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으로 힐빙(heal-being)하기

  
   9월이 다가도록 식을 줄 모르던 더운 기운도 10월의 문턱을 들어서면서 서서히 물러가 버린 것 같다. 이른 아침의 서늘함과 한 낮의 따사한 햇살에 어느새 나뭇잎은 울긋불긋 고운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앞으로 한 달 여간, 강원 산간지역부터 절정을 이루는 단풍 가경이 해남까지 내려가면서 한국의 아름다운 가을을 수놓을 것이니 자연의 그림을 감상할 기대에 설레어진다.
  높고 푸른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하늘하늘 가는 허리를 흔들며 분홍색과 자주색의 조화를 이루어 피어있는 코스모스 꽃밭이 눈에 들어온다. 온 가족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행복하고 익살스런 모습을 서로 사진에 담아가며 마냥 즐거운 오후를 보내고 있다. 가을의 상징인 코스모스는 척박한 곳에서도 잘 자라는 강인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가녀린 외모와 너무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소녀시절 찻길에서 좀 떨어진 친구 집 가는 길가 양쪽에 길게 이어진 코스모스 꽃길을 떠올린다. 문득 잊고 지냈던 친구의 얼굴을 마음에 그려본다.
  성실과 감사의 꽃말을 지닌 새하얀 구절초도 한창이다. 꽃 나들이 나온 사람들에게 무료로 나누어준 어느 산사의 소박한 잔치국수가 일품이다. 평소에 국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변변한 고명도 없이 멀건 국물에 몇 가닥의 삶은 국수를 넣어주었을 뿐인데 어찌 그리 맛있을까? 공짜 국수를 얻어먹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을 기다리다 지친 배고픔 때문은 아닌 것 같다. 식사 후 펼쳐진 산속 음악회가 가을의 정취를 한껏 돋우고 자선 바자회장에선 이웃의 아픔을 나누려는 인정이 넘쳐흐른다.
  국화는 동양에서 재배한 관상식물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꽃이라고 한다. 쑥부쟁이, 개미취, 미역취, 감국 등 야생국화꽃들이 들판 여기저기에 함초롬히 피어있다. 오솔길을 걷다가 앙증맞게 피어있는 자그마한 풀꽃들에 끌려 잠시 발길을 멈추었다. 그 오묘한 아름다움에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휴대폰을 꺼내어 사진에 담으니 마음이 배부르다.  
  파란 녹차 잎 사이에 수줍은 듯 피어난 차 꽃은 그 꽃말만큼이나 겸손함 그대로다. 커다란 키에 탐스러운 꽃송이를 매달고 있는 오색의 달리아도 노랑, 빨강, 주황색의 화려한 색깔을 뽐내며 가을 꽃 축제에 합류한다. 선운사의 빨간 꽃 무릇도 한창인 때다. 너른 들판 바람에 나부끼는 억새꽃도 가을의 상징이리라.
  자연이 가져다주는 아름다움 중에 가을의 색깔에는 성숙한 화려함이 담겨있다. 거인처럼 우뚝 선 은행잎이 샛노랗게 물들면서 어느새 하나 둘씩 떨어져 땅바닥을 구른다. 활짝 피었던 꽃이 지고 알록달록하던 잎사귀가 떨어져나간 산야에는 쓸쓸함이 스며들게다. 그래도 가을이란 계절은 결실이 주는 풍성함이 있어 좋다. 황금 들판에서 거두는 곡식들과 가지마다 주렁주렁 매달린 과일들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넉넉해진다.
  콘크리트 건물 작은 공간에 갇혀 안타깝게도 학교 성적과 입시, 취업의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손바닥보다 작은 스마트폰은 한시도 떨어질 수 없는 존재이다. 그 작은 물건의 가상공간에서 그들은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혼자서도 심심하지 않다. 사람들과 어울려 살 기회가 적기 때문에 인정과 사람의 도리를 모르고 지내기도 한다. 대자연 속에 인간이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지 깨닫지 못하고 나만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기심과 자만으로 뭉쳐있는 경우가 많다. 자연을 접하면서 겸손함을 배울 기회를 갖지 못한다.
  청소년사이에 소통되는 언어들이 축약어와 비속어, 거친 욕설들로 우리말을 오염시키고 있어 걱정이다. 언어 사용의 변화가 그들의 정서와 행동에 영향을 미칠 것은 뻔하다. 좁은 공간 속에서 좁아진 시선으로 너른 세상을 바로 보지 못해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병들어간다. 치유가 필요하다. 아픈 마음을 달래는 데는 자연이 최고의 처방인 것 같다. 최근 치유를 의미하는 '힐(heal)'과 복지·안녕·행복을 뜻하는 웰빙(well-being)의 합성어로 힐빙을 연구하는 학회도 생겼다.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생활이지만 틈틈이 자신이 쳐 둔 그물에서 벗어나 자연을 접하며 유유자적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굳이 명소를 찾지 않아도 좋다.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우리 가까이에 자연의 선물이 널려있다. 매일 오가는 가로수 길도, 집 주변 산책로도 고개를 들면 모두가 아름다운 자연이다. 올 가을 물들어가는 단풍을 감상하며 자연처럼 너른 마음의 여유와 행복을 흠뻑 느낄 시간을 내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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