로 그은 선이니까, 남측은 앞으로 NLL을 주장하지 않을 것이며 공동어로 활동을 하면 NLL문제는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북측 김정일과의 단독회담에서 했다는 이 발언이 사실이라면, 첨예한 대립관계에 있는 경계선을 놓고 일국의 국가원수요 군 통수권자가 해서는 안 될 말이었다.

그러나 논란은 녹취록에 들어 있다는 노 전 대통령의 발언 내용의 진실여부를 가리기 전에, 2007103일 평양 백화원초대소에서 있었다는 남북정상단독회담의 사실 여부와 녹취록의 존재여부에 막혀 초점과는 먼 거리에서 헤매고 있는 듯하다.

녹취록 존재여부를 가리자면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닌데, 공연한 입씨름으로 국민들의 궁금증만 키우고 있다. 녹취록 문건이 국정원에 보관되어 있다면 국회 증언`감정 법률에 따라 국회 정보위가 요구, 여야 대표의원이 열람하고, 대통령 기록관에 보관 돼 있다면 대통령 기록물 관리법에 따라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이상 찬성으로 열람할 수 있단다.

물론 비밀외교문서를 공개하는 데는 많은 제약과 한계가 있겠지만, 적법절차에 따라 필요한 부분에 한정해, 적격자로 하여금 열람`확인토록 한다면 방법이 없는 게 아니다.

그런데도 여야는 실현 가능한 해법을 찾기보다 건공중에 뜬 책임공방으로 허송하고 있다. 그럴수록 국민들의 궁금증은 여야 쌍방에 대한 의구심으로 바뀔 뿐이다. 야당은 노 전 대통령의 발언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감추려는 것 아닌가, 여당은 이를 대선 선거전에 이용하려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과 함께 기성정치인과 정당정치에 대한 염증만 커질 뿐이다.

민주통합당과 새누리당의 초점이 빗나간 책임공방이 길어질수록 어부지리를 보는 게 누군지, 양당은 충분히 계산하고 있을 텐데도 입씨름을 계속하고 있는 건 무슨 까닭인가?

국민들의 정치 염증이 안철수 후보를 불러냈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무당파 안철수 후보의 연대가 안개 속에 묻힌 상태에서, 여당과 제1야당의 초점을 잃은 논쟁의 헛발질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계산이 그리 어렵지 않다. 게다가 불 난 데 부채질하는 사람들까지 있으니, 공방의 당사자들은 싸워서 남 좋은 일에 열을 내고 있는 셈이 아닌가?

통합진보당의 이정희 전 대표는 노 전 대통령의 ‘NLL 땅 따먹기발언을 놓고 정말 그랬다면 맞는 말씀 아니냐. 사실이라면 박수를 쳐 드리고 싶다. NLL은 미국이 일방적으로 그은 선이다. 명백한 역사적 사실을 가지고 정쟁의 도구로 삼아서는 안 된다. 북한 어선의 남하에 (한국군)전투기가 발진하고 경고사격을 단행하는 위험천만한 무력대응이 자행되고 있다‘NLL포기발언의 진실공방에 부채질을 했다. 이어서 그는 종북 공세가 두렵다고 피해선 안 된다. 노 전 대통령이 이미 뛰어넘은 분단의 금기에 또 다시 갇히려하는 야당이 어떻게 역사를 전진시킬 수 있느냐고 민주통합당에 화살을 날렸다.

4.11총선 당시 민주통합당과 찰떡연대로 득을 보았던 우호적 과거는 뭉개고 종북 비판을 두려워 말고 나를 따르라는 충고나 다름없다. 그리고 그는, 엊그제 치른 통합진보당 경선에서 대통령후보로 선출, 수락했다. 수락연설의 요지에도 평소 그가 보여준 종북 이념의 변화를 발견할 수는 없었다. 대선 판도를 휘젓고 싶어 안달하는 북의 협박이 예전보다 오히려 늘어나는 판에, 굳건한(?) 종북 이념을 유권자들 앞에 대놓고 외치면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용기는 가상하다. 그러나 과연 그 용기가 당선 가능성을 점치고 발휘하는 것인지, 아니면 선거판을 종북 이념의 확산기회로 삼는 동시에, 국회 의석수에 따라 정당에 지급하는 대선국고보조금을 타기 위한 돈 따먹기술책인지 아리송하다.

대선이 진짜 코앞에 닥친 시기에, 온통 복지로 포장 된 정책공약은 그게 그것인데, 엉뚱한 땅 따먹기공방으로 기우는 선거판도에 유권자들은 속이 불편하다. 게다가 애국가와 국기, 국법을 부정하고 무시하는 종북 세력들조차 법을 교묘히 이용, 선거판을 돈 따먹기기회로 삼는 현실에 더욱 속이 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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