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대 대선 후보들에게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의 정당공천제 폐지를 촉구했던 일선 기초의원들이 정작 대선 과정에선 ‘첨병’을 자임, 빈축을 사고 있다.

전국시장군수협의회와 전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 등 일선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 협의체 등은 지방자치의 중앙 예속화 근절과 고비용 선거구조 개선, 중앙정치 줄서기 폐단 해소 등을 위해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 등에 대한 정당공천제 폐지를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

이들은 이번 대선 과정에서도 각 당 후보들에게 정당공천 폐지를 핵심으로 하는 지방분권 정책 추진을 공약에 포함시켜 줄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이같은 목소리와는 달리 대선 현장에서 드러난 일선 기초의원들의 행태는 스스로 소속 정당 대선 후보의 지지세 확산을 위한 ‘첨병’을 자임, 이율배반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일선 기초의원들은 소속 정당의 대선 후보 선거운동을 위해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자신의 지역구 등을 순회하며 선거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이들은 선거운동 자원봉사자들을 이끌며 강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출퇴근길 유권자들을 향해 소속 정당 대선 후보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또 선거법상 투표 참여 독려 현수막 게시는 무제한 허용된다는 점을 이용, 자비를 들여 자신의 이름이 적힌 ‘투표참여’ 현수막을 주요 거리마다 내거는 등 ‘물심양면’으로 소속 정당 후보를 지원하고 있다.

기초의원 1명 당 평균 5~10매 정도의 현수막을 게시하고 있으나, 일부 기초의원들이 평균보다 많은 양의 현수막을 게시하자 경쟁이나 하듯 현수막 수를 늘리면서 거리 곳곳마다 기초의원 명의의 현수막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현수막 제작에 드는 비용은 정당 지원없이 전액 기초의원들의 자비로 부담하고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등 대선 후보들도 암묵적으로 기초의원들의 선거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소속 정당을 통해 대선 지원에 적극 나설 것을 주문하는가 하면 다른 기초의원들과 지원 정도를 비교하는 등 내부 평가를 통해 이들의 선거 지원을 독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선 과정에서 전국 17개 광역의회 의원 855명과 228개 기초의회 의원 2876명 등 3800여명이 한 자리에 모여 개최한 ‘지방분권 촉진 전국 광역·기초의회 의원 결의대회’가 무색할 정도다.

이처럼 겉으로는 정당공천 폐지를 주장하는 것과 달리 스스로 중앙정치 예속을 자청하는 이유는 선거 과정에서 조직표가 중요하기 때문이라는 게 이들의 대체적인 입장이다.

지방선거 과정에서 독자적인 지지표만으론 선거를 치르기 어렵다는 점에서 정당이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조직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정당공천제가 형식적으로 폐지된다 해도 당적을 포기할 수는 없기 때문에 실질적인 정당공천제 폐지는 실현되기 어렵다는 점도 인정하고 있다.

충북지역 한 기초의원은 “기초의원들이 정당공천제 폐지를 요구하고 있지만, 당적 포기를 고려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라며 “지방선거 과정에서 정당이 갖고 있는 조직표를 의식하기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다른 기초의원도 “정당공천제 폐지를 주장하면서 대선 과정에서 소속 정당 후보 지원에 앞장서는 것에 대해 자괴감이 든다”며 “소속 정당에서 암묵적으로 선거지원을 요구하기 때문에 자비를 들여 현수막을 내걸고, 선거운동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역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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