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주 희 침례신학대 교수

 

 

한 해가 기울어 가는 이 맘 쯤, 잘 마무리하라는 여러 전언들이 들려오면서 바람 부는 해질녘 집을 그리면서 발은 낯선 곳을 헤매는 듯한 실감이 도드라지기도 하는지.

등 떠밀리며 까마득한 미끄럼대 앞에 서 현기증을 내고 있는 듯하기도 한지.

시인들이 오래 공들여 길어 올리는 이야기들은 절실한 우리를 어떻게 위무하는지.

전봇대에 윗옷 걸어두고

발치에 양말 벗어두고

천변 벤치에 누워 코를 고는 취객

현세와 통하는 스위치를 화끈하게 내려버린

저 캄캄함 혹은 편안함

그는 자신을 마셔버린 거다

무슨 맛이었을까?

아니 그는 자신을 저기에 토해놓은 거다

이번엔 무슨 맛이었을까?

먹고 마시고 토하는 동안 그는 그냥 긴

그가 전 생애를 걸고

이쪽저쪽으로 몰려다니는 동안

침대와 옷걸이를 들고 집이 그를 마중 나왔다

지갑은 누군가 가져간 지 오래,

현세로 돌아갈 패스포트를 잃어버렸으므로

그는 편안한 수평이 되어있다

다시 직립인간이 되지는 않겠다는 듯이

부장 앞에서 목이 굽은 인간으로

다시 진화하지 않겠다는 듯이

봄밤이 거느린 슬하,

어리둥절한 꽃잎 하나가 그를 덮는다

이불처럼

부의봉투처럼

 

이기지 못하는 술을 토해놓고 길 가 벤치에 잠에 취한 취객을 이렇게 그려내다니, 권혁웅 시인의 ‘봄밤’이다. 시인은 이 시로 미당 문학상을 수상했는데 소감에서 공동체적 정체성이스러진 시대스럽게 진정성을 이야기 했다. “나는 내가 진정한 삼류가 되기를 바랐다. 이를테면 뽕짝의 리듬을, 무협의 내공을, 동선의 슬랩스틱을, 음담의 설렘을, 스템을 모르는 춤을, 몇 번째 반복되는 통성기도를 그리고 시가 되지 않는 고백을. 그것이 스타일이 아니라 내 영혼의 거울상이기를, 코스튬이 아니라 몸매이기를….”

잠에 깊이 빠진 취객의 지갑을 누군가 가져갔다. 그 지갑에 들어있는 현세의 그를 증명하는 지켜내야만 하는 것들이 사라졌으므로 현세를 도둑질당한 것이 되리라. 지킬 것이 없어져 버리고 모든 것을 방기한 역설적 편안함. 집으로 가지 못하는 대신 침대와 옷걸이를 들고 나온 집의 마중을 받은 것처럼, 봄밤의 슬하에서 아늑한 평화 속에 코까지 골며 잠에 빠져있는 것이다. 시인은 취객이 목이 굽은 비정상 인간으로 사는 것이 힘들어서 아예 누워버린 수평인간이 되어있는 것이라고 편을 든다. 그 위로 떨어져 내린 꽃잎을 잘 자라고 덮어주는 이불같기도, 현세와 절연한 그를 조문하는 부의봉투 같기도 하다고 ‘어리둥절한’ 꽃잎이라고 부른다. 어리둥절한 이유는 꽃잎의 의지가 아니라 누워있는 대상의 상태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때는 봄 밤, 취객은 불편한 것 없이 잘 자고 있으므로 사람들만 그를 내버려 둔다면 아침이면 일어나 다시 자기 자리를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봄 밤은 사람을 얼려 죽이는 날씨는 아니므로, 꽃도 피워낸 계절이므로. 누군가, 누군가가 취객의 지갑같은 사소한 것은 가져가도 다른 것을 망쳐버리지만 않는다면. 어머니 슬하에 있는 것처럼 잘 자고 있지 않은가. 술을 좀 먹었기로, 직립 인간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기로, 슬에 취해 집을 찾아가지 못했기로, 지갑을 잃어버렸기로 세상이 끝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 “열심히 늙어가는 일, 부지런히 사랑하고 이별하고 슬퍼하고 다시 사랑하는 일, 아픈 이들 곁에서 함께 앓는 일”. 우리 앞에 늘 펼쳐지고, 늘 더 잘해내야 할 그 중차대한 일을 시인은 잘 하고 싶다고 또 덧붙였다. 취객이나 그 취객을 보는 이나, 시를 읽는 이나 쓰는 이나 또 다시 새 마음을 가다듬을 앳된 시간들을 맞이할 은총 아래 함께 있지 않느냐는 격려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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