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 영 철 NH농협 진천군지부장


 

아내는 가끔 교회의 지인들과 함께 영화구경을 다닌다. 그렇다고 해서 퇴근한 나를 붙잡고 영화에 대한 감상이나 줄거리를 이야기한 적은 거의 없다. 혹 내가 지나가는 말로 물어보면 겨우 한다는 이야기가 “예, 재미있었어요” 또는 “당신도 시간이 되시면 한 번 보세요” 하는 정도가 다다.

아내가 그런 단답형 대답을 하는 것은 아마 두 가지 중 하나일 것이다. 첫째는 내가 말 많은 사람을 좋아하지 않으니 괜스레 수다를 떨 필요가 없다는 생각일 것이고, 둘째는 아내의 말솜씨가 그리 뛰어나지 않다 보니 자진해서 많은 말을 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천생연분인지도 모른다.

지난 주일부터 아내는 보고 싶은 영화가 있다며 나와 같이 갔으면 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그 주일은 여러 가지 일이 밀려있어 도저히 시간을 낼 수가 없었다. 마침 이번 토요일은 짬이 있어 아침식사 후 책을 보고 있자니 아내는 “여보! 특별한 일이 없으시면 함께 영화나 보러 갑시다. 아침에 가면 요금도 싼데”하며 나를 슬슬 꼬드겼다. 나는 못이기는 척하며 아내를 따라 나섰다.

영화관이 집에서 그리 멀지 않아 오랜만에 아내와 함께 팔짱을 끼고 걷는 호사도 누렸다. 영화관에 도착하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벌써 줄을 서서 표를 사고 있었다. 나는 늦을까봐 젊은 사람들 뒷줄에 얼른 뛰어가 섰다.

영화의 내용은 어느 외국도시에서 남북한의 첩보전에 관한 것으로 구성도 좋았고 박진감도 있어서 재미있게 관람했다. 아내도 재미있었다면 만족해했다. 우리나라 문화예술이 이제는 세계적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국내에 있는 우리는 잘 모르지만 외국에서 생활하는 교포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우리나라가 참 대단한 나라가 되었다고 한다. 영화면 영화, 음악이면 음악 모두가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하니 듣고만 있어도 우쭐한 기분이 든다.

영화관을 뒤로하고 나오는데도 어느 조연배우의 대사가 내 머리 속을 계속해서 맴돌고 있었다. “선배님, 지위가 올라갈수록 일 잘하는 사람보다는 내 말을 잘 듣는 사람과 함께 일하고 싶어 한답니다.”

혹시 나도 직장에서 우리 직원들을 그런 시각으로 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일 열심히 하고, 나에게 올바른 말을 하는 직원을 멀리하고, 내 지시에 대꾸 없이 잘 따르는 직원이나 나에게 좋은 말만하는 직원들을 더 가까이 하고 있지는 않은지 다시 생각해 보았다.

또 반대로 ‘나의 상관은 나를 어떤 위치에 두고 있는 것일까?’ 도 생각해 보았다. 나와 함께 일하는 것이 좋을까? 아님 꺼릴까? 그렇다면 그 이유는?

15년 전 인사과장으로 근무할 때다. 하루는 상관인 팀장께서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류 과장, 내가 느낀 것인데, 직급이 올라갈수록 원칙보다는 정치성이 강해지는 것 같아. 또 새로운 일을 벌이는 직원보다는 무해무덕한 직원이 더 좋아하게 되고, 그래서 조직이 변화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가봐. 나도 사람인지라 직언을 말하는 직원보다는 내가 시키는 대로 군소리 없이 일하는 사람이 더 좋아지기도 해. 그러면 안 되는데 말야. 그래서 류 과장에게 부탁하는데, 내가 그런 모습이 보이면 언제든지 말해줘. 그래야 나도 살고, 우리조직도 사는 거야.”

영화 속 한 줄의 대사가 계속해서 내 머리 속을 맴도는 것은 우연한 일만이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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