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수길 논설위원

국가안보에 중책을 맡은 어떤 분이, 부쩍 잦아진 북의 대남 도발협박을 두고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고 했다. 맞는 말씀이다. 그러나 예외가 있다. 비정상의 미친개는 다르다.

북한은 정상국가가 아니다. 체제나 경영상태, 주민생존실태 등, 모든 게 현대국가의 틀을 벗어난 불량국가다. 사실상 국가라기보다 거대한 폭력집단에 불과 할 만큼, 그 존립 기반이 ‘국가’라는 명칭을 붙이기엔 비정상적인 부분이 너무도 많다. 폭력집단의 우두머리는 신격(神格)에 버금가는 존재다. 후계지명권도 우두머리 몫이요, 조직원은 복종의무만 있는 소모품이다. 중세 이전엔 이런 체제의 국가 존재가 가능했지만 민권이 강화 된 현재는, 비록 세습왕조가 존속되더라도 상징적 존재일 뿐, 실제적인 통치 권력의 선택권은 국민에게 있다. 우리 국민들의 북한 존재에 대한 인식은 복잡하다. 주민(동포)을 보느냐, 정권을 보느냐, 통일 대상이냐 공존 대상이냐, 이념과 시각에 따라 다양하다. 그러나 신탁통치 찬반이견에서부터 남북에 두개의 다른 정부가 수립된 과정, 6.25남침과 휴전협정 이후에 자행한 도발을 상기할 때, 그리고 주민의 생존실태를 냉철히 돌아볼 때 그 판단 결과는 자명하다.

우리는 ‘자주통일’이나 ‘민족끼리’라는 구호에 속아 뒷통수 맞는 일을 수없이 당해 왔고, 북한주민 역시 ‘이밥에 고기국’이라는 감언이설에 속아 인간의 기본권마저 박탈당해 왔다. 미국이나 유엔은 이미 북을 불량국가로 낙인찍은 셈이다. 수차례의 제재를 통해 북의 IAEA협약 이행을 촉구했지만 효과는 전무다. 주민의 피를 짜고 걸태질한 재원으로 로켓과 핵폭탄을 만들고, 그걸 몽둥이 삼아 한국과 미국을 협박하며 국제사회에 반항하고 있다. 그 행태를 보면 공권력을 무시하고 흉기를 휘두르는 폭력집단이나 미친개와 다를 바 없다.

미친개가 물고 안 물고는 예측불가다. 짖거나 안 짖거나 무조건 경계하고 방비하는 게 상책이다. 굳이 접근하려면 치명적인 뜨거운 맛을 보여주고 두려움을 각인시켜야 한다.

숱한 북의 도발에 우리는 과연 뜨거운 맛을 제대로 보여 주었던가, 확전염려 때문인지 응징을 자제하거나 최소화 해 왔다. 그걸 저들은 ‘위대한 승리’라며 체제선전에 이용했다.

‘핵 장착 로켓’ 스위치만 누르면 서울과 워싱턴을 불지옥으로 만든다는 북의 협박에도, 국민들의 동요가 없는 건 다행이지만, 긴장 속의 인내가 아닌 ‘방심’이라면 그게 곧 위기다. 2차 대전 막바지, 1945년 4월 12일. 미국대통령 루즈벨트가 뇌졸중으로 급서했다. 승전을 눈앞에 둔 미국은 국가권력의 공백으로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부통령 트루먼이 신속한 법적절차를 마치고 대통령 직무를 수행했다. 걸린 시간은 2시간 34분. 관계각료 외의 국민들은 수습 후에야 비로소 알았을 만큼 신속한 대처로 위기를 넘겼다. 국정공백은 ‘제로’였다. 북이 로켓발사와 핵실험을 벌이는 와중에 우리는 대선을 치르고 정권이 교체됐다. 새 정부근간이 될 정부조직법개정안이 제출 52일, 정부출범 26일 만에 국회를 통과했다. 늑장도 보통늑장이 아니다. 대통령의 불통 탓인지 야당의 발목잡기 탓인지, 혹은 북의 핵위협을 이웃 집 개 짖는 소리로 알고 무심한 탓인지, 긴 국정 공백에 안타까운 국민들은 애간장이 탔다.

‘핵을 머리에 이고 살 수는 없다. 전쟁억제력이 가장 중요하다.’는 대통령의 말씀(3.19.종교지도자 오찬)은 백 번 옳은데, 북의 도발위기에 ‘뜨거운 맛’을 보여줄 대비는 확실한가?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때 우리의 위기대처는 어땠었나? ’핵을 머리에 이고’ 미친개 짖는 소리가 요란한 현재는 또 어떤가? 미국의 ’2시간 34분‘과 우리의 ‘2십6일’은 위기에 대처하는 국가수준, 정치수준을 보여주는 잣대요, 26일이란 그 황당한 시간 자체도 우리가 극복해야할 위기다. 위기 앞에서 위기를 자초하는 정치. 이게 우리의 한계라면 답답한 일이다.

북은 지금, 협박에 대한 우리의 대응을 시험하고, 신임 대통령에게 단호한 결단력이 있는가를 시험하고 있다. 도발 협박으로 원하는 걸 얻으려는 저들의 흉계가 육`해`공과 지하, 사이버 공간 어디서나 뭔가를 저지를 건 불문가지요, 그게 우리에겐 위기다. 그러나 우리의 결속과 방비가 완벽하고 ‘뜨거운 맛’이 준비됐다면 야욕을 접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위기에 우리가 정부에 협조할 일은 무엇입니까?’ 야당이 이렇게 물어줬다면, 정부는 더 강력한 의지를, 국민은 더 굳은 결속을 보였을 것이고, 북은 오판을 접지 않았을까?

대통령의 한반도신뢰프로세스는 북이 진정으로 화해와 동행을 원하는 그 때라야 비로소 약발이 설 것이고, 통일대비는 그 후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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