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신 준 청양군 대치면 산업담당

요즘 메스컴은 선거가 화두다. 중차대한 대선이 40여일 밖에 남지 않았으니 그도 그럴 수밖에. 국가경영에 관한 다양한 이슈들이 공약이라는 제목으로 언어의 성찬을 펼친다. 유권자를 향한 후보들의 약속이다.

공약은 대통령직을 수행할 일꾼이 유권자에게 제시하는 근로계약서같은 것이다. 고용주 입장에서는 일꾼이 쓸모있는 일을 많이 할수록 좋다. 실행만 담보될 수 있다면 같은 비용으로 더 많은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이니 국가적으로도 이득이다. 문제는 공약이행을 담보할 마땅한 장치가 없다는 것이다. 후보가 아무리 훌륭한 공약을 제시한다 해도 이쪽에서 이행을 강제할 방법이 없으면 그건 그냥 말잔치에 불과하다.

후보들은 일단 당선되는 일이 가장 큰 목표다. 그러니 선심성 공약이 난무하고 그와 함께 감성정치, 이미지정치가 판을 친다. 자신의 정체성조차 살피지 않고 좋은 건 서로 다하겠다고 하니 후보 간 차별성도 떨어진다. 정작 알맹이보다 껍데기에 더 공을 들인다. 그래도 된다. 여태 그게 먹혔으니까 그렇게들 하는 것이다. 얼굴에 아무리 분칠을 해봐도 주름투성이 맨 얼굴이 달라지지 않는다. 하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이나 그걸 모를 리 없다. 피차 뻘쭘한 시츄에이션이다. 참 딱하다.

후보는 수퍼맨이 아니다. 일할 수 있는 예산도 한정돼 있다. 도저히 실현 불가능한 공약을 내거는 후보를 경계해야 한다. 사기꾼은 사기를 잘 당할 것 같은 사람을 족집게처럼 찾아내기 마련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화려한 공약일수록 부도수표로 끝날 가능성이 많아진다.

한국에서는 낯설게 느껴지지만 유럽과 같은 정치 선진국에서는 선거란 곧 메니페스토라고 받아들여질 정도로 공약이 전부다. 선거가 시작되면 으레 공약집을 배포하고 그 공약을 중심으로 선거를 치른다. 외모나 학력 따위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제대로 된 공약과 그 사람이 그동안 약속을 잘 지켜왔는가를 평가하는 일이 선거의 핵심이다. 근로계약서를 제시하고 일만 잘하면 된다는 거다. 부러운 정치풍토다. 이 땅에도 메니페스토 운동이 시도되고 있긴 하지만 본격적인 제도로 정착되기에는 아직 멀었다.

아직 우리는 근로계약서 한 장 없이 사람하나 믿고 5년을 거는 모험을 감행해야 한다. 너무 위험한 도박이다. 그래서 꼼꼼히 따져보고 믿을 만한 사람을 선택해 나라를 맡겨야 한다. 믿음은 공약 이행을 뒷받침하기 위해 필요한 후보의 진심을 판단하는 일에서 시작된다. 어떻게 진심을 알 수 있는가. 진심을 담보하는 가장 큰 변수는 그 후보의 사람 됨됨이다. 사람은 하루아침에 변하는 동물이 아니니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가가 믿음의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살아온 이력으로 그가 앞으로 움직일 동선의 범주를 가늠하는 것이다. 그게 선택의 핵심이다.

말잔치 속에 함몰되지 않으려면 두 눈을 똑바로 뜨고 후보를 꼼꼼히 살펴야 한다. 지키지 못할 헛소리들을 가려내기위해 독수리처럼 지혜로운 눈이 필요하다. 꼼꼼하게 따져서 처음 약속을 어기지 않을 사람을 제대로 선택해야 한다. 그들 벌여놓은 판을 조금만 벗어나보라. 벗어나서 바라보라. 그 사람의 과거를 대입하여 의심하고 비교하고 분석하라. 조금만 수고하면 언어의 성찬에 가린 진심이 드러나는 법이니까.

지금까지 경험한 대통령들을 떠올려 보자. 선거전 표 달라고 할 때 마음으로 얼굴 바꾸지 않고 끝까지 초지일관한 인물이 드물었다. 스스로 소신과 철학이 있는 후보라야 한다. 임기동안 흔들리지 않고 처음 약속을 관철시킬 능력이다. 제발 이번에는 보낼 때 좋은 얼굴로 보낼 수 있는 사람 좀 뽑아 보자. 우리는 역대 대통령들을 통해 산전수전 다 겪어 보지 않았나. 이제 사람 고르는 눈이 좀 트일 때도 되지 않았나.

선거는 민주주의의 축제다. 바야흐로 그 축제의 절정이 다가오고 있다. 만산홍엽 좋은 시절에 들판에서 곡식을 거두듯 그동안의 성과를 차분하게 결산할 때다. 좋은 시절은 다시 오지 않는다. 선택은 단 한번이다. 믿을 수 있는 후보에게 투표하라. 이 나라의 운명이 당신 손에 달렸다. 한 표 한 표는 아무것도 아닐 것 같은 생각이 들지 몰라도 그게 모여서 세상을 바꾸는 강력한 힘이 된다. 투표는 총알보다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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