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형 일 극동대 교수

18대 대통령 선거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내일이면 앞으로 5년간 대한민국을 이끌어 나갈 새로운 대통령이 결정되는 것이다. 마지막까지도 누가 당선될지 예측하기 어려울 만큼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간에 박빙의 승부가 펼쳐졌다. 하지만 누가 승리하든 그는 주권자인 국민들로부터 정당하게 권력을 위임받은 대한민국 행정수반의 자리에 앉게 된다.

이렇게 중차대한 결정이 이루어지는데 걸리는 시간은 내일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12시간에 불과하다. 국민 각자가 투표에 참여하는 시간은 이보다 훨씬 짧다. 투표장에 가서 본인 확인한 후 투표용지를 받아 기표소에서 원하는 후보에 투표하고 나오는데 걸리는 시간은 10분도 채 되지 않는다. 집에서 투표장까지 오가는 시간을 합해도 30분이면 끝이다. 하지만 이 짧은 시간의 투표행위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하는 현명한 선택이 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고민하고 판단하는 숙고의 과정이 필요하다.

오늘날 유권자의 신중한 선택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가장 중요한 기제가 TV를 비롯한 언론매체이다. 언론매체를 통한 다양한 선거정보 제공방식 가운데서도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 대선 후보자 초청 TV토론이다.

TV토론은 각 후보자와 정당이 일방적으로 정책을 홍보하는 TV연설이나 광고와는 다르다. 경마중계 하듯 유세현장을 정신없이 쫓아다니는 선거보도와도 다르다. 후보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자신의 정책과 비전을 제시하고 상호간에 토론함으로써 상대 후보들과의 비교 우위를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많은 국민들이 관심을 갖고 이 진검승부의 현장을 지켜보게 된다.

우리나라 대선에서 TV토론이 도입된 것은 1997년 제15대 대선 때였다. 처음 도입된 TV토론은 나름대로 성과가 있었다고 한다. 선거 후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유권자 2명 중 1명 이상이 지지후보를 결정하는데 TV토론을 가장 많이 참고했다고 응답했다.

이번 18대 대선에서도 3차에 걸친 TV토론이 이루어졌다. 12월 4일 정치·외교·안보·통일 분야에 대한 1차 토론이 있었고, 경제·복지·노동·환경 분야를 주제로 한 2차 토론은 12월 10일 진행되었다. 그리고 12월 16일 일요일 저녁에 실시된 TV토론은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의 사퇴로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간 양자토론으로 진행되었다. 주요 지상파방송은 물론 종합편성채널과 보도채널을 통해 토론의 전 과정이 생중계되었고, 국민들의 관심 또한 높아 매회 20~30%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번 대선 TV토론은 유권자의 선택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지적이 많다. 여러 가지 이유가 제시되었지만 가장 큰 문제는 토론의 진행방식에 있었다고 본다. 지나치게 형식적인 공정성을 유지하려다보니 정작 토론다운 토론이 이루어지기 어려웠다. 특히 후보자간의 상호토론에서 질문시간은 1분, 답변시간 1분 30초로 제한하면서 반론의 기회를 주지 않아 논쟁이 깊이 있게 이어질 수가 없었다. 토론과정을 통해 후보자들의 식견과 능력을 판단하고 정책의 차별성을 알고자 했던 유권자들 입장에서는 뭔가 아쉬운 토론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토론은 이미 끝났고 내일 투표장에 가서 선택할 일만 남은 것을. 어차피 선거란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최악의 선택을 피하는 것이라고 한다. 비단 TV토론 문제가 아니어도 우리가 가진 불완전한 정보만으로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나 혼자의 선택이 아니라 유권자 다수의 선택이 그나마 가장 나은 차선책이라는 믿음이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누가 누군지 잘 모르겠다고, 누가 되든 관심 없다고 소중한 주권 행사를 포기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피해야 할 최악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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