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희 팔 논설위원·소설가

 

흰 개가 벌써 여러 날 째 안 보인다. 차라리 잘 된 일인지 모른다. 동네사람들에게 놈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사람을 만나면 슬금슬금 따라와서 컹컹 짖어대기도 하고, 바짓가랑이를 주둥이로 찝쩍대기도 한다.

그래서 맘 여린 아낙들은 질겁하며 소리를 지르고 남정네들은 손을 들어 고함을 치면서 을러방망이를 놓으면 한 댓 발짝 뒤로 물러났다가 다시 따라온다. 할 수 없어 모르는 척 앞만 보고 걸으면 놈은 그제야 포기하고 미련 없이 돌아가 버린다. 덩치나 작은가 송아지만한 놈이 날마다 보는 족족 이러니 영 불안하고 무서워 죽겠는 것이다. 처음 얼마간은 모두들 이랬었다.

그런데 한 사람도 물린 사람이 없고 생기기도 희멀끔하게 잘생긴 흰둥이라 적의가 점차 누그러져 가까이 다가가 친해보려고 손이라도 내밀면 놈은 제 털끝 하나도 대주지 않고 오히려 경계어린 눈을 하고 뒤를 뺀다. 그래서 한 사람도 만져보거나 사귀어 본 사람이 없다. 목에 목사리가 있는 걸 보면 또 사람을 가까이 하는 것을 보면 어느 집 누가 매놓고 기르던 것 같은데, 이장이 동네방송도 해보고 이웃동네에까지 알아보았으나 주인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 흰 개가 여러 날 째 안 보이는 것이다. 누가 잡아갔다는 말도 있고, 큰 길에서 차에 치어 죽었다는 소문만 나돌 뿐이다.

그리고 얼마 후 이번엔 동네에 까만 개가 나타났다. 이놈은 사람에게 죄진 놈처럼 사람 가까이엔 얼씬하지 않으며 저만치 멀리서 눈치를 보면서 여차하면 도망갈 기미를 노골적으로 보인다. 하여 사람들에게 직접 해는 주지 않으나 그 놈의 태도나 눈을 보면 이상스레 섬뜩섬뜩해지는 게 영 기분이 그렇다.

이놈이 나타나면서 오리장이나 닭장에 비상이 걸리고 그 주인들의 원성이 높아졌다. 목사리도 없는 걸 보면 진작 제 놈 보살펴 길러준 주인은 없는 것 같고 그래서일까 논둑밭둑이 놈의 잠자리다. 아무리 소리쳐 쫓아버리려 해도 어슬렁어슬렁 대며 도망가지도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들개니 들치니 하면서 꺼리어 멀리한다. 한데 이놈이 요즘 들어 보이지 않는다. 차에 치어 죽었다고도 하고 누가 작정하고 암살했다고도 하나 불확실한 풍문에 불과하다.

이 마을에 개 기르는 집이 없다. 하니 개 짖는 소리, 개 부르는 소리 , 개 쫓는 소리를 들을 수 없다. 전에는 백구니, 누렁이니, 검둥이니, 바둑이니, 삽살이니, 발발이니, 얼룩이니, 멍멍이니 하며 집집이 한 마리씩은 길렀다. 식구들의 남은 밥이며 숭늉 솥을 휘휘 두른 눌은밥, 찌개나 국의 찌꺼기 등 비록 뒤 음식이긴 하나 사람의 식생활과 똑같이 하며 식구처럼 지냈다. 그리고 아기배설물해결하기, 집 지켜주기로 제 밥값을 톡톡히 하는가 하면 제 배설물까지도 농사거름에 보태주니 참으로 신통한 놈이었다.

목사리라는 건 이 동네사람사전엔 아예 없는 말이다. 목사리라니? 아무리 짐승이라 해도 목을 얽매 구속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것이다. 그냥 놓아 먹였다. 놈들은 자유롭게, 발정 난 이성 찾아 이웃마을뿐 아니라 읍내장터까지 원정가고 그러다 며칠 만에 후줄근히 제집 찾아 들어와 그야말로 오뉴월 개 팔자로 봉당 위에 널브러졌다. 이러했는데 지금 목사리 없이 풀어놓으면 사람에게 위화감을 주고 놈들의 배설물로 주위가 청결치 못하다하여 방견죄에 걸린다. 하여 벌써 여러 해 전 송가네를 끝으로 이 마을엔 개 기르는 집이 없다.

목사리 없이 집안에 가두어 기르던 송가네 개가 하루는 문이 열렸던지 나가서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 이튿날 오전, 읍내경찰서에서, “개 잃어버렸지요 와서 확인하세요.” 하고 연락이 왔다. 사연인즉, 개 도둑이 개가 좋아하는 향내를 풍겨 유인해서는 몰래 엽총으로 쏘아 자신이 운영하는 사철탕집에서 처리해 꽤 재미를 본다는 것이다. 참으로 전율할 일이다. 여기 걸려든 것이다. 그래서 확인하고 돌아왔는데 오후에 한 중년부인이 찾아왔다.

죽을죄를 졌습니다. 그놈이 그런 놈이 아닌데 뭣에 씌었던지 아저씨께 큰 죄를 저지렀더군요. 그래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제 남동생을 대신해서 이렇게 무릎 꿇어 용서를 빕니다. 제발.”

그러니까 제발 합의를 봐달라는 거였다. 참 딱한 일이다. 다른 피해자들에게도 일일이 찾아가 이럴 거였다. 한참을 그는 말없이 멍하니 있다가 가볍게 고개만 몇 번 끄덕이었다. 그러는 그에게 부인은 그의 주머니에 두툼한 지폐봉투를 질러 주었다. 그는 그걸 한사코 사양했다.

목사리 없고 오뉴월 개 팔자라는 시절은 다시 올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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