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팔 소설가

기만이 양반은 이야깃주머니다. 그러니까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를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글공부만 하다가 갓 사회에 나와서 산지식이 없어 세상물정에 어두운 그런 사람이 아니다. 다양한 이야기를 그때그때 알맞게 맞춰 재밌고 유식하게 얘기를 하니 동네에선 천생 이야기꾼이라고 한다.
그의 이러한 재능은 선천적이라기보다는 이야기책 읽기를 무척이나 즐겼던 그의 모친에게서 영향을 받았으니 후천적이라 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의 모친이 열여섯에 시집와 보니 환갑에 가까운 시어른 내외분이 있었다. 그분들이 모두 이야기책을 좋아했다. 이야기책 읽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책 듣기를 좋아했다. 시부는 그래도 서당에서 명심보감(明心寶鑑)까지 책씻이한 학력이 있어 문자 섞어 쓰는 말에는 남에게 지지 않았으나 언문으로 된 이야기책 읽기엔 재미를 못 붙이고 듣기를 즐겼다.
시모는 아예 한문이건 언문이건 까막눈이었다. 하지만 한 권의 책을 책장이 떨어져 나가도록 서캐 훑듯 읽혀 들어서인지 그 안의 고문 투의 문자를 꽤 익혀 이걸 자연스럽게 구술하니 인근에선 유식한 아녀자로 통했다. 그의 모친이 시집오기 전까지는 이야기책을 읽어주는 사람은 동네 조카 벌 되는 인척이었다. 이런 판에 이제 그의 모친이 이를 대행하게 됐다.
그의 모친은 시집오기 전 친정에서 언문을 가까스로 깨쳤다. 남동생이 소학교(초등학교)에 들어가 한글을 깨칠 때 어깨너머로 한 글자 한 글자 익혀 나갔는데 그 남동생이 소학교를 졸업할 무렵엔 남동생을 대신해서 가끔 한 번씩 할머니께 이야기책을 읽어 드릴 수 있게 됐고 시집올 때쯤 해선 할머니한테 제법 잘 읽는다는 칭찬을 받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러니 시집와서 이야기책 읽기는 생소한 것이 아니어서 시부모께 읽어 드릴 걸 자청했다. “아니, 새애기 네가 이야기책을 읽는다구, 허어 참 신통하네. 그래 읽어 보렴!” 반신반의로 읽혀본 시부모는 흐뭇해했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으로 읽어 보인 그 이야기책이 친정에서 이미 할머니께 두 번이나 읽어 드린 책이었던 것이다. “히야, 너 참 잘 읽는구나, 어쩌면 그렇게 딱딱 떨어지고 구성지냐. 너 돈 받고 그 질로 나서도 되겠다. 이건 철부지며느리가 아니라 복덩이구나 복덩이!” 시부는 그만 홀딱 반해버리고, 시모는, “얘야, 저녁설거지는 내가 할란다. 좀 쉬어 이따 책 읽을라믄.” 하며 대우가 극진하다. 시아버진 청주에 다녀올 일이 있을 적마다 책점에 들러 책세(冊貰)내고 책을 빌려 왔다. 한 번 빌리면 열흘이나 보름을 기한으로 했다. 그 안에 두 권, 세 권을 독송(讀誦, 소리 내어 읽음)한다. 하지만 그게 일 년 내내 그러는 게 아니다. 시아버진 독서삼여(讀書三餘)를 꼭 지켰다. “책 읽기에 알맞은 세 여가가 있느니라. 겨울과 밤과 그리고 비가 내릴 때를 이르느니 이건 우리 같은 농가에 꼭 맞는 말이다.” 하며 이때를 기하여 책을 읽히는 거였다. 그런데 정작 남편 되는 이는 한갓 착하기만 하고 주변이 없는 데다 책 읽기를 멀리하고 듣기도 기피했다. 어쩌다 한 번씩 시부의 명에 따라 마지못해 읽어보는 날엔 시부의 역정이 날카롭다. “글을 읽을 때는 삼도(三到)가 있는 법, 곧 마음과 눈과 입을 오로지 글 읽기에 집중해야 하거늘 어찌 그리 건성건성 읽는 게야!” 또, “ ‘서자서아자아(書自書我自我)’라 하는 말이 있어. ‘글은 글대로 나는 나대로’라는 말로, 글을 읽되 정신은 딴 데 쓰고 있음을 이름이 아니냐. 니가 시방 바로 그 짝이니라.” 하니 더욱 주눅이 들고, “너도 같이 들어 보렴 재밌지 아니 하냐. 그도 그렇지만 옛 어른들과 만나 벗할 수도 있으니 오죽 이롭겠느냐?” 하고 듣기를 권하면 마지못해 잠간 듣다가 소피보러 나가는 척 슬그머니 일어나 동네사랑방으로 내닫는 것이다.
기만이 양반의 모친이 이야기책 읽기를 접게 되는 것은 시부모들이 돌아가고 당신이 시부모 자리에 들어서면서다. 이때부터는 이제 기만이 양반이 모친께 책을 읽어드리기 시작했다.
이제 소리 나는 대로 적은 내리닫이 종서의 옛날 이야기책이 아니라 횡서의 현대판 역사소설책루가 주류다. 이런 것들을 어머니께 읽어 드리면서 그는 그 안에서 많은 것들을 배웠고 또한 이제 백수에 가까운 어머니로부터는 옛 현인들의 교양이나 고담, 야담 등을 들어 왔으니 여간 유식해지고 수양을 쌓았는지 모른다. 하니 이게 다 모친의 영향이 아닌가!
그런데 대학생 손자 놈이 책 읽는 걸 보지 못한다. “얘, 책은 언제 읽느냐?” “책요, 아 종이책요?” “종이책이라니?” “컴퓨터, 휴대폰이나 전자북 보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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