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수 길 논설위원·소설가

뱀은 일생동안 몇 차례에 걸쳐 주기적으로 허물을 벗는다. 몸체가 성장하는 만큼 표피가 자라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허물을 벗으면서 표피의 상처도 함께 벗어 던지고 새로이 태어나는 셈이니, 이른바 구각탈피(舊殼脫皮)요 환골탈태다.

계사년은 뱀의 해다. 사람들은 뱀의 생리나 설화를 들어 올 한 해에 일어날 상서로운 일을 점치거나 혹은 기원한다. 상서로운 일을 예견하거나 기대를 갖는 것은 좋은 일이다. 희망적이요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생동하는 활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예견과 기대와 기원은 비단 올해, 뱀띠 해에만 있는 일이 아니라, 새해 벽두마다 반복되는 일이지만, 한 해의 삶을 정산(精算)하는 연말에는 그게 얼마나 적중하고 얼마나 이뤄 졌는지는 ‘글쎄올시다’다. 아마, 기대충족과 성취보람에 흐뭇해하는 이들 보다는 후회와 탄식, 자책에 가슴 아파하는 이들이 더 많을 것이다.

구각탈피. 개인적으로는 행동습관이나 마음가짐을 바꾸는 것이겠고, 사회나 국가 차원에서는 낡거나 병폐가 있는 제도나 관습, 관례 따위를 버리고 새롭게 고치는 것일 것이다.

금년은, 5년 묵은 정권이 자리를 비우고 새 정권이 들어서는 해다. 묵은 허물을 벗고 새로 태어나는(?) 뱀의 생리와 딱 들어맞는 구각탈피의 호기가 되는 셈이다.

정권교체기와 뱀띠해가 딱 들어맞는 경우가 언제 또 있었는지 몰라도, 구각을 탈피하고 새롭고 기운찬 출발로 국운융성의 토대를 이루리라는 운세에 기대를 가져봄직한 일이다.

벗어 버려야할 낡은 허물은 많다. 손가시 같다는 법조항의 몇 개 자구(字句)에서부터 중소기업, 중소상인과 대기업 사이에, 혹은 이익단체 간 갈등을 빚거나 종북 좌파단체와 정당에까지 혈세로 보조금을 지급하는 법률이 있는가 하면, 미비해서 범법자를 제대로 처벌할 수 없는, 국민정서에 맞지 않는 법률도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허물은 온 국민이 혐오 하는 정치비리와 정치인특권의식, 권력층의 관례화 된 부패, 공복(公僕)사회의 비리다. 이런 것들이 국민의 박탈감과 배신감, 분노를 부른다. 국민의 일체감을 높이고 통합을 이루려면, 시혜성 복지확대 보다, 이런 묵은 허물들을 뱀처럼 훌렁 벗어던지는 게 우선돼야 한다.

부패와 비리가 기생하는 곳에는 크고 작은 권력이 존재한다. 권력이 부패의 온상이 되고 원성의 대상이 되는 것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 국민의 안녕을 위한 업무권한을 남용, 완장을 휘두르며 법을 무시하고 국민의 머리위에 군림하는 저질의 인간들 때문이다.

역대 대통령들이 임기를 마칠 때마다 측근비리로 몸살을 앓았다. 완장을 차서는 안 되는 인물에게 완장을 덥석 채워 준 탓이다. 잔여임기가 일개월여 남짓한 이명박 대통령도 측근비리로 인한 몸살을 비껴가지는 못했다. 취임 초부터 지지율을 까먹던 ‘강부자’ ‘고소영’이 세간의 구설에 오르더니, 몇몇은 이미 감옥에 가 있고 몇몇은 심판중이란다. ‘관례’대로 대사면을 실시, 측근사랑의 특혜를 베푼다면, 국민은 또 한 번 이질감과 허탈에 빠질 것이다. 뱀이 허물을 벗기 위해서는 나뭇가지나 돌쩌귀에 몸을 비비고 몸부림을 쳐야하듯, 정치나 관가주변의 구각탈피에도 그런 몸부림이 없이는 지난한 일이다. 차기정부 대통령직인수위의 업무가 이미 시작 됐으니, 구각탈피를 위한 고통스런 작업도 당연히 병행 될 것이다.

새 정부가, 대선공약을 포함한 각종 정책을 구체화하여 국정의 새로운 틀을 잡아가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정책수행자의 발탁, 완장을 어떤 사람에게 채워 줄 것이냐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능력과 소신이 없고 청렴과 봉사의지 없이 거들먹대는 인물이 완장을 차고 설친다면, 국민의 박탈감치유는 무위가 되고 차기 대통령의 임기 말 몸살도 여전히 반복될는지 모른다. ‘인사가 만사’라니, 첫 조각(組閣)이 국운의 만사형통 여부를 좌우할 것이다. 완장 찬 인물들은 ‘노는 물이 다르다’는 일반의 인식이 깨지기 전에는 구각탈피는커녕, 선거 때마다 18번 구호로 내거는 ‘쇄신’도 불가능한 일이다. 완장을 벗고 진솔한 심정으로 국민과 함께 호흡하고 같은 물을 마실 때 가능한 일이다. 완장의 주인은 국민이다. 거들먹거리며 과시하거나 군림하라고 준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뼈 빠지게 봉사하라고 준 것이다. 차기정권 5년 동안엔 어느 때보다 난관이 많을 거란다. 온 국민이 일체가 되어 난관극복에 동참하게 하려면, 완장의 의미를 바로 알고 구각탈피 하여 국정에 진심갈력할 인사에게 완장을 채워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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