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레이블 ECM서 한국인 가수 최초로 음반 발표
"시아버지 정명훈, 곁에 있는 것만으로 감동 주는 분"

재즈 가수 신예원(32)은 지난해 10월 미국 보스턴의 메카닉스 홀 무대에 서서 눈을 감았다. 지인인 피아니스트 아론 파크스와 호흡을 맞춰 목소리를 체크하기 위함이었다.

객석에는 그의 남편이자 지휘자 정명훈의 아들인 프로듀서 정선(31)뿐. 잠시 후 신예원의 입에서는 의외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메카닉스 홀을 채운 것은 재즈가 아니라 우리나라 동요 '섬집아이'였다. 독일의 세계적인 유명 레이블 ECM을 통해 발표할 새 음반 '루아야(Lua Ya)'는 이렇게 탄생했다.

음악축제 'ECM 뮤직 페스티벌' 참석차 우리나라를 찾은 그를 20일 용산구 한남동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우리나라 동요는 과거 순수한 마음으로 되돌리는 마술적이고도 은은한 힘을 가졌어요. 이 점을 표현하고 싶었죠."

'루아야'는 13개 트랙 가운데 9개 트랙이 'Island Child(섬집아이)', 'The Orchard Road(과수원길)' 등의 동요다. 재즈 가수, 그것도 세계적인 레이블인 ECM에서 나온 음반에 우리말 동요가 담긴 점이 독특하다.

신예원은 "메카닉스 홀에서 목소리를 테스트한 그 느낌이 좋아서 그렇게 했다"며 "공기 중에 떠다니는 듯한 영감에서 나온 노래를 담았다"고 짚었다.

어떠한 것에 구애받지 않은 채 '물 흐르듯이' 나온 음악이 바로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과 맞아떨어졌다는 설명이다. 즉흥적으로 탄생한 첫 번째 트랙의 자장가 'Lullaby'처럼 말이다.

"특별한 계획이 없이 녹음을 한 거예요. 전반적인 템포나 느낌에 관한 이야기는 나눴지만, 노래 자체의 편곡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어요. 순간순간 음악이 이끄는 대로 간 겁니다."

한때 그에게도 의욕에 불타 음악이 인생 전부인 시절이 있었다. 매일 피아노 앞을 떠나지 않고, 헤드폰을 끼고 앉아 음악을 탐닉했다. 그러나 정선 현 ECM 보조 프로듀서(Assistant Producer)를 만나고서 인생관이 송두리째 바뀌었다.

"남편은 제 전부입니다. (웃음) 제가 저 자신일 수 있게 해주는 이 세상의 단 한 사람이죠. 프로듀서로서도 과장되지 않게 제 안의 것을 잘 뽑아내는 사람입니다. 저는 가족이 가장 중요해요. 음악은 제 인생의 일부일 뿐이죠."

이번 음반명 '루아야'는 이제 갓 돌을 맞은 그의 첫 딸의 이름 '루아'에서 따온 것이다. 정선 프로듀서는 전작 '예원(YEAHWON)'에 이어 이번 음반에서도 아내의 프로듀싱을 도맡았다.


ECM
ECM에서 음반을 내게 된 것도 정선 프로듀서와 그가 보좌하는 이 레이블의 설립자 만드레드 아이허(70)의 인연 덕분이다. 신예원의 음악을 들어본 ECM 측이 먼저 제의를 해 왔다.

신예원은 "ECM은 음악을 만들어 팔려 한다기보다 좋은 음악을 만드는 것에서 끝나는 곳"이라며 "굳이 동요의 가사를 영어로 바꿔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한국어 가사는 한국인으로서 나만이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그는 종종 '정명훈의 며느리'로 불린다. 그만큼 음악계에서 시아버지가 차지하는 '무게감'이 남다르기 때문.

신예원은 "그런 명칭에 굳이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며 "가정에서 시아버지가 어려운 분이었다면 민감할 수도 있겠지만, 워낙 편하게 대해 줘서 그다지 의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아버님은 스스로 엄청나게 단련하는 분이세요. 모르는 사람은 그분이 쉽사리 '쓱쓱' 해내는 것으로 생각할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잠깐 시간을 내어 같이 쇼핑을 가는 길에서도 공부하실 정도입니다. 저는 그분의 노력을 조금도 따라가지 못하는 부끄러운 사람이에요."

그는 "시아버지가 지휘할 때 나타나는 따뜻함은 그 사람됨에서 나오는 것 같다"며 "그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 감동을 주는 분"이라고 덧붙였다.

신예원은 지난 2011년 한국인 보컬리스트로는 처음으로 '라틴 그래미 어워드(Latin Grammy Award)'에서 '베스트 브라질 음악 부문' 후보로 오르기도 했다.

"기쁘고, 한편으로는 '멍'했죠. '라틴 그래미 어워드'잖아요. 제가 너무나 동경하는 분들과 함께 후보에 올랐어요.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러나 "감사한 일이지만 상은 내게 크게 와 닿지는 않는다"며 "나는 음악을 내고 나면 더는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전처럼 '최고의 재즈 가수가 되겠다'는 생각은 이제 전혀 없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마치 저절로 입에서 동요가 흘러나온 메카닉스 홀에서의 경험처럼 자유로이 음악을 하고 싶다는 그 뜻 그대로다.

신예원은 다음 달 3-7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ECM 뮤직 페스티벌'서 기타리스트 랄프 타우너와 함께 각각 1·2부를 맡아 ECM 앨범 레퍼토리를 들려준다.

"제가 음악을 하는 이유는 음악이 제 삶에 좋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죠. 힘들 때는 위로가 되고, 기쁠 때는 그 기쁨이 더 커지니까요. 제 음악이 다른 사람에게 좋은 느낌으로 전달된다면 그걸로 좋아요. 그러려면 자신에게 어색하지 않을 가장 나답고 꾸미지 않은 음악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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