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제천 출신으로 '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 ‘태왕사신기’ 등 주옥같은 작품으로 국내 드라마 시청자들 사이에서 최고의 연출가로 각광받던 연출가 김종학 PD가 향년 61세를 일기로 23일 세상을 떠났다. 숱한 화제작들로 한국 드라마 역사에 큰 획을 그은 김 PD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의 한 고시텔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해 많은 국민들에게 충격을 안겨줬다. 그는 지난해 방송된 SBS 드라마 '신의'의 출연료 미지급과 관련, 배임·횡령·사기 혐의로 피소되어 두 차례 경찰조사를 받았다. 지금까지 지급되지 않은 '신의'의 출연료는 6억40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중국에 체류 중이던 김 PD를 소환해 조사한 뒤 출국 금지시켰다. 김 PD는 검찰 수사도 함께 받아왔으며 이날 오전 영장실질심사가 이루어질 예정이었다. 드라마의 부진에 이은 일련의 사태로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은데다, 자금 압박과 검찰 수사 등으로 심리적 고충이 심했던 모양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거장 연출가가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죽음으로 끝을 낸 것이 안타깝다. 그의 대표작 '여명의 눈동자'나 '모래시계'는 격동의 근현대사를 조명한 선 굵은 작품들로, 사회성 있는 메시지를 전하면서 대중적 요소까지 잘 끌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영화 못지않은 큰 스케일로 감동적인 화면을 만들어냈다. 김 PD는 1999년 김종학프로덕션을 설립해 '대망,' '풀하우스,' '태왕사신기,' '신의' 등을 제작했다. 2007년 방송된 '태왕사신기'는 550억 원이 넘는 엄청난 제작비에 한류스타 배용준을 앞세워 큰 관심을 끌었으나 기대만큼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고, 이후 5년 동안 공을 들여 선보인 '신의'는 100억 원대의 제작비가 투입됐음에도 시청률이 10% 초반에 그치는 저조한 성적을 냈다. 이는 광고판매 부진으로 이어져 출연료 미지급 사태까지 벌어졌다. 김 PD의 마지막 작품이 된 '신의'는 출발부터 위험을 안고 있었다. 기획기간이 길어지면서 초기 자본이 많이 들어갔고, 드라마 최초로 3D로 기획되면서 수억 원의 자금이 소요됐으나 결국 계획을 수정해야 했다. 일반 제작사가 아니라 프로젝트별로 설립돼 프로젝트 종료와 함께 해산하는 문화산업전문유한회사가 제작을 맡았다. 이러한 형태의 회사는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소재가 불분명해지는데, 이번 출연료 미지급 사태에서도 방송사와 제작사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일이 벌어졌다. 이번 일의 원인은 김 PD 자신의 과도한 의욕으로 제작비가 불어나 거액의 빚을 지게 된 개인적인 문제로 볼 수 있겠으나 그 뒤에는 한국의 엉성한 드라마 제작 현실이 놓여 있다. 김 PD와 같은 거장조차도 자금 압박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출연료 미지급 사태의 배경에는 외주제작의 구조적 문제가 깔려있다. 현재 지상파 미니시리즈의 편당 제작비는 3억원에 달하지만, 편성권을 가진 방송사는 절반 수준만 제작사에 지급하고 있다. 나머지 제작비는 협찬과 해외 판매 등으로 조달해야 하는데 신생사나 역량이 부족한 제작사는 이것이 쉽지 않다. 위험을 안고 무리하게 드라마를 제작하는 것이다. 방송사가 외주제작 프로그램을 편성하면서 제작사의 역량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경영이 부실한 제작사에 편성을 주거나, 제작비를 비현실적으로 책정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잘못된 외주제작 관행을 바로잡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일례로 정부는 '방송 프로그램ㆍ방송출연 표준계약서 안' 제정을 추진해왔다. 이 안에는 제작사의 권리를 강화하고, 대중문화예술인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표준계약서가 강제성을 띠는 것은 아니지만, 법적 분쟁이 발생할 때 기준이 될 수 있다. 1년 넘게 끌어온 만큼 서둘러 의견을 수렴하고 미비한 점은 보완해 마무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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