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희 팔 논설위원·소설가


지난날 곡물시장에서 말이나 되로 곡식을 되는 일을 업으로 삼았던 사람이 있었다. 이를 말감고라 했다. 그냥 감고(監考)’라고도 하는데, 감고란 옛날 궁이나 관아에서 금은·곡물 등의 출납과 간수를 맡아보던 관리를 일컫는 말로, 여기서 유래한 말이다. 이때는 곡물을 재는 단위를 지금같이 무게로 하지 않고 부피로 셈했다. 그러니까 홉(), (), () 등으로 따졌다. 그래서 말감고가 필요했다.

동네사람들은 말감고를 말강구라 했다. 어원이야 어떻든 소리 나오는 대로 편하게 그렇게 불렀던 것이다. 시골에서 돈이 필요하면 곡물을 장에 내다 파는데 주로 쌀로서, 아녀자들이 머리에 이고 가는 양이니 닷 되 정도나 두어 말 가량이다. 말강구는 장터어구에 자리를 잡고 앉아 되와 말로 손님을 대하고 그 옆에 쌀장수가 서있다. 쌀장수는, 말강구가 손님의 쌀을 되고 나면 그 손님에게 쌀값을 지불한다. 그는 그렇게 해서 사들인 쌀을 가지고 가서 쌀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이문을 남기고 파는 장사꾼이다. 쌀장수가 이문을 남기려면 말강구가 되질이나 말질을 잘해야 한다. 그래서 말강구는 말에 쌀을 될 때 손님의 쌀자루를 받아 한꺼번에 말에 팡 쏟는다. 그리고 말 밀개로 말 옆구리를 한 번 툭 친다. 이게 다 쌀이 말에 더 많이 들어가게 하는 수단이다. 쌀장수는 이렇게 수집한 쌀들을 구매자에게 팔 때는 말에 쌀을 살살 붓고 옆구리를 툭 치지도 않으며 밀개로 말을 싹 깎아내림으로써 이문을 남긴다는 것이다. 말강구는 우수리를 먹는다. 말이나 되를 밀개로 깎을 때 아래로 떨어지는 것, 즉 말밑이나 되 밑이 그의 차지다.

이를 유념해서 가산댁은 쌀을 낼 땐 늘 신경을 써서 넉넉히 가져갔다. 장보기할 때뿐 아니라 가산댁의 후함은 동네서도 이름이 나 있다. 보릿고개와 갈 추수 전 어려울 때 동네사람들이 곡식을 꾸러오면 말이나 되를 깎지 않고 수북이 후하게 주고, 받을 땐 말강구처럼 깎아서 그 말밑이나 되 밑을 도로 주어 보냈다. 말강구에게 가져오는 쌀도 늘 이렇게 수북이 되 오니 말강구는 이를 잘 알아서 가산댁에 대한 신용은 절대적이다. 그런데 한번은 가산댁이 급히 서두르느라 어림짐작으로 한 말가량의 쌀을 가지고 온 일이 있다. 말강구는 그 쌀자루를 들어 보더니 아주 조심조심 살살살 쌀을 말속에 붓고, 말 옆구리를 탁 두드리지도 않으니 말밑은 없으나 한 말이 가까스로 됐다.

이 말강구가, 가산댁의 큰애인 수철이가 고등학교 입학할 무렵에 이 말감고 일을 그만두었다. 이때는 곡물을 재는 단위가 부피에서 무게로 바뀌어 말감고가 필요 없게 된 것이다. 하여 그는 고추장수로 업을 바꿨다. 읍내에 가게 겸 창고를 차려 놓고 시골동네 집집이며 장장을 찾아다니며 고추를 사 들이고 이걸 파는 일이다. 그래도 그의 호칭은 여전히 말강구다. 수철인 한 동네 연정이와 수종이 이렇게 셋이 이웃 큰 읍의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함께 하고 있었다. 그해 여름방학이다. “요새 고추도둑들 심하다더라. 수철이 너, 니 방에 잔뜩 들여 놓은 고추 잘 지켜!” “.” 아버지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대답하곤 수철인 준비해 놓은 포대에 고추를 발로 꽉꽉 눌러 담았다. 그리고 아버지 몰래 집을 빠져 나와 기다리고 있는 연정에게로 갔다. “너두 안 들켰지?” “.” 둘은 고추포대를 각각 자전거에 싣고 칠흑의 밤을 도와 말강코에게 갔다. 늘 말간 콧물이 코끝에 매달려 있어 아이들은 그를 비슷한 발음인 말강코라 했다. “웬일이냐 이 밤에?” “고추 내러 왔어유.” 그는 애들을 한참 쳐다보더니, “니들, 엄마 아부지 모르지. 안 돼!” “우리들 친구 수종이 학비 땜에 그래유. 제발 사 주셔유.” “, 학비 땜에?” 그는 또 애들을 번갈아 보더니, 한참 만에 돈을 치러주었다. 그리곤 개학을 앞둔 날이다. “수종이 먹는 쌀도 니들이 댄다며 기특하다. , 이것 갖다 보태라.” 두어 말쯤 되는 쌀이다. 둘은 이 일을 수종에게 얘기했다. “그려?” 수종인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술만 깨물었다. 그 후에도 고추포대 일은 애들이 졸업할 때까지 매년 한 번씩 행해졌고, 졸업할 무렵 말강코는 이 둘의 일을 수종이에게 넌지시 일러 주었다.

이 넷의 일은 아이들 셋이 50대가 된 지금까지 아무도 모른다. 수철이와 연정인 이제 낙엽도 다 떨어져 가는 날, 서울서 측량사 일을 하는 수종에게 비보를 전했다. “말강코 아저씨 돌아가셨어.” 수종인 한달음에 달려왔다. 그리고 셋은 장지까지 따라갔다.

말강코는 이 넷만의 비밀을 무덤까지 가지고 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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