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형 일 극동대 교수

현대 문명의 이기인 휴대폰이나 인터넷, TV가 없다면 인간은 어떻게 될까?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해 보았을 이런 의문을 한 방송프로그램에서 제기했다. 1124일 토요일 밤 KBS2에서 4부작 파일럿으로 시작한 인간의 조건이다. 이 프로그램은 ‘12시즌1의 연출자로 웬만한 연예인보다 유명해진 나영석 PD의 복귀작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한참 인기를 끌고 있는 유명 개그맨들이 출연한다는 것만으로도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이들이 휴대폰과 인터넷, TV의 사용이 금지된 집에서 일주일간 합숙하며 벌어지는 좌충우돌을 담은 리얼체험 버라이어티이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은 인간의 필요조건은 될지언정 필수조건이라고는 할 수 없는 디지털 기기에 대한 의존이 도를 넘어 중독 수준에 이른 현대인의 삶을 되짚어보고자 하는 묵직한 주제의식을 담고 있다. 특히 타인과의 핵심적 연결고리인 스마트폰을 압수당한 출연진들은 합숙 첫날부터 거의 멘붕(멘탈붕괴) 상태에 빠지기 시작했다. 방송국을 가기 위해 집을 나섰지만 매니저가 어디 있는지 몰라 동네를 몇 바퀴 돌고, 전화 한 통 걸기 위해 공중전화 부스를 찾아 헤맨다.

무심코 TV 앞에 앉아 방송을 보다가 어느 순간 자세를 고쳐 앉고 출연진들이 나누는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사실 연예인이라는 직업 특성상 다른 사람들과 연락할 방법이 없다는 것은 본인들은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도 상당한 지장이 초래된다. 방송이나 행사 스케줄을 잡을 수도 없고 변경된 일정을 알 수도 없다. 그러니 세상으로부터 홀로 버려진 느낌이라는 한 출연자의 말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어릴 때는 친구와 연락하려면 집으로 전화를 해야 하니까 엄마가 친구들의 이름을 다 알고 계셨다는 이야기나 스마트폰이 없으니까 그동안 무심했던 주변 사람들의 얼굴을 쳐다보게 된다는 말에는 공감을 느낀다. 스마트폰이 우리에게 많은 편리함을 가져다 준 것은 사실이지만 그만큼 많은 것을 잃어버렸던 것이다.

얼마 전에는 수능시험을 치른 아들의 휴대폰을 스마트폰으로 바꿔주러 갔다. 기기 값만 백만 원이 넘지만 지정 요금제로 약정하면 통신사 보조금이 나와 거의 공짜라는 판매원의 이야기가 말도 안 되는 상술이라는 것은 알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혹시나 해서 내 낡은 휴대폰을 꺼내들고 기기변경이 가능한지 물었지만 역시나 2G폰은 아예 판매하지도 않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우리날 스마트폰 가입자 수가 불과 3년 만에 3000만명을 넘어선 것은 이렇게 스마트폰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일반 휴대폰을 팔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가입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가입자 수만 보면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휴대폰 시장을 확장하려는 제조사와 기본적인 통신 서비스 외에 각종 부가 서비스로 수익성을 높이려는 통신사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이다.

그러나 이로 인한 사회적 낭비요인은 엄청나다. 당장 소비자 입장에서는 이득이 되는 것처럼 보이는 보조금 제도는 사실상 터무니없이 비싸게 책정된 약정요금에 다 포함되어 있다. 새로운 스마트폰이 등장할 때마다 버려지는 멀쩡한 기존 휴대폰은 또 얼마나 많은가? 가입자 수가 늘면서 추가로 구축해야 하는 네트워크 증설비용도 결국은 우리 모두가 부담해야 한다. 여기에 열심히 일하고 공부해야 할 직장인과 학생들, 집안일에 바쁜 주부들까지 스마트폰에 빠져서 허비하는 시간과 같은 간접비용까지 고려하면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더 아쉬운 것은 너도 나도 스마트폰에 빠지면서 일상의 소소한 행복들이 가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의 조건에서 별다른 스케줄이 없어 홀로 집을 지키던 한 출연진이 다른 사람들이 들어올 때마다 환호성을 외치는 것을 보면 남의 일 같지 않다. 요즘 아들 녀석은 몇 주 째 스마트폰 만지는 재미에 푹 빠져 도무지 제방에서 나올 줄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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