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동 환 세명대 교수

직장을 다니다 막 대학원에 들어간 1980년대 초의 일이다. 전두환 정권이 학원에 대한 사찰을 하고, 학내에 빵모자를 눌러 쓴 형사가 학생들을 감시하느라 버젓이 상주하고, 시위하던 학생을 쫓아 도서관 계단을 막무가내로 뛰어다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인가 유독 학생은 다른데 신경 쓰지말고 공부만 하라던 시절로 기억한다. 당시 내가 존경하는 대학 은사가 도서관에 무엇보다 학생들이 편히 놀고 쉴 수 있는 소파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다고 들었다. 당시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제안으로 들렸다. 도서관은 열심히 공부하는 공간이지 놀고 쉬는 공간은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미국의 명문대학 출신이어서 남다른 생각을 하시는구나 생각했다.

이곳 시애틀에 와서 보니 참 공원도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곳곳에 공원이 있다. 쉬고 놀 수 있는 공간이 많은 것이다. 크고 작은 공원에서 쉬고, 산책하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평화롭고, 여유로운 모습이다. 문득 창의성에 대한 사회적 지원도 있겠지만, 미국 사회가 경제가 엉망인 가운데 그나마 창의성이 번득이는 것은 잘 놀고 쉬는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였다.

주지하다시피 가수 싸이가 세계적인 인기스타로 뜨고 있다. 강남스타일로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미국 빌보드 챠트에서 7주째 연속 2위를 했다는 소식이다. 내친 김에 1위를 기다리는 사람도 적지 않다.

싸이를 국위 선양의 차원에서 몰입하는 것에 대한 비판도 한바 있지만, 나 스스로도 아직 인터넷에서 싸이 관련 검색을 하고 확인하기도 한다.

싸이가 세계적으로 히트하고 있는 이유는 국제적인 잡지에서부터 여러 문화평론가까지 이미 전문적인 분석을 한 바 있다. 여러 가지 분석 중에 어떤 신문평론에 강남스타일이 놀만큼 놀아본 사람의 작품이라는 문구가 기억에 남는다. 이는 싸이 관련 인터뷰 프로그램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논다! 도덕성이나 생산성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다.‘노는 애어떤 생각이 드는가? 그동안 우리는 논다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의미를 덧씌워 왔었다. 그러나 이제 다시 생각해 볼 시점이 되었다.

우리나라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산업화 시대의 노동집약적인 단계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힐링을 말하고, 쉬는 것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그만큼 우리 시대는 진전하여 국민들의 의식은 발전해있다.

그럼에도 아직 국민들을 더 일하게 하지 못해, 학생들을 더 공부하게 하지 못해 몰아가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 이건희씨 같은 대기업 회장도 유럽 탐방을 하고 돌아와 유럽의 문제는 게으름 때문이라는 말도 쉽게 하고 있다. 참 평시의 이미지와 안맞는 말씀이다. 더 큰 이유가 있겠지만, 사회가 아직 정신 바짝 차리고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는 뜻이리라!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가지고 있던 파라다임을 뛰어넘지 않고는 우리의 발전은 한계가 있다. 서로 경쟁하고, 더 열심히 일해서 이룰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것으로는 새로운 것을 창출하기 힘들다. 우리사회가 경제적으로 더 성장하고 사회도 성숙하자면 이를 벗어던져야 한다.

새로운 파라다임에 있어 중요한 부분은 사회의 엘리트들이 놀고 쉬는 것의 가치를 전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다. 물론 지옥훈련으로 앞서 갈수 있는 시기도 있었다. 남이 놀고 쉬는 동안 거북이처럼 열심히 일하면 앞서가던 토끼도 제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남을 따라가는 시기가 아니라, 내가 선도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삼성을 비롯하여 우리 기업이 서있는 문제다. 사람들은 답을 이미 알고 있다. 공자의 말씀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을 넘어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스포츠 중계나 분석에서도 승부에 매달리기보다 즐긴다는 표현은 승패를 넘어 바람직한 생의 태도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일을 즐기는 것의 출발은 일에 대한 가치 못지 않게 노는 것의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

놀고 쉰다고 다 같이 놀고 쉬는 것이 아니다. 일하고 노는 것을 적절하게 배분하고 활용하자는 것이다. 목표를 양적인 것보다는 질적인 것에 두고 꿈꿀 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 우리 사회가 성숙하고 발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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