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팔 (소설가)

 어머닌 홋잎나물 따러 갈 채비를 하신다. 홋잎나무는 줄기와 가지에 화살의 깃 모양을 한 껍질이 달려 있어 본래 이름은 ‘화살나무’로, 시골에선 이 어린잎을 ‘홋잎’이라 하면서 봄 산나물 중 으뜸으로 친다. 갓 나온 연한 잎을 삶아 참기름이나 들기름에 무치거나 된장을 풀어 장을 지지고 국을 끓여 놓으면 아버진 이걸 젤로 좋아하셨다. 그 아버지가 홋잎이 틀 무렵인 바로 이때 환갑을 이태 앞두고 돌아가셨다. 세전 씨 나이 서른일곱이었다. 설암(舌癌)으로 몇 해를 음식 삼키는 일로 고생 중에도 어머니가 봄철만 되면 후미진 살미골을 뒤져 차려 놓은 홋잎나물 음식만은 반겨 드셨다. 바로 내일이 아버지 기일이다. 그래서 어머닌 또 살미골로 홋잎 찾아 나서시려는 것이다. 세전 씨가 이제 아버지 돌아가셨을 적 나이가 됐지만 어머닌 이일을 한 해도 거른 일이 없다. “어머니, 여든이 넘으셨어유. 에미를 시키든가 에미하구 같이 가셔유.” “아니다, 내 일인데 나 혼자 갈란다.” 말릴 방도가 없다.
 여기도 두메라 동네이름도 두메실인데 여기서 높은 살미재를 넘어 산골짜기 소로를 따라 동으로 시오리쯤 더 들어가면 20여 호 동네가 나온다. 여기를 두메실 사람들은 두메실보다 더 두메라 하여 더둠골이라 부른다. 여기로 두메실 아낙들은 여름이 되면 두셋씩 패를 이루어 옥수수나 참외를 팔러 찾아든다. 참외풍년이 든 여름, 첫돌 지난 첫아이 세전이를 업고 새 아낙이 참외광주리를 이고 동네아낙들을 따라나섰다. 참외 3개에 보리쌀 한 되를 받는다. 하지만 세전이 엄만 점심때가 지나도록 하나도 팔질 못했다. 삽짝안만 기웃기웃 대다가 도로 발길을 돌리곤 했으니 팔릴 리가 없다. 다 판 두 아낙들이 팔아주기로 했다. 하지만 현찰마침인 보리쌀을 현물로 받질 못했다. 당장 연명할 보리쌀이 모자라니 내년에 받으러 오라는 것이다. 할 수없이 세전엄만 빈광주리만 이고 돌아왔다. 세전이 아버지가 그 소리를 듣고 허허 웃으며 첫 행상에 외상이긴 하나 다 팔고 왔으니 우리 마누라 대견하다며 사람 좋게 너그러이 품어 주었다. 이듬해는 옥수수를 이고 들어갔다. 세전아버지도 그 동네친구와 만날 일이 있다며 같이 갔다. “아이구 쌀독만한 애기를 업고 왔구려. 그런데 어쩌나 옥수수를 살려면 지난해 참외 값을 못 주겠네. 어쩌나 참외 값을 줄까나 옥수수를 팔아줄까나?” “옥수수를 팔아주셔유.” 가만히 생각해 보니 빈 광주리를 이고 돌아가는 게 나을 성싶었던 것이다. 참외 외상값이 옥수수 값보다 더 많다는 건 아예 계산해 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참으로 운 좋게도 옥수수 값을 현찰로 주는 집이 둘이나 있었다. 더 신나는 일은 외상이긴 하나 점심 전에 광주리를 비운 일이다. 그런데 같이 온 일행이 다 팔지를 못한 채 한 집에서 한숨을 푹푹 쉬고 있었다. 그 집도 현찰을 냈는데 돈이 커서 거스름돈을 못 주고 있는 거였다. 둘이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세전아버지가 일을 다 보았다며 와서 이 광경을 보았다. “여보, 아까 옥수수 값 돈으로 받았다며?” “그런데유?” “그거 잔돈 아냐. 그걸루 대신 거슬러 주구 낭중에 동네에 가서 받으면 되지 안 그려?” “글씨유 그런가유, 여깄어유.” 이렇게 해결을 해준 세전아버진 집으로 돌아와, “당신 오늘 참 좋은 일 했어. 당신 아녔으믄 큰일 날 뻔 했잖아 우리 마누라 훌륭해!” 하고 보듬으며 품어 주었다. 세전이가 9살 때, 읍내장터로 참외를 팔러 갔다. 세전아버지가 경운기로 싣고 가서 난전을 벌여주고는 장터를 한 바퀴 돌고 왔다. 그런데 세전엄마가 허둥지둥, 허겁지겁, 좌불안석으로 몸을 부들부들 떨며 넋 나간 소리를 하고 있었다. “아이구 아이구, 내 보따리. 보따리가 없어졌네, 보따리가!” 얼른 세전아버지가 세전엄마를 진정시키고 우정 소리를 높였다. “여보, 여보, 뭘 그까짓 걸 가지구 그래, 돈 한푼 안 든 그지발싸개 같은 걸 가지구. 누가 가져갔어두 허탕칠껴!”그리곤 저만치 떨어져 나가 남 모르게 주위를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한 허름한 아주머니가 세전엄마 뒤에다 슬쩍 보따리를 놓고 시치미를 떼고 가는 게 보였다. 얼른 뛰어가 주워 보니 돈도 수건도 주민등록증도 그대로 있었다. “이게 다 당신 복여. 당신이 그렇게 티 없는 사람이니 누가 해코지를 하겄어.” 하고 역시 가슴으로 품어주었다.
 이런 아버지가 병석에 있을 때 어머닌 그야말로 식음을 전폐하고 온갖 정성으로 보살폈는데, 별세 후에도 기일엔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아버지가 제일로 좋아하시던 홋잎나물을 제상에 올리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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