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수길(논설위원, 소설가)

 열 명, 스무 명이 다달이 얼마씩 내어 모아진 돈을, 순번에 따라 타 가는 ‘계’가 한 때 서민들의 목돈마련 수단으로 성행했었다. 당시는 산업자금의 대부분을 외국차관에 의존하던 시대였다. 국내자본 마련을 위해 저축을 장려하던 시대였으므로, 목돈 필요한 서민이 은행대출을 받기엔 문턱이 너무 높았었다. 계가 번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7,80년대 번창하던 그 계가 요즘은 거의 사라졌다. 이런저런 이유로 깨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었다.

 요즘은 금융기관 대출광고가 지천일 만큼, 은행문턱이 낮아졌다. 굳이 위험부담이 큰 ‘계’에 의존할 필요가 없게 된 셈이다. 결국 ‘계’가 사라지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내가 낸 돈은 틀림없이 내게 돌아온다는 신뢰가 깨진 것이다. 이를테면 본전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었다.

 지난 대선 때는, 복지공약이 그 어느 선거 때 보다 풍성했었다. 가히 복지선진국에 돌입했다 할 만큼 홍수를 이뤘다. 야당후보가 복지공약을 남발한다고 비판하던 여당도, 선거 중반에 이르러선 내가 질소냐 하고, 야당 못지 않는 푸짐한 선심공약을 들고 나왔다. 유권자들은 과연 그 공약실천이 가능할까, 반신반의 하면서도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다고 그냥 좋아라 했었다. 재원부담의 염려는 젖혀 두고 선심기대만 부풀렸던 셈이다. 

 그 화려한 복지공약이 선거대세에 결정적 역할을 한 건 아니지만, 결과는 여당승리로 끝났다. 원칙과 약속이행을 중히 여기는 대통령은, 국민과의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소신에 변함이 없다. 소신은 좋지만, 복지가 흙 퍼다 쌓고 물 퍼다 붓는 일이 아니니 예산이 있어야 하는 건 불문가지고, 그 예산을 국민세금으로 마련해야 한다는 것 역시 불문가지다.

 그런데, 그 많은 복지공약을 좋아라 반기던 유권자들은 막상 복지재원 마련을 위한 증세엔 머리를 흔든다. 평균 잡아 1인당 1만 몇 천원쯤의 부담이 늘어난다는 관계장관의 말에도 발끈하고 도리질을 한다. 유리지갑을 찼다는 봉급생활자들은 우리가 봉이냐고 노발대발이고, 자영업자들은 경기침체로 그렇잖아도 빈사지경인데 무얼 더 짜 낼 거냐고  울근불근이다.

 무상보육, 무상급식, 무상의무교육확대, 대학등록금반감, 노령기초연금 지급, 실직수당 지급, 제대장병 취업준비자금 지급....... 수많은 선심복지 실현을 위해선 현재로도 재원고갈이 염려되는 판인데, 해가 갈수록 수혜대상은 늘어나고 증세 없이는 예산확보의 길이 막연하다. 지하경제나 탈세를 잡고 예산의 누수방지와 절약으로 대비한다지만 전망은 글쎄다. 

 우리 국민의 조세부담율은 평균 20%대. 이웃 일본이나 미국 등은 30%대. 서구의 일부 복지선진국은 40%대란다. 그런데도 국민의 조세저항은 우리나라가 유독 크단다. 현재로선 복지수준이 조세부담율 높은 다른 나라에 미치지 못 하는 까닭도 있겠지만, 보다 큰 이유는 납세에 대한 신뢰가 문제지 싶다. 세금을 낸 만큼 내게 혜택이 돌아온다는 믿음, 본전 찾기에 대한 신뢰가 희박하기 때문이다. 

 나보다 잘 사는 사람이 세금을 안내고 덜 내는, ‘배 째라’ 식 탈세에 부정한 감세. 이른바 조세부과의 공평성에 대한 신뢰가 없는 것이다. 방만한 운영으로 허비되거나, 훔쳐먹고 속여먹는 공무원 비리로 줄줄이 새나가는 세금 때문에, 내가 낸 것만큼 나에게 혜택이 돌아온다는 믿음도 깨진 것이다. 거기에 우리내부에 잠복된 공짜심리도 한 몫하고 있는 셈이다.

  속담에 ‘공연한 제사지내고 어물 값에 졸린다.’는 말이 있다. 상황에 따라 안 하거나 줄여도 될 복지사업 강행하다 국가부채 늘릴 위험은, 정부가 심시숙고 해야 할 일이다. ‘공짜가 망짜’라는 말은, 증세는 안 된다면서도 복지는 다 누려야겠다는 국민들이 새겨야 할 말이다.   박근혜 정부출발 6개월, 벌써부터 복지예산을 놓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삿바싸움이 시작 됐다. 세율조정을 놓고 정부와 납세자간의 갈등이 노출 됐다. 안 그래도 여당과 야당의 기 싸움이 드세고 야당과 정부의 신경전이 날카로운 판에, 국민이 정부에 등 돌리고 돌아서기를 고대하는 세력이 적지 않다. ‘복지는 좋으나 증세는 싫다’는 국민의 이중적 욕구, 모순된 심리를 반정부여론 확산에 이용, 어부지리를 노릴 위험이 없지 않다.

 증세 없는 복지확대. 좋지만 바랄 것이 못 된다. 의식 있는 국민이라면 그걸 인정해야 한다. 복지축소냐 증세냐, 택일하는 것이 현재의 우리와 후세를 위한 길이다. 곶감은 다 빼 먹고 빈 꼬챙이만 자식에게 건네주는 아비, 빚더미 나라를 후세들의 등에 지워주는 조상. 그런 아비, 조상은 참으로 몹쓸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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