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준(청양군 목면 부면장)

 

며칠 전 귀농인 한 분이 사무실을 찾아 왔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인접토지의 배수 문제를 두고 이웃과 마찰이 생긴 경우였다. 그는 자신이 귀농인이라서 인접지에게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했다. 내용을 살펴보니 방향이 달랐다. 소통부족에 감정이 앞섰다. 서로 이야기를 하며 함께 방법을 찾아야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일이었다.

 

인접된 사유지간의 분쟁은 감정이 개입하기 쉽다. 발생된 사실만 합리적으로 판단하면 되는데 사람들은 쉬 자기감정에 빠진다. 감정에 빠지면 자신의 문제를 합리적으로 보지 못한다. 스스로 감정에 사로 잡혀서 자기주장만 반복하게 된다.

 

그때부터 상황은 삐딱선을 탄다. 감정의 급류를 만나 상황이 좌초가 되고 급기야 객관적인 사실은 간데없고 쓸데없는 오해가 판을 친다. 사태를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도 깨닫지 못한다. 답답한 일이다. 분쟁에는 늘 상대방이 있다. 나만 옳다는 생각으로는 안 된다. 상대방과 함께 합리적인 방법을 찾아야 일을 제대로 해결할 수 있다. 

 

이럴 때는 한걸음 떨어져서 상황을 살피는 게 지혜다. 내 생각만 하지 말고 상대방 입장도 살펴야 한다. 그래야 서로 말이 통한다. 남의 입장 생각하지 않고 내 주장만 되풀이해서는 이야기가 꼬일 뿐이다. 이쪽의 필요에 의해 상대편 땅의 사용승낙이라도 받아야 하는 경우라면 더더욱 이웃의 협조는 필수다. 어차피 앞으로 함께 살아야 할 이웃들이니 일단 서로 감정적으로 진행되지 않도록 노력해보시라는 조언을 했다.

 

 


귀농인과 마을 주민들의 마찰은 종종 있는 일이다. 이야기를 듣다보면  소통의 부재가 주원인이다. 소통은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는 데서 시작된다. 나와 상대방의 가치관이 공존하는 지점이다.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소통은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소통이 없는 곳에 늘 분쟁이 있다. 분쟁은 상대방을 생각하지 않고 내 주장만 하는데서 비롯된다. 상호 적당한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 서로 상대를 탓하며 감정의 골만 깊어간다. 서로 조금씩 양보하며 상대를 배려해야 분쟁을 예방할 수 있다.

 

좋은 집을 살 것이 아니라 좋은 이웃을 사야 한다는 스페인 속담이 있다. 탁월한 경구다. 이웃은 잘 두면 먼데 있는 사촌보다 낫지만 잘못 엮이면 분쟁의 시초가 되어 두고두고 골치를 썩는 화근이 된다. 이건 사촌이 아니라 만나지 말았어야 할 원수지간으로 변한다. 아무리 좋은 집에 살아도 마음이 불편하면 삶이 피폐해진다. 좋은 이웃은 삶의 좋은 반려다.

 

이웃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얼마 전 한일 문화교류행사에서 눈물을 쏟았다는 아베총리 부인이야기가 떠오른다. "저는 한국이 정말 좋아요. 그런데 왜 일본과 사이가 자꾸 나빠지는 거죠. 마음이 무척 아파요. 양국관계가 잘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데…." 아키에 여사는 2006년 방한 당시 서울의 한 초등학교를 찾아 한글 교과서를 술술 읽을 정도로 오랜 한류 팬으로 알려져 있다. 생존을 위해서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는 국제정치판에서 별종이다. 

 

한일관계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상대방의 이야기는 듣지 않고 서로 자기 이야기만 하는 관계다. 귀는 없고 입만 있다. 언어가 달라서 발생되는 대화의 불통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자국과 타국의 경계를 강하게 만들어 서로 반목, 경쟁하는 고질병같은 민족국가 성향이 원인이다. 게다가 그걸 이용하려는 정치세력도 존재한다.

 

국경이 점차 낮아져 지구가 하나로 통합되는 세계화 시대의 역설이다. 한일관계가 분열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는 이유는 바로 국가와 국가 간 이분법적 소통의 단절 때문이다. 서로 상대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그 차이를 인정하며 수용할 수 있는 열린 태도만이 공존의 가능성을 만들 수 있다. 이분법적 시각을 떠나 각 민족의 다양성과 국가의  주체성을 인정하고 서로 존중해야만 비로소 소통할 수 있는 것이다.

 


 

일본은 지구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함께 살아가야 할 지리적 이웃이다. 그럼에도 한일관계는 너무 오래 반목과 질시 속에 머물고 있다. 서로 험한 말들이 오고가는 얼어붙은 관계를 녹일 온기가 필요한 때다. 국가관계는 어쩔 수 없이 이익을 다투더라도 서로 마음을 나누는 인간적인 완충지대가 절실하다. 정치판의 별종 아키에 여사의 눈물은 그래서 값지다.

 

좋은 이웃과 나쁜 이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대상이 문제가 아니라 관계가 문제다. 좋은 이웃은 서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마을이웃이건 인접국가건 좋은 이웃을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내가 먼저 좋은 이웃이 되는 것이다. 좋은 이웃이 되려면 상대방 입장을 잘 헤아려야 한다. 또 상대를 탓하기 전에 나를 돌아봐야 한다. 나는 과연 좋은 이웃인가. 우리는 과연 좋은 이웃나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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