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승 훈 충북생생연구소장

 

우리를 피곤하게 만드는 가장 대표적인 것이 끊임없는 변화가 아닌가 한다. 우리는 지난 60년대 이래로 경제성장을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전개해 왔다. 운 좋게도 남들이 200년 넘게 걸렸던 경제적 성취를 50년 만에 이루었다. 그러나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된 지금, 다시 말해 추구해야할 절실한 목표가 사라진 지금 정부는 물론 많은 사람들이 갈 바를 정확히 모르고 방황하고 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미래도 불투명하게 되었다. 내 희망은 좀 더 안정적이고 예측가능한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것이다. 하루하루 살면서 변화에 대해 덜 고민하고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살고 싶다. 젊은 시절 열심히 일하면 나이 들어 좀 여유 있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아직까지 그런 여유를 갖지 못하고 있다. 세계화로 인해 무한경쟁 시대가 되면서 더 이상 현재의 삶에 안주하며 살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국제적인 경쟁은 우리가 살기 위해 어쩔 수 없다 쳐도 우리 안에서 불필요한 변화로 피곤하게 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어느 조직이든지 우두머리가 바뀌면 과거의 것은 모두 버리고 새롭게 일을 시작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전임자들이 한 것이 절차나 내용면에서 부당하게 결정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승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책임자가 바뀔 때마다 주요 제도가 바뀌면 새로운 규칙에 적응하기 위해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피곤하다. 언제 책임자가 바뀔지 모르고 언제 제도가 바뀔지 모르니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그래서 정부에 아는 사람이 있는 사람이 늘 유리하다. 그래서는 안 된다. 적어도 제도를 변경하려면 어떤 문제가 있는지 명확하게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다수의 다른 사람들이 납득할 때 해야 한다.

사무관 시절 정부에서 보내주는 유학을 가기 위해 경쟁이 치열했다. 내 차례가 되었을 당시 총무과장이 성적순으로 하면 일만 했던 선배 기수가 못가니 성적보다는 일을 열심히 한 기준으로 보내겠다, 그리고 내년에도 그런 기준을 적용하겠다고 하면서 양보를 하라고 해 그렇게 했었다. 그 해 엄청나게 일을 많이 했다. 개별 업종별 법을 폐지해 공업발전법으로 바꾸고 정부 내 최초로 벤처기업지원을 위한 창투회사법을 만들었다. 다음 해가 되어 지난 해 양보했고 또 일을 열심히 했으니 당연히 유학을 갈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 사이 바뀐 총무과장이 이번에는 성적으로 한다고 해 황당했다. 당시 차관 비서관으로 있던 후배 때문에 규칙을 다시 바꾼 것이다. 영어를 잘 하기는 했지만 6개월 동안 외국어대학에 연수 가서 오로지 영어공부만 했던 후배들과 경쟁을 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 때 이후 필요에 따라 수시로 규칙이 바뀌는 것을 경험하면서 그것이 세상이거니 체념을 하면서도 그래서는 안 된다, 언젠가는 그런 것을 변화 시켜야 한다는 다짐을 하면서 살아왔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직장이나 사업에서 그런 일을 심심찮게 겪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규칙은 정해지면 지켜져야 하고 문제가 있으면 충분한 시간과 절차를 거쳐 개선하는 것이 순리다.

이번 대선에서는 원칙 또는 규칙을 바꾸는 문제가 너무 빈번해 혼란스럽다. 선거를 하는 본질적인 대상인 후보의 인품이나 정책들보다도 비본질적인 선거방법 문제가 쟁점이 되니 주객이 전도된 것 같다. 경선과정에서는 완전국민경선제, 모바일투표 등을 놓고 논란을 벌이더니 지금은 투표시간 연장을 놓고 논란이 있다.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나 만약 수능시험을 얼마 앞두고 수험생 일부가 현재의 규칙이 자신들에게 불리하니 규칙을 바꿔 달라고 하면서 교육당국이 그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주지 않으면 수험생의 권리를 무시하는 것이라고 비난한다면 정당한 주장이라고 볼 수 있을까? 대선을 얼마 안 남긴 지금 투표시간을 연장하자는 주장이 그와 다를 것이 무엇인지 의문이다. 지난 4년 동안 논의할 충분한 시간이 있었는데 하지 않고 있다가 선거가 목전에 닥친 지금 그런 주장을 하면서 서명운동까지 전개하겠다는 것이 과연 합당한지 의문이다. 만약 그런 논리가 적용된다면 앞으로 정부가 행하는 모든 일에 있어 불이익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일부가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그 규칙을 바꾸자고 할 경우 무슨 근거로 그것을 거절할 지 궁금하다. 어떤 원칙이나 규칙이 특정 집단의 힘에 의해 갑자기 변경될 수 있다면 그런 사회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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