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연 기 한국교통대 교수

필자의 기억에 대통령 선거가 처음 각인된 것은 198713대 대통령 선거였다. 1987년은 6월 민주화 항쟁을 통해 체육관에서 자행되던 대통령 선거권을 국민의 손에 되찾아 온 해이기도 하다. 거리에 대통령 후보의 기호와 이름만이 적힌 현수막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고 선거과정 역시 현수막만큼 어지러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찌되었던 13대 대통령 선거는 입헌민주주의의 실현, 국민 스스로가 대표를 선출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4대 대통령 선거는 1960년대 이후 최초로 군 출신 후보가 사라지고 순수 민간인 후보끼리 벌인 선거였다. 13대 대통령 선거에서의 군정종식문민정부로 바뀌었고 갑자기 정치권에 뛰어든 재벌총수는 기존 정치권에서 제시하지 못했던 공약으로 주목 받기도 했다. 문민정부는 그 출범과 더불어 한 때 개혁에 대한 국민의 여망에 부응하기도 하였으나 선거 과정에서 지역주의를 극복이라는 과제를 여전히 남겨두었고 특히 정권말기에 터진 각종 비리와 IMF위기라는 초유의 사태는 국민들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IMF위기와 함께 시작된 15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이전 선거와는 달리 IMF 위기 극복으로 대표되는 경제 이슈가 전면에 등장했었다. 그리고 한 때 입장을 완전히 달리했던 두 세력 간의 연합인 DJP연합을 통해 전통적인 여권에서 야권으로 정권이 교체되었다. 대통령 선거에서 영상매체의 역할이 주목받기 시작한 선거였고 그 결과 TV토론이 활성화되고 후보자들에 대한 TV 광고의 위력도 컸었다. 여권 대선 주자의 경선 불복이라는 사상 초유의 해프닝은 대선 당락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었다. 국민의 정부 출범 후 IMF 조기 극복,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큰 성과를 거두었지만 양극화란 말이 등장한 것 또한 이때 부터였고 그 끝은 카드대란이었다.

15대 대통령 선거가 TV에 의한 미디어 선거였다면 16대 대통령 선거는 IT강국답게 인터넷을 사용하는 네티즌의 영향이 급속도로 커진 선거였다. 그리고 후보들 별로 자발적인 지지모임이 형성되었고 그들을 중심으로 대선자금 모금이 진행되었다. 후보단일화 및 지지철회에 따른 우여 곡절이 있었고 후보지지 여부에 따른 탈당, 당적이동이 많아서 정치권에 철새라는 말이 등장한 것도 이 시기의 사건이다. ‘행정수도 이전으로 대표되는 지역균형발전론 그리고 지역구도 타파가 선거의 큰 화두였고 그 결과 참여정부가 들어서게 되었다. 각종 개혁입법, 권위주의 극복, 지방 분권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사회 여러 분야에 대해서 찬반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시기이기도 했었고 양극화 문제는 해결되기는커녕 더 심화되고 말았다.

그래서 17대 대통령 선거는 경제 살리기가 모든 이슈를 집어 삼켰고 결과 역시 싱겁게 끝나버렸다. CEO 출신의 대통령이야 말로 산적한 경제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인해 선거 초반 형성된 대세가 그대로 이어져서 지금의 정부가 탄생되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18대에 걸쳐서 대통령이 이어져 왔지만 우리 국민들은 국민의 손으로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어찌 보면 대한민국 현대사는 국민의 손으로 직접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한 고난의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현행 제도로 대통령을 선출한 것이 25년에 불과한 것도 이를 입증한다고 할 수 있다.

얼마 전 세계 164개 공관에서 치러진 대통령 제외선거 투표는 한 표의 소중함을 잘 알려주고 있다. 버스로 40시간을 달리고, 하루 생업을 포기하고 몇 시간 비행기를 타면서 까지 투표하는 그들은 이번 대선에 대한 재외국민의 관심과 참여 열기가 대단함을 뜻함과 동시에 국민의 한 표가 국민 각자의 소중한 권리임을 말해주고 있다.

각 후보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서 국민의 신성한 권리를 정성껏 행사했으면 한다. 어느 개그맨의 말처럼 오늘 1219일은 5년을 기다려온 휴일이 아니라 앞으로의 5년을 결정하는 날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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