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수 길

고교를 졸업하는 청소년들, 지금쯤은 너희 마음이 한창 부풀거나 설레는 때다. 직장이나 혹은 대학으로 진출하는 너희의 기쁨은 곧 너희 부모와 스승의 기쁨인 동시에, 너희에게 나라의 장래를 맡길 모든 어른들의 기쁨이다. 그만큼 너희를 향한 부모와 모든 어른들의 기대는 무한히 크다. 당연히 너희의 이상도 크고 원대하리라 믿는다.

취업에도 진학에도 문이 열리지 않아 잠시 발길을 멈춘 경우라도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말 일이다. 먼 길을 가노라면, 누구나 한두 번쯤 쉬어가는 법. 쉬는 건 허송세월이 아니라 도약을 위한 충전(充電)의 기회일 뿐이다. 허송한다면 짧은 청춘의 낭비가 되겠지만 분발기회로 삼는다면 앞 선자를 추월할 수도 있는 동력(動力)을 얻게 될 것이다.

이제 너희가 가는 길은, 부모의 품 안에서 보호받고 투정부리며 지내던, 그런 평탄한 길이 아니다. 오로지 ‘입시’에만 몰두하던 외길도 아니다. 숨차게 넘어야할 깔딱고개가 겹치고 풍랑노도(風浪怒濤)가 덮치는 난항(難航)이다. 지금까지의 학업이 고달팠다고 하지만, 닥칠 고난에 비하면 안방의 걸음마였고 요람속의 미풍이었다.

캥거루처럼 너희를 품고, 헬리콥터처럼 맴돌며 일거수일투족을 보살펴 주던 부모의 사랑과 희생으로부터 너희는 이제 독립해야 한다. 부모가 너희를 먹이고 입히고 모든 시중을 다 해줬던 것은, 너희는 왕자나 공주고 부모는 신하나 시종이라서 그랬던 건 결코 아니다. 부모라는 이름, 거기서 우러나는 본능적인 사랑과 희생을 너희에게 쏟았을 뿐이다. 너희도 똑같은 보통 사람, 지구상 수십억 인구 중의 하나일 뿐이라는 걸 잊지 마라.

야생동물의 새끼들은 한시적인 보육기간을 스스로 인식하고, 미리미리 독립을 준비한다. 새끼새는 실패를 거듭해도 높은 둥지에서 뛰어내리며 날갯짓을 익히고, 새끼사자는 작은 동물사냥부터 시작해서 제 몸 보다 큰 짐승을 사냥하는 독자생존의 길을 익힌다.

성년 후에까지 부모의 보호막 속에 안주하려는 것은 오직 인간뿐이다. 그것은 부모의 보호본능이 야생동물 보다 강한 까닭도 있지만, 자식의 용기와 의지가 부족하고 의타심이 큰 탓이다. 부모의 자식사랑과 희생은 무한하지만, 능력까지 무한하지는 않다.

부화한 새끼에게 제 몸을 먹이로 주는 연어나, 속을 다 파 먹히고 껍질만 물에 둥둥 떠내려가는 우렁처럼 인간의 생애, 부모의 생애가 그렇게 끝날 수는 없는 일이다. 보육희생 못지않게, 자식 독립 후의 여력으로 노후를 준비할 권리도 부모에게 주어져야하지 않겠는가.

졸업과 함께 성년의 생활에 접어 든 청소년, 너희가 장차 부모가 될 미래를 상상해 보고, 너희 부모가 살아 온 길을 되돌아보라. 그러면 너희가 갈 길이 보일 것이다.

모든 걸 부모에게 의지하면서도 ‘내게 해 준 게 뭐냐고’ 들이대던 철부지 시기는 지났다. 선택의 자유와 함께 뒷감당의 책임도 스스로 짊어져야 한다. 그것이 곧 독립이다.

극기(克己)는 자신을 이기는 것이고, 극복(克服)은 악조건을 견뎌내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원동력이다. 내부에 잠재 된 의타심을 버려야 가능한 일이고, 성년으로 갖춰야할 기본품성이며 독립의 제1과 제1장이다. 부모의 둥지에서 과감히 뛰어내리는 용기 있는 새끼새만이 자신의 날개로 하늘을 날수 있다.

졸업은 해방이 아니다. 새로운 도전일 뿐이다. 대학 캠퍼스의 낭만만을 꿈꾸거나 직장 신출내기 어리광에 대한 관용을 기대하지 마라. 너희는 이제 보호철책 밖의 밀림과 같은 야생의 삶을 살아가야한다. 성년으로서의 독립과 도전을 두려워하면 도태를 면치 못 한다.

너희는 시중 받는 왕자나 공주가 아니다. 스스로 사회구성원으로서의 구실을 다하는 건 물론, 남을 위해 베풀고 이끌 능력을 준비하는 자만이 남보다 넓고 높은 하늘을 날 수 있다.

이상을 품고 백절불굴의 의지로 일관하되, 능력과 적성에 맞아 즐겁게 수행할 수 있는 것인가를 심사숙고해야 한다. 가공(架空)의 이상, 무리한 욕망은 절망과 좌절을 안길 뿐이다.

졸업식장에서의 고무적인 축사나 격려사는, 너희가 최선의 삶을 살았을 때 도달이 가능한 기대치일 뿐이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갈 길을 스승이 가르쳐주거나 부모가 열어주길 기대하지 마라. 고통스러워도 너희 자신이 열어가야 한다. 너희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녔다하나 아직은 원석일 뿐이다. 스스로 절차탁마(切磋琢磨)하는 고통 없이는 보석으로 빛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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