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희(침례신학대 교수)

 ‘저쪽에서 봄바람이 부는가 싶은데 그만 내 가슴 속에 꽃이 피어버리는 것, 쌍방이 그러한 것, 이쪽에서 마늘을 까기 시작하는데 저쪽에는 벌써 밥상이 차려져 있는 것. 그것 또한 서로 그러한 것. 그게 사랑 아닌가.’ 한창훈의 단편집 [그 남자의 연애사]에 나오는 사랑의 순간이다. 기막히게 충족되는 환상의 상태, 이렇게 언제까지나 살 수 있다면 작히나 좋은가. 문제는 이 좋은 사랑의 순간이 지속되지 못하고 한 때에 그치는데 있다. 이 소설집에서도 그 좋은 사랑은 그다지 오래가지 못한다. 인물들이 사랑을 오래 지니지 못하면서 ‘어떤 사랑’보다 ‘왜 사랑하는지’를 이야기 하는 것으로 보인다. 자주 사랑의 대상을 잃어 이편에서 저편에게 보낼 사랑이 길을 놓치게 되기 때문이다. 

 ‘그 남자의 연애사’의 그 남자는 스무 살 되던 해 조선소에서 만난 도목이 아랫사람인 그 남자가 성실하다고 자기 딸을 주어 여고생과 살림을 차렸는데 아기를 낳으러 친정에 가다 교통사고로 죽는다. 슬픔으로 이리저리 떠돌다 섬에 들어가 만나게 된 술집 여자도 둘이 함께 지내다 집에 다녀온다고 한 뒤 소식이 끊긴다. 실은 병에 걸려있었고 죽고 만 것이다. 세 번째 여자도 남자를 떠나 돌아오지 않는다. 심지어 빚 갚아주고 살았지만 보름 만에 도망가 버린 네 번째 여자는 근처에서 다른 남자와 살고 있다. 돈을 다시 내놓으라고 하고 내놓을 수 없다는 실랑이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니, 그 남자 연애사는 불행과 배신으로 갑갑한 이야기이다. 그 남자는 여자들이 떠나면서 남긴 말들을 그 여자들 사진 뒤에 적어 지갑에 넣고 다닌다. ‘갔다 올게’, ‘이런 사람이 있다고 엄마한테 말하고 올게’, ‘금방 올게’ 이런 말들은 부재의 증명이고,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 그 남자가 버려진 증거들이다. 죽어서 못 오건, 오기 싫어서 못 오건 남자는 사랑의 대상을 늘 잃어왔다. 그런데 이 남자, 사랑에 대해 계속 희망을 품는다. 또 ‘멀어지는 여자의 뒷모습을 보며 한 번 정도의 기회는 남아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방식으로. 이 남자는 어째서 사람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못하는 것일까. 어째서 그만두지 못하는가를 작가가 이야기한다.

“사랑은 굶주린 개 앞에 던져진 상한 고깃덩어리와 같다. 개는 앞뒤 가리지 않고 덥석 문다. 허기가 가시고 포만감이 드는가 싶지만 식은땀과 뒤틀림과 발작이 곧바로 찾아온다. 끙끙 오랫동안 앓아야 한다. 그 시기가 지나면 또 한 번의 고깃덩어리가 던져진다. 저것을 삼키면 식은땀과 뒤틀림, 발작이 틀림없이 찾아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 뻔히 알면서도 또 덥석 문다..”

 우리는 왜 매번 그럴 수밖에 없는가. 도대체 왜, 어째서, 이별 뒤의 고통이 그토록 큰데도 또 다시 사랑을 꿈꾸는가, 그것은 사람의 어리석음일까, 아니면 생존의 방략이 되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작가는 단어의 어의로 그 이유를 풀어낸다. 

“사랑을 뜻하는 스페인 말이 ‘amor’이다. ‘mor’는 죽음, ‘a’는 저항하다, 이다. 사랑은 죽음에 저항하는 행위인 것이다. 이 단어를 알고 나서야 독한 불면과 눈물을 감수하면서까지 사람들이 거듭 사랑에 빠지는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다. ”라고.

  비루해 보이는 이야기이건, 잘난 이야기이건, 숭고한 이야기이건 사랑 이야기는 절절할 수밖에 없다. 누구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에 빠지는 도취의 상태를 사랑할 수도 있다. 관계의 책임과 의무를 지고 싶어도 대상이 떠나버리는 처절한 사랑도 있다. 그렇다고 어쩔 것인가, 작가 말대로 사랑이 죽음에 저항하는 행위, 달리 말해 삶을 확장해 내는 일이라면 사랑의 도취를 물같이 서늘하게 해낼 재간이 사람에게는 없고, 전 인생을 도취 상태로만 살 수도 없다고 해도. 또 어쩔 것인가. 사랑은 하되 그 열기로 애먼 남 태워 죽이는 일이나 안하면 다행인건지 어쩌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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