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단 19년차 소설가 김영하는 여전히 ‘핫’했다. 그를 만나기 위해 모인 100여명의 술렁임과 두근거림, 기대에 찬 눈동자는 90년대 한국문학의 아이콘으로 통했던 그가 2013년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지난달 28일 오후 2시 충북중앙도서관에서는 ‘김영하와 위대한 개츠비 함께 읽기’ 행사가 열렸다. 1회 충북도서관북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진행된 이날 강연회에서 참석자들은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를 번역자 김씨와 함께 읽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위험하고 이상한 소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소수이고 책을 사랑하는 우리의 미래는 밝지 않습니다. 하지만 책이 우리에게 유일무이한 것을 주는 한 이 세상에서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겁니다. 전기면도기가 등장했지만 수동면도기가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요.”

백팩에 청바지, 운동화 차림의 김씨가 무대에 서자 분위기는 수직 상승했다. 그는 먼저 “위대한 개츠비는 생각보다 훨씬 위험하고 이상한 소설”이라고 말문을 연 뒤 소설의 특징으로 △주제의 불분명성 △본받을만한 인물의 부재 △실패의 기록 등을 언급했다. ‘위대한 개츠비’ 역시 이러한 속성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 그런데도 사람들이 이런 책을 읽는 이유는 현실과 다르기 때문이라며 소설은 복잡하고 은밀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위안과 안도감을 주고 타인을 이해하게 한다고 말했다.

그가 번역에 있어 가장 중점을 둔 것은 △번역체의 극복 △인물 간 위계의 재설정 △현대성의 부활 등이다. 김씨는 “창작은 내가 결정권자이고 내가 완벽하게 장악하는 세계를 그린다. 그러나 번역은 내가 완벽히 도달했는지 늘 찜찜하다”며 “지금까지도 계속 수정을 거듭하고 있고 이제는 지겨울 정도”라고 밝혔다.

‘위대한 개츠비’는 그가 2003년 번역한 것으로 타 번역본에 비해 경쾌하고 젊다. 현재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대세가 쿨함이라면 김영하의 ‘위대한 개츠비’는 그 쿨함의 지점 어딘가에 분명히 맞닿아 있다. 원본을 그대로 옮겼다기 보다는 ‘김영하식’으로 재해석해냈다는 느낌. 그래서 ‘번역’ 보다는 ‘번안’이라고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위대한 개츠비의 위대함

미국인들이 ‘지금까지 영어로 쓰인 최고의 소설’이라 자부하는 ‘위대한 개츠비’의 문학적 성취란 무엇일까? 김씨가 분석한 ‘위대한 개츠비’의 ‘위대함’은 △함축성 △아이러니와 복선 △긴장의 구축 △치밀한 구성 등으로 요약된다. 길지 않은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1장에서 주요 인물들이 대부분 등장하거나 거론되며 인물들 간의 관계도까지 그려진다는 것. 많은 아이러니와 복선들이 등장해 독자들을 혼란하게 하지만 그것들이 매우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주인공인 개츠비가 소문 속에서만 존재하며 등장이 늦어지는 것 역시 전략적이라는 것이 김씨의 주장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제목이 ‘위대한 개츠비’인 까닭에 대해 덧붙이며 강연을 마쳤다. ‘The Great’이라는 표현은 1920년대 후디니와 같은 마술사에 대해 사용하던 수식어이다. 거대한 환상으로 자신을 감추었던 마술사들처럼 환상으로 현실을 대체하려 했던 개츠비에 이러한 수식을 붙였다는 것이다.

“어쩌면 ‘위대한’이라는 번역보다는 ‘유명한’이라던가 ‘대단한’이라는 의미가 더 어울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설의 힘은 이렇게 터무니없는 인물을 이해하게 한다는 데 있는 것 같네요.”

<조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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